배드파더스 사건 등 계기로 ‘형법 제307조 1항’ 폐지 요구 “한국형법 특이해”
이 법이 두고두고 논란이 될 전망이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고심 중인 가운데, 설령 합헌 판결이 나오더라도 헌법소원 청구는 지속될 조짐이다. 전문가들은 이 법을 두고 한국 형법의 특이한 한 단면이라고 지적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돌연 논란의 중심에 선 배경은 무엇일까. 결과적으로 이 법은 없어질 수 있을까. 법조계 시선이 여기에 쏠렸다.
용기 내 고백한 진실…돌아온 건 처벌
이 일은 한 시민의 고발로 대외에 드러났다. 그는 호소문을 써서 재단 회원들에 사건을 알렸다.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부정의를 대외에 알리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법이 꼭 그의 편이 아니었다. 제보자는 재단측으로부터 고소당했다. 1심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재단 명예가 훼손됐다고 판단했다. 이후 대법원이 최종 판결을 뒤집었으나, 개인이 단체를 상대로 분쟁을 지속한 데 따른 피로감은 상당했다.
이런 일이 흔하다. 2016년에는 사실을 말했다가 2차 피해를 당한 사람이 있었다. 당시로부터 수년 전 성폭력를 당해 삶의 트라우마를 호소한 A씨는 피해를 토로하다가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가해자 회사 앞에서 “당신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로 인해 임신해서 유산까지 했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게 발단이었다. 가해자가 명예훼손으로 A씨를 고소했고, 법원은 “A씨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시했다.
전례에 그치는 일들이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 사건 역시 이와 결이 맞닿아 있다. 양육비를 미지급한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한 이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진들이 피고로서 법정에 선 상태다. 이들은 양육비 미지급을 개인 간 사채거래로만 치부하는 현행 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커뮤니티를 만들었는데, 원고측은 신상공개가 지나친 일이라며 자신들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사례의 중심에는 현행 ‘형법 제307조 1항’이 공통되게 자리한다. 이 법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쉽게 말해, 허위사실이 아닌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밝히는 것 또한 타인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 있으므로 벌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통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일컬어진다.
“표현의 자유” vs “사생활 보호”
헌재는 고심 중이다. 지난달 10일 열린 명예훼손죄 위헌확인 사건 공개변론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침해’의 가치가 첨예하게 맞붙었다. 위헌을 주장하는 쪽은 “(처벌 여부와 무관하게)사실적시마저 명예훼손의 구성요건이 된 현실은 수사개시 및 형사처벌 등의 위험성을 수반한다”며 “그에 따른 위축효과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므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위헌”이라고 피력한다.
반면 합헌을 주장하는 쪽은 “진실도 명예에 치명적 훼손을 가할 수 있다”고 맞선다. 이날 이해관계자로 나온 대한민국 법무부 측은 “공표된 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부합하더라도 해당 사항이 병력, 성적 지향, 가정사 등 개인이 숨기고 싶은 사생활일 수 있다”며 “이를 공표하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고 항변했다. 또 “공익 관련성이 없는데도 타인의 약점과 허물을 공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쟁점은 ‘공익적 가치’의 범위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현행법의 조각사유 때문이다. 지금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공익목적’으로 이뤄진 행위는 처벌을 면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실로써 타인의 명예를 훼손시켰더라도, 그 목적이 공익을 위함이라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청구인측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핵심은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유이며 ▲그 자체가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설령 현재와 같이 공익목적성을 입증해야 한다면, 그 주체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도 논의에 포함돼 있다. 현행법은 공연한 사실적시의 목적이 공익에 있음을 행위 당사자가 증명해야 한다. 이를 검찰 등 사법기관이 판단 및 심판해야 한다는 게 청구인측의 입장이다. 실제 ‘미투’ 등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들 중 상당수가 이러한 입증책임에 더욱 부담을 느껴 고발에 망설였었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해외는 허위사실만 처벌 ‘다수’
그도 그럴 것이 해외 선진국 다수는 허위사실에 따른 명예훼손만 처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 국가는 한국 사회보다 표현의 자유의 범위를 보다 폭넓게 인정한다. 한국과 같이 대륙법계로 분류되는 미국과 독일 및 일본법도 그렇다. 이러한 현황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2018년 펴낸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논의와 대안에 관한 연구’ 논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독일의 경우는 형법상 명예훼손에 관한 규정에서 주장 혹은 유포된 사실이 진실임이 증명되면 처벌하지 않는다. 때문에 명예훼손 행위에 따른 논쟁이 불거질 시, 한국처럼 사실적시의 공익성 유무를 따지기보다 진실 여부를 다투는 일이 대부분이다. 위축감 없이 자유로운 토론 혹은 비판 등의 표현을 보장하는 것은 민주정치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라는 게 독일 법체계의 기본 전제다.
미국은 더욱 특수하다. 보고서는 “미국에서의 명예훼손죄는 오늘날 거의 의미가 없다”고 진단한다. 명예훼손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보다는 주로 민사상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정치인 등 공인의 공적 사안과 관련된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자, 불법행위법상의 손해배상범위를 크게 제한한 ‘현실적 악의 원칙’도 확립돼 있다. 허위든 사실이든 명예훼손에 따른 형법상 처벌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나마 일본이 한국과 공통분모를 조금 갖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일본은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규정, 공소제기 전에는 공공의 이해라는 판단에 범죄의 성립이 부정된다. 보고서를 쓴 윤해성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일본은 공소제기 시 공공성이 있는 경우 사실여부를 판단하고 진실이면 처벌을 안 한다”며 “한국의 경우 반의사불벌죄로 규정 하고 있어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논란 지속될 듯…합헌 시 또 헌법소원
이상현 두루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사회의 부정의함을 지적하거나, 본인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는 것을 막고 있다”며 “이러한 ‘표현행위’에 대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를 당하고, 기소되고, 나아가 유죄판결을 받은 사례가 무수히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처벌을 각오할 용기가 없는 시민들은 정당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게 됐다”며 “이는 사회전체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에도 큰 문제”라고 헌법소원 청구 계획의 배경을 밝혔다.
이에 함께 할 뜻을 밝힌 법조계 관계자들은 더 있다. 손지원 사단법인 오픈넷 변호사도 그 중 한 명이다. 손 변호사는 “진실한 사실은 민주주의의 공론장에서 자유로운 의사형성과 진실발견의 기본 전제”라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진실한 사실을 널리 알리거나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이는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진실이라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학계 역시 이런 주장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UN의 한국에 대한 사실적히 명예훼손 폐지 권고에 이어 지난 국회에서도 해당 죄의 폐지를 주장하는 법안들이 다수 상정됐다”면서 “이 법 폐지 청와대 국민청원도 4만여 명의 지지를 받은 데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 가량이 해당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답한 바 있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이어 “이는 다수의 국민, 학계, 법조계, 국제사회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헌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이 같은 여론과 국제사회의 요청을 반영하여, 이제는 헌법재판소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헌 여부에 관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세계적 흐름에 견줘 봤을 때, 적어도 진실사실을 말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 것이 국제법의 원칙”이라고 지적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