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구조에 사고책임 불분명, 앱 수수료 문제도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각종 온라인 플랫폼의 등장으로 배달노동자 등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처우 및 안전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화물차 기사들은 심경이 조금 복잡하다. 무리한 주행 환경에 내몰려 위험에 노출되긴 화물차 기사도 마찬가지인데,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에서는 소외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최근에는 화물 업계에서도 애플리케이션 등의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화물차 기사들은 고질적이고 치명적인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화물차 기사들이 한 목소리로 하루 빨리 ‘안전운임제 확대시행’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다.
‘달리는 시한폭탄’
화물차 사고 계속 늘어
지난 1월 서청주IC 인근에서 화물차에 화재가 발생했다. (사진제공=청주서부소방서)
지난 1월 27일 새벽 서청주 IC 인근. 20톤 화물 트레일러가 거대한 화염을 내뿜으며 고속도로 전체를 마치 지옥처럼 만들어버렸다. 이 트레일러에는 100톤가량의 건축 자재가 실려 있었다. 차량 무게의 5배 가까운 물건을 탑재한 과적 운전이 화재의 원인이었다. 과중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타이어가 마찰열을 일으켜 불씨의 발단을 일으켰던 것이다.
고질적인 과적운행으로 인한 화물차 사고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심해지는 추세다. 지난해 도로교통공단이 발표한 국내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화물차 관련 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2016년 20.5%(878명)에서 2019년 25.0%(835명)로 늘어났다. 과적과 과속에 의한 사고가 대부분인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4292명에서 3349명으로 줄었음에도 화물차만 사고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화물차 기사들은 이처럼 위험천만한 현실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대구의 한 화물차 기사 A씨는 “과적을 하지 않고는 일감을 얻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빠르게 물량을 이동시키는 것 역시 필수인데, 그렇다보니 과속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는 있고, 가해자는 없는 ‘과적’
A씨의 말을 이해하려면 화물운송 업계의 생태계를 알아야 한다. 화물 업계는 ‘화주-알선업체-화물기사’가 주축이다. 화주와 화물기사 사이에는 더 많은 이해 관계자들이 얽힐 수도 있다. 알선회사와 운송회사, 심지어 하청의 하청을 받은 운송회사까지 복잡한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중간에 이해관계자가 많아질수록 떼어지는 수수료 규모는 커진다. 이럴 경우 화물차 기사들의 몫이 필연적으로 줄게 된다. 화물차 기사들이 어떻게든 많은 일감을 확보하려 애쓰는 이유다.
문제는 이 같은 구조 안에서 화물차 기사들은 안전사고 위험마저 전부 떠안았다는 점이다. 화물운송 업계에서는 과적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많은 물량을 저렴한 값에 운송하려는 ‘누군가’의 욕심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얽힌 업종인 탓에 그 욕심의 주체가 어느 쪽인지를 입증하기란 어렵다. 이는 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다 보니 화물차 기사들은 과적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만약 과적이 적발돼 과태료가 발부돼도 화물차 기사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과적 주문이 만연한 탓에 이를 따져 묻는 것조차 금기로 치부된다. 대개의 하청회사가 원청회사에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화물차 기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참는 게 능사일 뿐이다.
화물차 경력 11년차인 기사 B씨는 “화물 애플리케이션(앱)에는 정상 무게로 운송한다고 표시됐지만, 실제로 가서 보면 ‘원래 다 그런 거 아니냐’식으로 과적 운반을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운이 나쁘면 하루에 2번 이상 과적으로 적발되는 날도 있는데, 이를 화주가 시킨 건지 운송업체가 시킨 건지 증명할 길이 없다”고 털어놨다.
미수금 갈등도 골칫거리인데…
앱 활성화에 울며 겨자 먹기로 배차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사진=픽사베이)
최근에는 화물 생태계의 이해 관계자가 더 늘었다. 화물 앱이다. 업계에 따르면 화물운송 관련 앱은 지난 2년 사이 약 20개가 시장에 나왔다. 가입자가 10만 명을 넘는 앱은 ‘전국24시콜’과 ‘오콜’, ‘고트럭’ 정도가 꼽힌다. 이 가운데서도 전국24시콜이 하루 이용자가 20만 명을 넘는 선두업체다.
이를 바라보는 화물차 기사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특정 소수 앱에서 1만여 명이 넘는 화물차 기사들이 물량 확보 경쟁을 벌이는 틈을 타 알선업체들이 무리한 요구를 던지기 일쑤인 탓이다. 수수료는 높이고 운임은 낮추는 게 일부 알선업체들의 전형적인 행태이다. 이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자 결국 시장의 평균 운임 자체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가고 있다.
화물차 기사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 ‘영업용 화물차 운전자의 모임’에는 구체적인 사례가 다수 소개됐다. 한 알선 업체는 ‘경북 경산시~충남 아산시’(편도 약 245㎞) 운송료를 기름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3만 원에 제시했다. 또 다른 업체는 ‘경남 창원~서울 중랑구’(약 380㎞) 운송료로 12만 원을 제시하되, 통상 10%대인 수수료를 25%인 3만 원으로 명시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미수금 갈등을 겪은 이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화물차 운송업계에 몸담은 지 이제 한 달여 된 수도권의 한 화물기사 C씨는 “아직 못 받은 돈이 벌써 100만 원이 넘는다”면서 “어찌 대응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B씨는 “미수금 스트레스가 어느덧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됐다”며 “미수금 한 달은 기본”이라고 호소했다.
정부가 적정 운임 정해라
‘안전운임제’ 확대해야
업계에서는 ‘화물차 안전운임제’ 확대시행을 강하게 요구한다. 이는 적정 운임을 정부에서 정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낮은 운임으로 과로·과적·과속 운행이 고착화된 화물운송 종사자의 근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화물차주 및 운수사업자가 지급받는 최소한의 운임을 공표하는 제도다. 현재 시멘트·컨테이너 품목에만 2022년까지 일몰제로 적용됐다.
이를 일반 화물에까지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거세다. 박연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정책기획실장은 “앱 수수료를 보면 50~60%까지 떼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단가 하락의 주된 원인으로 작용했다”며 “과적의 경우 대표 원인이 톤 당 운임을 받기 때문으로, 표준운임 자체를 높여서 과적을 안 해도 생계가 보장될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이어 “결국 안전운임제가 모든 일반 화물에도 적용돼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화물 노동자들은 열악한 운임 수준 하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 13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을 감수하며 운행 건수를 최대한 늘리고자 한다”며 “건당 운임이라는 운임 체계 자체가 화물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