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과 인구문제는 너무나 중요하면서도 미래의 모습이 확실한 주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4로 전 세계 198개국 중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합계출산율은 가임여성 한 명당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지표로, 이것이 1 이하라는 것은 가임여성 한 명이 평균적으로 아이 한 명을 낳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난해 출생자 수는 27만 명으로 사망자 30만 명을 밑돌아 인구의 절대수준이 감소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에 다다른 대한민국에서 어째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합계출산율 1.3명 이하의 초저출산 국가로 진입한 시점은 2002년이다. 이에 따라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었고 2006년 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해 대책에 나섰다.

그 이후 일시 회복추세를 보이며 2012년 1.3명까지 올라갔으나 2015년부터는 감소세가 급속해지면서 다시 하락추세를 돌이키지 못하고 있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이 1.63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한국만 특유한 것은 아니다. 다만 왜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이처럼 극적으로 낮은가의 문제다. 그것은 우선 결혼율이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국 결혼 건수는 21만 건으로 전년 대비 10.7% 줄었다. 결혼 건수가 줄어드는 추세도 출산율 하락 추세와 비슷하게 나타난다. 결혼을 하면 어떻게든 자녀를 낳으려고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면 청년들은 왜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할까.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문제가 아니라 하지 못한다는 현실이 보다 맞는 얘기일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산업구조와 양극화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수출 제조업 중심의 국가로서 끊임없이 자동화를 추진해왔고 인건비가 저렴하거나 시장이 존재하는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겨왔다.

당연히 질 좋은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거기에다 해외로부터 임금이 저렴한 노동자를 수입해 제조업 일자리를 채움으로써 이들 분야의 급여수준을 낮추는데 기여하고 있다. 서비스업은 도소매와 숙박 등 부가가치가 낮은 업종에 치우쳐 있다.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도 꾸준히 진행돼 비정규직의 수를 크게 늘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도 심각하게 커져왔다. 당연히 마음 편하게 결혼에 임할 수 있는 청년의 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밖에도 청년들의 결혼을 가로막는 장벽들은 많다.

끝없이 치솟는 주택가격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미혼여성이라면 결혼 후 겪게 될 경력단절과 자녀양육의 어려움이 두드러질 것이다. 결혼을 한 부부의 경우에도 비슷한 이유로 인해 출산을 늦추거나 다자녀 갖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출산장려 대책은 어떠했나. 2006년부터 5년 단위로 시행돼 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제1차(2006~2010년) 기본계획은 ‘출산·양육에 유리한 환경조성’을 목표로 시행됐다. 19조 원의 예산으로 영유아 보육비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제2차(2011~2015년) 기본계획에서는 ‘출산율의 점진적 회복’을 목표로 내세우며 66조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이때도 역시 영유아보육·교육비 지원에 절반 이상의 재정이 쓰였고 양육수당 지원, 산전후 휴가급여 등이 도입됐다. 이때까지는 보육비 지원이 저출산 현상의 주요 대응책이었던 셈이다.

제3차(2016~2020년) 계획은 출산율을 1.5명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설정했고 재정 규모도 149조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출산 및 양육·돌봄 지원이 82조 원으로 가장 큰 몫을 차지했으나 청년 일자리 및 청년·신혼부부 주거 지원에 45조 원이나 투입된 것이 특징적이다.

마침내 정부도 저출산의 구조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전문인력 양성 등 저출산과 직접 관련 없는 분야에도 많은 예산이 투입돼 규모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지난해 12월에 발표된 제4차(2021~2025년) 계획은 ‘2040세대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설정했고 이제까지의 출산율 제고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직접 지원금을 크게 늘리고 국공립 어린이집 등 공보육 비율을 높이며 모든 성별·계층별로 육아휴직 권리를 확대한 것이 특징적이다. 5년 간 383조 원이 투입되며 올해 책정된 예산만 70조 원에 이른다.

그러나 올해 저출산 직접 지원 예산은 약 20조 원 규모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48% 수준에 그쳐 OECD 평균인 2.4%의 절반을 겨우 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저출산 대책 예산은 과장됐고 실제로 선진국 평균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사회경제적 구조가 출산율을 높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 지원규모마저 충분치 못하니 출산율이 하향행진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보인다.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헝가리의 정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결혼을 하면 2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1000만 포린트(약 4000만 원)를 대출해주는 제도로 아이를 낳으면 이자를 면제해주고 셋 이상 낳으면 전액 탕감해준다.

둘째, 아이를 넷 이상 낳으면 여성에게 평생 소득세를 면제해 준다. 상당히 파격적인 제도로서 그 결과 2019년 9월까지의 결혼 건수가 전년 동기 대비 20%나 증가했다. 유럽도 대체로 결혼율이 낮아지는 추세임을 감안할 때 이례적이다. 정책이 강하면 결국 효과를 보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말만 요란하지 저출산을 자신의 정치적 이슈로 삼는 비중 있는 정치인이 전무한 상태다. 말하자면 저출산이 정치적 이슈가 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매년 다가오는 선거에 목을 매는 정치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으나 저출산과 인구문제는 너무나 중요하면서도 미래의 모습이 확실한 주제다. 여러 가지 현안에 가려져 뒤로 물려 있는 이 문제를 국민적인 관심사로 끌어올리는 책임이 정치권에 존재한다. 저출산 문제의 정치적 이슈화가 시급한 시점인 것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 정인호 객원기자 프로필

정인호 객원기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KT경제경영연구소 IT정책연구담당(상무보) ▲KT그룹컨설팅지원실 이사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낸 경제 및 IT정책 전문가이다.



정인호 객원기자 yourin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