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명하고 애매한 약관이 함정…정품 구매 꼼수?

[주간한국 주현웅 기자] ‘무료’ 디지털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은 옛말이다. 저작권 개념이 강화한 오늘날에는 마땅한 비용을 내야만 이용 가능한 소프트웨어가 더 많다. 물론 요즘도 무료 서비스는 없지 않다. 하지만 이 경우 이용자들은 한 번 더 의심을 해봐야 한다. 프로그램 사용권 계약서 등을 통해 해당 서비스가 정말 무료인지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몇몇 서비스 업체는 누구나 공짜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도록 한 뒤, 한참이 지나 무료 이용 범위를 벗어났다며 이용자들에 비용을 청구하는 경우가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유료로 정품 프로그램을 구입하는 것이 예기치 않은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안심하고 이용했는데…
‘저작권법 위반’ 내용증명 통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사진=픽사베이)
소기업 경영자인 채모씨(남·30대)는 최근 한 우편물을 받고 충격에 빠졌다. ‘화담’이라는 로펌이 발송한 문서에는 “귀하(채씨)의 사업장이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며 “민사상 소송과 더불어 형사상 법적조치를 별도의 통지 없이 진행하게 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깜짝 놀란 채씨가 화담에 전화로 문의하자, 로펌측은 합의금을 요구했다.
문제의 발단은 화담의 고객사인 ‘네스지오’라는 업체가 제공하는 PDF 변환 및 편집 소프트웨어였다. 해당 업체는 개인용에 한해 이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서비스하는 곳이다. 별도의 회원가입과 인증절차 없이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을 수 있는데, 채씨 역시 개인으로서 혼자 사용할 목적으로 이를 노트북에 설치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네스지오의 소프트웨어는 전면 무료가 아니었다. 채씨가 개인 자격으로 다운받은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이를 회사와 교육기관 등 법인단체는 물론, 심지어 PC방에서 사용하는 순간 유료로 전환됐다. 이 사실을 모르고 약 1년 간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온 채씨는 졸지에 범죄자로 전락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이고 만 것이다.
채씨는 “개인인지 기업인지 인증하는 절차도 없이, 누구나 다운받을 수 있도록 링크를 열어두고 1년이 지나서 불법 이용했다고 내용증명을 보내는 게 어디 있냐”며 “게다가 네스지오는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별도의 기능을 갖춰 따로 판매하고 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이어 “업체와 로펌이 제품 구매 또는 합의금 지불을 유도하려는 수법으로 밖에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네스지오와 화담이 이 같이 할 수 있는 근거는 홈페이지에 게재한 도움말 때문이다. 네스지오는 홈페이지의 ‘개인용 무료 다운로드’ 링크 하단에 ‘주의사항’을 명시했다. 그 안에서 ‘단체, (비)영리법인, 공공기관, 교육기관, PC방 등에서 본 프로그램을 사용할 경우 해당 라이선스를 구매한 후 사용할 수 있다’고 한 줄로 안내했다.
하지만 다수의 이용자는 이런 사항들을 일일이 살피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채씨처럼 영문도 모르고 저작권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내용증명을 받는 사례가 많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확한 인원은 파악되지 않으나, 모 온라인 커뮤니티 한 곳에서만 채씨와 같은 사례를 공유하는 글들이 50개가 넘었다. 2019년에는 “네스지오 사태가 도를 넘었다”며 소비자들의 집단소송 움직임도 있었다.
채씨 외 또 다른 이용자는 “합의금 자체가 부담되는 규모인데다 내기에도 꺼림칙하고, 그렇다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 역시 비용상 어려운 탓에 덫에 걸린 심정”이라며 “이 와중에 화담에서는 합의금 입금하라는 전화와 문자가 끊임없이 오는 탓에 마치 채권추심에 시달리는 듯한 기분”이라고 털어놓았다.
네스지오
“주의사항 안내했고 이용자가 유의해야”
네스지오 소프트웨어 개인용 무료다운로드 화면.
이밖에도 네스지오 제품의 무료와 유료 기준은 모호한 지점이 많다. 가령 회사에서 지급한 노트북으로 개인용 무료 소프트웨어를 다운받고, 이를 집에서 개인적 용도로만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네스지오에 따르면 이 또한 유료다. 노트북 소유주가 법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혼선의 여지가 많은 까닭에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네스지오측의 ‘꼼수’를 의심하는 시각이 많다. 무료임을 내세워 이용자들이 다운 받기를 유인한 뒤, 갖은 제한요소를 적용함으로써 제품 구매를 유도하거나 법적소송 압박으로 합의금을 취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 대부분은 법적 대응력이 약한 소기업들과 개인들이다.
네스지오는 이 같은 이용자 피해를 줄이고자 개선책을 마련한 적이 있을까. 네스지오 관계자는 “개인용 무료다운로드를 받을 때에는 관련 주의사항을 안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비록 회사 등에서 사용했어도 사용량이 많지 않으면 그냥 넘어 간다”며 “1년 이상 썼을 경우에만 문제를 삼고 있는데, 이용자들이 각 고지사항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또한 논란이 분분하다. 네스지오가 개인용 무료다운로드 화면에 ‘기업 등에서 사용할 경우 구매를 해야 한다’고 게재한 것은 사실이나, 노출된 크기가 작고 표현마저도 중의적이라는 지적이다. 기업 차원에서 사용할 시 구매를 해야 한다는 뜻인지, 개인이 기업 안에서 사용할 시 구매를 해야 한다는 뜻인지가 불분명하다. 회사가 이용자들의 불만을 인지하고 있다면 확실하게 유의할 수 있도록 얼마든지 고지사항의 전달 방법을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용자들 일부는 네스지오와 화담의 IP추적 행태도 불만으로 토로한다. 개인정보와 다름없는 IP를 어떻게 추적해서 자신들에게 내용증명을 발송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화담 관계자는 “다운로드 받은 뒤 설치화면에 보면 약관이 있는데, 그 중 5조 항목은 소프트웨어가 사용되는 정보 수집에 관한 동의란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섣불리 무료 소프트웨어를 쓰기보다 정품 라이센스를 구매해 사용하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김병희 변호사(법무법인 해송)는 “일부 소프트웨어 업체의 라이센스 정책에는 회사와 이용자 간의 계약이 불분명한 사례가 있다”며 “사용자들이 예기치 않은 분쟁을 피하려면 정품을 구입해 사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주현웅 기자 chesco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