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냄공동체 김태회 원장, 재활용품 수거로 장애인들과 공동의 삶 꾸려가며 '사랑 실천'

[신년기획 나눔] 나누고 함께 하는 아름다운 참인간
해냄공동체 김태회 원장, 재활용품 수거로 장애인들과 공동의 삶 꾸려가며 '사랑 실천'

“공동체의 생활이 특별하긴 특별하죠. 1월 1일 보신각 타종 이후 시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돌아간 반면, 공동체 식구들은 다 함께 폭죽을 수거하러 돌아 다녔으니까요.” 정신지체 장애인시설 ‘해냄공동체’(원장 김태회ㆍ45) 식구들은 재활용품을 수거해 공동의 삶을 꾸려 나간다.

이날 수거한 폭죽만도 무려 2.5톤 트럭 한 대 분량. 거리 청소는 물론이고, 약 11만원 가량의 생활비를 마련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해냄 공동체 식구들이 쓰레기 수거에 나선 것은 올해로 8년째. 노래방에서 나오는 알루미늄캔이나 아파트 단지 분리 쓰레기물 등 재활용품으로 56명의 장애인과 소년 가장, 독거 노인들이 함께 보금자리를 이뤄가고 있다.

“8년의 땀, 곧 결실 맺을 것”

김 원장은 매일 오후 3~4시면 자원봉사자 7~8명 및 장애인들과 트럭 9대를 몰고 나간다. 고양 파주 서울 일대의 노래방과 학교, 건물 및 호텔 등 600여 곳을 돌면서 빈병, 캔, 종이 등 각종 재활용품을 수거한다.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은 빨라야 새벽 2~3시. 밤낮이 바뀐 생활에 지칠 법도 하지만 김 원장은 “많은 사람들이 차츰 공동체의 뜻을 알고 도와줘 힘든 줄 모르겠다”며 “보람 있다”고 말한다.

해냄 공동체 식구들의 한달 생활비는 2,300~2,500만원(생활비와 장애 치료비, 유급 봉사자들의 인건비, 차량 유지비 등 포함). 처음에는 월 600만 원 이상 적자가 나서 힘들었지만 최근 대형 아파트 단지들과 계약을 맺고 재활용품을 수거하면서 눈에 띄게 수익이 증가하고 있다. “공동체 식구들이 8년 동안 꾸준하게 땀을 흘린 덕분에 조금 있으면 흑자로 돌아설 것 같아요. 이제 완전한 자립을 이룰 날이 멀지 않았죠.” 자립의 그 날을 생각만해도 뿌듯해지는 듯한 김 원장의 표정이다.

해냄 공동체 식구들이 재활용품 수거에 나선 것은 98년 6월께부터. ‘해냄 공동체’ 간판 아래에 버려져 있던 생후 19일의 갓난 아기 예린이를 식구로 맞이하게 되면서 비롯됐다. 다운증후군을 앓던 예린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합병증으로 심장병까지 얻었고, 다급해진 식구들은 예린이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재활 용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린이는 식구들의 정성어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2월 끝내 먼길을 떠났다. 그렇게 어린 생명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시작한 재활용품 모으기는 비록 뜻을 이루진 못했으나, 이제 해냄 공동체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활용품 선별 작업을 돕기 위해 해냄 공동체를 찾는 인근 군부대 군인들과 자원봉사 학생들의 발길도 끊이질 않고 있다. 년간 5,000여 명에 달하는 군인과 2,000여 명의 청소년들이 찾을 정도로 유명하다. “봉사라는 게 따로 없습니다. 장애인들과 같이 밥 먹어 주고, 손을 맞대고 일도 함께 하고…그것이 봉사예요.”

“고기잡는 법 배워줘야죠”

해냄 공동체 식구들이 독립적으로 생활해 나가기를 바라는 김 원장은 어쩌다 사람들이 온정을 모아 후원금을 건네오면 정중하게 돌려 보낸다. 후원금을 받기 시작하면 자립 의지가 약해져, 어려울 때마다 으레 외부 도움을 기대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입이 적든 많든 장애인들이 일을 갖는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 정신지체 장애인이나 알코올 중독자도 그들에게 적합한 일을 찾아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게 김 원장의 신념이다.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낚는 법을 가르치겠다는 것. 그런 그를 잘 이해하고 따라주는 식구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김 원장은 어렸을 때부터 늘 봉사를 실천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다. 각박한 세상에 이웃을 돌볼 수 있는 따스한 마음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언제나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라는 가르침을 준 어머니 이춘보 여사의 영향이 컸다. 그처럼 성장했기에 그에겐 한양대 신문방송학과(75학번)를 졸업, MBC와 KBS 예능국 프로듀서라는 이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88년, 그는 5명의 장애인들과 대부 (代父ㆍ성세(聖洗) 성사나 견진(堅振)성사를 받는 남자의 종교상의 후견 남자)-대자(代子)관계를 맺은 뒤, 부친 김재원씨와 함께 살던 집에?생활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장애인을 항상 일방적인 도움을 줘야 하는 불쌍한 존재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공동체에도 빈 손으로 오세요. 사랑이 가득한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죠.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오히려 배울 점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푸드뱅크 사업에도 참여

8년 전부터 김 원장은 틈틈이 먹거리를 모아서 공동체의 식구들도 먹고 인근 노인정과 복지시설 등에도 보내는 푸드뱅크(food bank) 사업에도 참여해 하루 20시간(오전 8~다음날 새벽 4시) 동안 분주하게 뛰고 있다. 고양시 일대의 독거 노인과 결식 아동들에게 일일이 음식을 배달한다. 장애인 공동체가 이웃에게 사랑을 나눠 줄 수 있는 따듯한 공간이라는 점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다. 지난달에는 한국을 배우기 위해 들어 온 인도 유학생 3명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현재 한양대에서 랭귀지 스쿨을 다니고 있는 이들은 해냄 공동체에서 학업을 마칠 때까지 생활하며 학비를 지원 받게 된다.

“앞으로 사회복지를 공부하려는 가난한 학생들이지요. 공동체에서 생활하면서 공부를 하면 보다 ‘참’ 공부를 할 수 있고, 인도와 한국을 이어 주는 ‘다리’도 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게 맞아들였습니다.”

어려운 이웃은 물론 버려진 동물까지 받아들여 거대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김 원장. 혈연으로 맺어진 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도 힘든 게 현실인데, 사회에서 소외된 60명 가까운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험난할까. 버려진 이웃들을 돌보느라 결혼도 하지 않은 그는 밤이면 장애인 3명과 더불어 두 평 남짓한 방에서 잠을 청한다.

“어떻게 그러고 살 수 있냐구요?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일 나갔다 돌아 오면 원장이라고 발도 주물러 주고, 제 배에다 얼굴을 묻고 잠이 드는 장애인들과 살을 맞대고 사는 기분을…정말 너무 행복합니다.” 넉넉한 사랑이 있기에, 재활용품으로 일궈가는 해냄 공동체 앞에서 오히려 세상이 남루하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 2004-01-08 21:12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