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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나눔] 순수를 담아내는 휴먼 아티스트
사진작가 조세현
버림받은 영아들의 모습 '천사들의 편지' 사진 작업
소외된 이웃의 영상기록에도 정성 쏟아


#1. 하얀 이불 위에 기저귀 하나 달랑 차고 누운 갓난 아기들. 세상의 그 어떤 슬픔과도 관계가 없을 듯한 천진난만한 모습이 인상적이지만 사실은 입양 전 영아일시보호소에 맡겨진 버려진 영아들이다.

#2. 금세라도 춤을 출 듯 신이 난 10대 아동. 양 볼에 홍조까지 머금으며 한 없이 해맑게 웃는 아이는 한 장애인 시설의 수용 아동이다.


또 모래 사장 위에 놓인 휠체어에 앉아 웃음을 터트리는 소녀나 두 손을 꼭 맞잡고 우정을 과시하는 장애 아동 등 소외된 아이들의 사진인데도 CF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구김살 없이 환한 표정의 커트들이 눈길을 끈다.

이 사진들은 구랍 3일부터 15일까지 금호아트 갤러리에서 열린 ‘천사들의 편지’에 전시돼 연말의 화제가 됐다. 바로 사진작가 조세현(45ㆍ아이콘 스튜디오 대표)씨의 작품들이다.

‘천사들의 편지’ 사진전의 시작은 지난해 10월 영아들의 백일사진을 찍어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사회복지법인 대한사회복지회에서 조씨에게 조심스레 아기들의 사진을 찍어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을 했고, 그는 즉석에서 흔쾌히 승낙했다. “천사 같은 아이들을 찍는 데 마다할 이유가 있나요?”



아기들 순수의 모습에 매료

쉽게 승낙을 얻은 대한사회복지회측은 놀랐지만, 사진을 찍으러 온 조씨는 예쁜 아이들의 모습에 오히려 감동을 받았다. 조씨는 “아무런 꾸밈이 없는 아기들의 순수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은 내게도 큰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10월 중순부터 대략 2주에 걸쳐 천사 같은 3개월 미만의 영아들 22명과 장애 아동 32명의 모습을 촬영했다. 사실 영아를 찍는 작업은 20년 경력의 그에게도 가슴 벅찬 첫 경험이었다. 걱정도 앞섰다. “부모에게 버림 받아 입양을 기다리는 이곳의 아기들은 어린 시절의 기록을 갖기 어렵죠. 그런 이들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찍는 사진인 만큼, 어느 때보다 예쁘게 찍고 싶은 욕심이 났죠.”

하얀 담요 위에 기저귀만 덜렁 차고 누운 22명의 천사들은 같은 배경 안에서도 저마다의 수많은 사연을 쏟아내듯 눈을 감은 채 비스듬히 눕거나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등 특색 있는 모습으로 카메라에 담겼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아기는 심장병을 앓는 선령(가명)이. “그 조그만 몸에 수술 자국이 선명하더군요. 피가 통하지 않아 온 몸은 창백하다 못해 푸르기까지 했어요. 무서운 병마와 싸우며 부모도 없이 어떻게 살아갈지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전시회 수익금 전액은 아이들의 수술비와 보호 장구 구입비 등으로 전달됐다.

조씨의 선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4년 전부터 소외된 이웃을 카메라에 담는 뜻 있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몸이 불편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경북 고령지역 ‘들꽃마을’ 100 여 명의 사진을 찍은 것이 시초였다. 당시 이 마을에서 활동했던 외삼촌 배임표 신부의 부탁이 계기가 됐다. 이 소문을 전해 들은 같은 지역의 사할린에서 온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영정 사진을 부탁해와 틈틈이 이 곳을 방문한다. 조씨는 “가족도 없는 이들이 세상은 떠나도 사진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며 “사진 하나하나가 분신같다”고 말했다.

사진을 통한 휴머니티의 표현

늦가을이면 어김없이 가톨릭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서울 증산동 ‘바오로 교실’을 찾아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30여 명 학생들의 사진을 찍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2000년부터 매년 꼬박꼬박 찍어온 사진들을 모아 ‘성장의 기록’을 만들어갈 작정이다. 10년이 되는 2010년께는 세계적인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조세현씨가 장애아들과 작업할 때 관심을 기울이는 건 그들의 특기다. “네가 가장 잘 하는 것을 해봐”라고 주문하는 식이다. 어떤 아이는 춤을 추고, 어떤 아이는 노래를 부른다. 딱히 할 것을 못 찾고 가만히 서 있는 아이도 있다. 그럴 때면 야단을 치는 대신 “서 있는 게 네 특기니” 하고 물어본다. 아이가 “그렇다”고 하면 그대로 셔터를 누른다. 그 순간 신기하게도 아이의 핸디캡은 특기로 바뀌는 변화가 일어난다.

알려졌다시피 조씨는 고소영, 이영애, 장동건 등 소위 ‘잘 나가는’ 연예인 촬영 전문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소외된 아이들 사진을 찍는다는 말을 들으면, 연말연시 봉사랍시고 하는 ‘쇼’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연예인 사진으로 유명해진 것은 사실이죠. 단지 20년 사진 인생에서 4분의 1일을 투자했는데 이것이 전부처럼 비춰지더군요.”

그의 원래 ‘주 종목’은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뒤 군대를 다녀온 1983년 그가 사진작가로서 사회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사진을 통해 따뜻한 휴머니티를 말하고자 했다. 베트남 보트 피플과 청계천 사람들, 복지시설 수용자들이 그의 주요 관심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80년대 말 패션 잡지 바람을 타면서 방향이 전환됐다. 패션과 연예인 중심으로 옮겨간 것이다. 이때부터 고객들의 입 소문에 힘입어 감각적인 작가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 모교인 중앙대 사진학과 겸임 교수로서 14년째 제자 양성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중국 소수민족 프로젝트에 심혈

요즈음에는 ‘중국 26개 소수민족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다. 4월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개관 예정인 주한중국문화원의 개관전 기념 작품을 준비하는 것이다. 바쁜 와중에도 그는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저 없이 알려달라”며 “평생 사진을 찍을 사람인데 일이 많은 게 문제이겠냐. 좋은 일에는 언제든지 발벗고 나설 생각”이라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입력시간 : 2004-01-1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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