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고용불안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너도나도 취득인증 안 된 사설자격증 남발, 구직자 두번 울리는 사례 많아

[불황의 그늘-자격증] '쯩 공화국' 대한민국 "너만~ 없다"
취업난·고용불안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너도나도 취득
인증 안 된 사설자격증 남발, 구직자 두번 울리는 사례 많아


애완동물 애호가로 파트타임 일자리를 찾던 주부 김모(37)씨는 최근 한 신문광고에서 애완동물관리사 자격증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애완동물에 대한 사회 관심도가 높은 시점에 ‘E협회’라는 곳에서 주관하는 애완동물 관리사 자격증을 따면 “주부라도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정기적금을 깨 교재를 구입했다.

시험 과목은 견 개론심리학과 관계법규, 고객상담 및 데이터 베이스 구축, 시장조사 등 4과목. 말이 자격증 시험이지 공부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실무적으로 관리사의 일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생길 정도였다. 1개월여 만에 자격증을 땄지만 문제는 그 때부터였다. 애완동물인증협회 자격증을 인정하는 애완견 업체는 거의 없었고, 실무경험만을 따졌다.

△ 실효성없는 무용지물 자격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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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쇼핑몰 회사에 근무하는 박모(28)씨는 대학 시절 취업을 앞두고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급하는 전자상거래 자격증을 땄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68만원을 투자, 사설 교육기관을 통해 동영상 교육까지 받아가며 1년여를 준비해 딴 자격증이었다. 그러나 입사 후 당장 자격증이라는 것이 무용지물이라는 걸 깨달았다. 회사에서는 자격증 시험 기초 과목인 서버관리 업무조차 맡기지 않았다. 그는 자격증 소유와는 무관하게 입사 후 6개월간 서버관리 실습을 직접 받아가며 일을 익혀야 했다. 전자상거래 관리사 시험에서는 서버관리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만 묻기 때문에 자격증을 가져도 믿을 수 없다는 게 회사측의 입장이었다. 자격증이 취업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지만 현장 업무와는 동떨어져 실효성이 없었던 셈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는 최모(27ㆍ여)씨는 최근 심리상담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교육생 모집 신문 광고를 보고 마음이 솔깃해졌다. 평소 대인관계가 좋은 최씨는 친구들의 고민을 카운셀링 해주면서 자신의 적성이 심리상담사직에 꼭 맞을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 심리상담사는 각종 심리적 갈등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게 상담을 통해 도움을 주는 전문가. 최씨는 자격증을 부여하는 ‘한국J 자격증협회’라는 곳이 국가 공인기관으로 알고 지정 위탁교육업체를 믿고 찾아갔다.

“고졸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면 자격시험에 누구나 응시할 수 있고 3개월간의 준비를 거쳐 자격증만 취득하면 YMCA나 여성의전화, 청소년문제연구소 등 복지단체나 교육기관, 민간단체 등에 쉽게 취업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최씨는 그 자리에서 교재구입비로 68만원을 신용카드로 결재했다. 그러나 ‘돌 다리도 한번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는 심정으로 심리학연구기관인 (사)한국심리학회에 이 자격증에 대해 문의해 봤더니 설명과 달랐다. 학회 관계자는 “상담직은 수년간의 전문적인 학교 교육과 실습, 수련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전문泰씬막?3개월 공부해 자격증을 따봐야 취업 현장에서 통용되지 않을 뿐 더러 실효성이 없다”고 충고했다. 최씨는 바로 그 업체를 찾아가 교재 구입비 환불을 요청했다.

△ 미 취업자 현혹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자격증이 우리 주변에 범람하고 있다. 자격증 명칭도 그럴듯해. 실내건축인테리어에서부터 자동차관리사, 주택관리사, 건물종합관리사, 경매투자분석사 등에 이르기까지 취업은 물론 고소득이 보장되는 국가자격증인양 취업 희망자들을 현혹시키는 광고들도 난무하고 있다. 여기에다 취업시장의 ‘니치(nich) 마켓(틈새 시장)’으로 떠오르는 아동지도사를 비롯해 애완동물관리사와 베이비시터, 국악지도사, 스포츠마사지사 등 하루가 지나면 새 자격증이 생겨나고 있다.

자격증은 국가가 자격을 부여하는 국가자격증과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민간 자격증으로 나뉜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 개별 법에 의해 국가에서 부여하거나 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해 자격을 부여하는 국가기술자격증은 모두 622개. 민간기관에서 자격을 부여하는 민간자격증은 400여개에 이른다. 최근 광고에 많이 등장하는 애완동물관리사, 심리상담사, 노인복지사 등도 민간자격증이다.(산업인력공단(www.Q-NET.OR.KR)을 통해 자격증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자격증의 실효성이다. 극심한 취업난과 고용불안 등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각종 자격증 취득에 매달리는 구직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취업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최근 취업정보업체 인크루트에 따르면 20대 회원 55만199명 중 자격증을 가진 구직자는 31%(16만9,982명)에 이르며 절반 이상(51.87%)이 자격증을 2~5개를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신용카드보다 자격증이 더 많다’는 일부 구직자의 말은 취업전선에 불고 있는 자격증 열풍을 엿보게 한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자격증이 취업, 고소득 보장 등의 광고와는 달리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국가기술자격 취득자 5,1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우리나라 자격제도의 현황과 개선방향’이란 보고서에 따르면, 자격증 취득 목적은 취업(54.8%)이 자기개발(27.7%)보다 훨씬 높았고, 20ㆍ30대의 경우 취업의 목적이 주류였다. 신분도 학생이 56%로 가장 많았다. 강순희 중앙고용정보원 원장은 “자격증 기능 중 가장 중요한 직업능력에 대한 공신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민간자격이 자유화된 이후 자격증이 남발되면서 실제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며 “국가기술자격증 역시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 바뀌면서 그 기능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직물가공 기능사 등 36개 종목은 산업의 사양화 영향으로 자격시험 응시자가 거의 없다고 한다.

△ 취업 액세서리에 불과

기업들의 신규 채용에서 응시자들의 자격증 보유는 과연 얼마나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한국노동연구원이 2,000여개 사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규 채용에 있어 자격증이 고려되는 경우는 13.2%에 불과했고 경력사원의 경우는 7.8%에 그쳤다. 자격증 소지자의 직무수행능력을 평가한 결과, ‘자격증 소지자의 직무 수행능력이 매우 높다’고 평가한 것은 1.8%로 극히 낮았고 ‘다소 높다’는 평가는 47%로 자격증 소지자의 직무 능력에 대해 50% 이상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상시채용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LG전자의 경우, 특정 부서를 제외하고 정보처리기사 등 컴퓨터 관련 전문자격증 소지자들이 신규 채용과정에서 특별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LG전자 채용담당자 김영중씨는 “자격증 소지 때문에 가산점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그보다는 개인의 조직 친화력, 기본적 인성 등이 더 중요한 부분으로 채용의 기준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결혼 상담사 자격증도 취업시장에서는 시들한 반응이다. 듀오 김경아 인사담당 주임은 “결혼상담사 자격증을 가진 응시자들이 늘고 있지만 채용에서 특별한 가산점을 주지않고 있다”며 “한 달 정도의 기간을 통해 속성으로 딴 자격증 보다는 교사출신 등 지원자의 경력과 사람 됨됨이, 면접에서의 자세 등을 더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금융업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증권 리스크관리팀 관계자는 “신입사원 선발시 리스크관리(FRM) 자격증 보유자를 눈여겨 보지만 이 업무는 다양한 금융기법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해 자격증 소지자가 유리한 것은 아니다”며 “취업을 위해 많은 구직자들이 자격증 취득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은 오히려 낭비”라고 지적했다.

△ 허위ㆍ과장광고로 피해 급증

신문과 인터넷 등을 통한 자격증 수험 교재 광고가 범람하면서 허위ㆍ과장 광고로 인한 구직자들의 각종 피해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자동차관리사 자격증에 관심이 높은 이모(41)씨. 자격취득 교재판매 업체에 전화로 문의하던 중 “국가공인 전문 자격증으로 창업이 가능한 고소득 유망직종”이라는 안내를 받고 48만5,000원에 신용카드로 교재를 구입했다. 그러나 민간자격증인 사실을 몰랐던 이씨는 창업을 하더라도 영업활동을 위해서는 별도의 자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해약을 요구했다.

이씨와 같이 자격증 교재 구입과 관련한 피해사례는 2002년 3,493건에서 지난해 3,850건으로 10% 정도 증가했다(소비자 보호원 통계). 그러나 신고하지 않았거나 지방 등지의 피해사례까지 포함할 경우,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피해자 고발의 대부분은 자격증을 취득하면 ‘취업이 100% 보장 된다’거나 ‘고소득 보장’이라는 문구를 보고 교재를 구입했으나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가장 높았다. 또 회원관리가 부실하거나 국가 공인자격증으로 잘못 알고 계약을 했다 취소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민간기관이 자격증을 부여하면서 ‘한국xx협회’라는 식의 그럴듯한 기관 명을 내세우고 있어 소비자들을 현혹시킨 탓이다.

정순일 소보원 서비스팀장은 “민간자격증은 1997년 제정된 자격기본법에 따라 법인, 단체, 개인 등 누구나 신설해 운영할 수 있어 허위ㆍ과장광고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며 “구직자들은 자격증을 따기 전에 주관단체와 계약조건, 취업 후 실효성 등을 면밀히 알아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4-02-17 15:38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