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바로세우기에 헌신"노무현 사단의 막내, '야인에서 대통령까지' 동고동락한 비서출신

[이 사람을 주목한다 ②] 열린우리당 백원우 당선자 <경기 시흥갑>
"역사 바로세우기에 헌신"
노무현 사단의 막내, '야인에서 대통령까지' 동고동락한 비서출신


“ 1989년 감옥에 있을 때, (학생운동을 해 온) 동료 대학인과 함께 ‘ 재야 인사 중 누가 대통령이 되면 좋겠는가’라는 주제로 논쟁을 벌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저만 유일하게 노무현을 꼽았죠. 그의 고졸 학력이 떠올라, 우리 사회의 비주류 그룹이 한번쯤은 세대 교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랄까, 무조건 좋아했죠. 순수하고 대중적 언어를 갖고 있고…. 지식인적인 가식이 없잖아요.”

운명이랄까. 안희정, 이광재, 여택수씨 등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그룹 중 막내로 꼽히는 백원우(37)씨. 그는 ‘ 야인 노무현’(1997년)에서 ‘ 대통령 노무현’(2003년)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의 곁을 한번도 떠나지 않았다. 6년 간 ‘ 인간 노무현’의 비서로 동고동락 해 온 그가 4ㆍ15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경기 시흥갑 선거구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1위를 차지하며 국회의원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것이다.

백 당선자와 노 대통령의 인연은 1997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 대통령이 15대 총선(1996년)에서 ‘ 꼬마 민주당’ 후보로 서울 종로에 출마, 낙선한 뒤 그의 비서로 들어가면서 ‘ 노무현 사단’에 첫발을 들여 놓았다. 당시 1개월 먼저 노 대통령의 비서로 들어간 안희정씨가 고 제정구 의원의 보좌진으로 있던 백 당선자를 데려온 것이다.

- 대선 때 '노풍' 확산의 숨은 공신

그는 이 때부터 2003년 8월 17대 총선 출마를 위해 청와대를 떠날 때까지 노 대통령 곁을 지켜 왔다. 노 대통령이 자금 부족으로 생수회사인 장수천 사업에 어려움을 겪자 물을 팔아주며 도왔는가 하면, 노 대통령이 한 방송사의 라디오 방송 진행자로 활동할 때는 칼럼 작가로도 활동하는 등 궂은 일을 도맡았다.

특히 백 당선자는 2002년 대선 직전 ‘ 노하우’라는 노 대통령 후보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인터넷 선거운동을 전개, ‘ 노풍’ 확산의 숨은 공신으로 활동했다. 대선 이후에는 대통령직 인수위 전문위원을 거쳐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으로 국정 실무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그에게 올바른 정치인의 길을 몸소 보여 준 ‘ 거인(巨人)’(백 당선자의 표현)은 이미 세상을 떠난 제정구 전 의원이 옳을 듯 싶다.

전대협 2기(1988년) 연대사업국장을 지낸 운동권 출신의 백 당선자는 대학(고려대) 졸업 직전인 1992년, 함께 빈민운동을 하던 친구의 소개로 제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합류해 정치권에서 잔뼈를 키웠다. “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정가에 들어 와 쟁쟁한 정치인들을 보면서 왜 정치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빠져 있었는데, 제정구 라는 거인의 삶을 보면서 인생의 끈을 다시 조였습니다.”

- "정치인 도덕적 권위 회복 시급"

백 당선자에게 정치인의 덕목을 묻자 “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는 결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 노 대통령은 ‘ 우리 사회의 큰 모순 중 하나가 정치와 비정치의 대립이다’고 한 적이 있어요. 국민이 대표(국회의원)를 뽑아놓고 대표를 불신하는 풍토는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낭비입니까?”

백 당선자는 국회 교육위를 지망해 사람의 질을 좌우하는 교육의 문제를 바로 잡는 데 일조하고, 여의치 않으면 문화관광위에 배치돼 서민층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다루고 싶어한다. 그는 더 나아가 16대 국회에서 제대로 만들지 못한 친일 잔재 청산 관련 법안을 손질하고 왜곡된 근ㆍ현대사를 바로잡는 등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에도 앞장서고 싶단다.

김성호 기자


입력시간 : 2004-05-04 17:07


김성호 기자 sh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