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국보법 반드시 다뤄야"재야 운동권의 마당발, '개혁' 일념으로 정치에 입문

[이 사람을 주목한다③] 열린우리당 정봉주 당선자 <서울 노원갑>
"언론개혁·국보법 반드시 다뤄야"
재야 운동권의 마당발, '개혁' 일념으로 정치에 입문


서울 노원갑 지역구에서 율사 출신의 민주당 함승희 의원을 꺾으며 이변을 연출한 열린우리당 정봉주(43) 당선자는 이색 경력의 소유자이다. 재야활동을 하다 민주화운동 동지들과 함께 학원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그가 “우리 사회의 개혁을 위한 일념으로” 제도 정치권에 보란 듯이 입성한 것이다.

한국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그는 재야 운동권에서 마당발로 통한다. 대학 졸업 후 해직 언론인들이 주축이 됐던 ‘민주언론운동협의회’의 간사와 월간 ‘말’지 기자를 지낸 그는 전국적 재야운동 중심체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과 ‘전국민족민주운동협의회’(전민련)의 기획차장으로 활동하면서 민주화운동의 선전ㆍ홍보 업무를 주로 맡아왔다.

특히 정 당선자는 1986년 이후 재야단체의 각종 외신회견에 단골로 통역을 맡았는가 하면, 갓 태동하기 시작한 아시아 민주운동 단체와의 연대교류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시간을 쪼개 영어학원에 열심히 다닌 덕분이다. 그래서 전국적인 규모의 재야운동 단체의 활동을 세계에 알리다 보니 외신 기자들과의 친분도 두텁게 쌓았다.

영어에 남다른 애착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영어과 출신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운동권 인사도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고 한다. “운동권 출신이라는 점이 선명성과 도덕성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사회민주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능력을 기르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되죠.”

그래서 89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영어교육학 전문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뒤 학원사업에 뛰어든다. 사업에 대한 그의 도전은 민주화운동을 함께 한 동지들의 조직력을 바탕으로 업무 추진력과 기획력이 어우러지면서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일명 ‘유서대필사건’의 강기훈과 북한을 방문했던 임수경, 그리고 임무영(동국대 삼민투위원장), 노태훈(제헌의회그룹 중앙위원), 강길호(숭실대 학생회장) 등이 그의 사업을 도왔다.

- 한민족 네트워크 구축에 심혈

그는 학원사업을 시작한 배경에 대해 “운동권 출신이 생업으로 할 수 있는 수단이 무척 제한돼 있어 학원사업으로 많이 뛰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학원사업으로 돈을 벌면서도 운동권 출신으로 사교육 시장에 뛰어든 데 대해서는 늘 개운치 않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사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심하던 정 당선자는 97년 모교인 한국외대와 손잡고 ‘외대 어학원’이라는 벤처기업을 설립했다. 이 어학원은 현재 전국적으로 20여 개의 분원을 두고 있다.

정 당선자는 또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교민 2, 3세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 동부 한글학교 이사직을 맡는 등 한민족 네트워크 건설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정 당선자는 열린우리당 내에서 김근태 원내대표 사단으로 분류된다. 1984년 민청련활동을 하면서 당시 의장이던 김 대표와 인연을 맺었고,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는 김 대표의 싱크탱크인 ‘한반도 재단’에 참여했다. 경선과정에서 김 대표를 돕던 인사들 중 상당수가 “김근태는 힘들다”며 노무현 캠프로 말을 갈아탔지만, 그는 끝까지 남았다.

그는 “민주화 세력이 의회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면 사회 민주화와 개혁은 요원해진다는 인식을 갖고 정치권에 뛰어들었다”며 “언론개혁 및 친일청산 관련 법안과 국가보안법 문제 등을 정면으로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호 기자


입력시간 : 2004-05-11 17:28


김성호 기자 sh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