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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읽을만한 책
정신을 살찌울 풍요의 시간
문화계인사들이 추천하는 연휴에 읽을만한 책


추석 연휴는 바쁜 일상에 쫓겨 미뤄두었던 책 읽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다. 가을 들판이 한 해의 수확을 주듯, 독서는 우리 마음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문화계 인사들의 추천으로 연휴에 읽으면 좋을 책들을 골라봤다.


◇ 이윤기<소설가ㆍ번역가>

▲ 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지음ㆍ김화영 옮김ㆍ현대문학 발행>



나에게 미셸 투르니에 읽기를 권한 사람은 최승호 시인이다.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미셸 투르니에에게는 이상한 힘이 있다. 중독성. 그의 소설도 좋지만 에세이는 더 좋다. 읽다가 뒤집어지기. 한두 번이 아니다. ‘짧은 글, 긴 침묵’ ‘예찬’은 서너 번씩 읽었다. ‘외면일기’도 두 번 읽었다. 투르니에 선생과 김화영 선생의 만남, 우리에게는 축복이다. 두 분은 한해에 한두 번씩 실제로 만난다.


▲ 간지럽고 싶다, 한없이
<김광일 지음ㆍ열림원 발행>


신문기자가 쓰는 문장에는 사투리가 없다. 신문기자가 쓰는 문장에는 부사(副詞)가 거의 없다. 그런데 신문기자를 신문지면이 아닌 문학잡지에다 풀어놓으니 가관이다. 그냥 주먹을 쥐는 것이 아니라 ‘옹그려’ 쥔단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알콩달콩 깨금박지게’ 산단다. 다음과 같은 문장은 소리 내어 읽고 싶어진다. ‘이 시집은 글자 그대로 시집도 무지무지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나 할 것이네요.’


▲ 이야기 동양 신화
<정재서 지음ㆍ황금부엉이 발행>


방송국 녹화장에서 정재서 교수를 만났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근엄한 인문학자께서 드디어 독자들을 상대로 농담을 시작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학계를 향한 인문학이 아닌, 독자를 향한 인문학을 시작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읽으려고 애썼지만 번번이 실패한 중국 신화를 하룻밤에 읽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나의 말은 실제로 방송에도 나갔다.



◇정현숙<화가ㆍ대진대 교수>

▲ 랍스터를 먹는 시간
<방현석 지음ㆍ창비 발행>




2년 전 하노이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차 박대성, 이왈종 선생 등 화가들과 함께 베트남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 사람들의 선하디 선한 눈빛과 몸짓, 맑은 물로 막 씻어놓은듯한 아름답고 다채로운 자연 풍광, 무엇보다 멋모르는 관광객의 입장에서 구찌터널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금방 숨막힐 것 같은 공포에 직면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러다 얼마 전 ‘랍스터를 먹는 시간’이란 소설집을 읽었다. 베트남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질기게 얽혀 있는지, 구찌터널에서 나를 덮치던 공포가 왜 어디서 비롯됐는지, 왜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내야 하는지 이 소설을 읽고 새삼 깨달았다고 할까.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닮은 한국과 베트남의 현대사, 그 역사에 짓밟히고 그러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이 길지 않은 소설에 녹아있었던 탓이다. 참 오랜만에 소설다운 소설을 읽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무라카미 류 지음ㆍ양억관 옮김ㆍ작가정신 발행>


나는 틈 나면 이 책을 꺼내 무라카미 류가 조리해주는 요리 한두 가지를 즐기곤 한다. 작업하다가도 느긋하게 몸의 힘을 뺀 다음 지중해 코트다쥐르 해안 절벽 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바닷가, 혹은 뉴욕 맨해튼의 허름한 뒷골목 식당에서 맛볼 수 있는 각국의 요리들을 책장을 넘기며 골라 먹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 애증, 그리고 그 허망함을 버무려 빚어놓은 짤막짤막한 요리 이야기 한 편 한 편을 읽다 보면 책 속의 한 구절처럼 ‘생명을 맛본듯한’ 느낌이 든다.


▲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지음ㆍ이난아 옮김ㆍ민음사 발행>


이번 추석 연휴에 다 읽어야지, 하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책이다. 처음 몇 장을 읽어보곤 그 기대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400여년 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화가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 역사추리소설인데, 구성과 서술방식이 참 독특하다. “나는 심연에 감춰진 진실과 저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두려워하면서도 그런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살해당해 우물 바닥에 버려진 사자의 목소리는 예술이라는 것의 의미를 일깨우는 듯하다.



◇ 이갑수 <도서출판 ‘궁리’ 대표ㆍ시인>

▲ 침팬지 폴리틱스
<프란스 드 발 지음ㆍ황상익,장대익 옮김ㆍ바다출판사 발행>


침팬지 사회에 추석이 있을까마는, 이 동물 사회가 굴러가는 작동 원리도 인간사회와 꼭 같다. 불화와 화해, 경쟁과 우호 협력, 음모와 술수, 합종연횡, 당파 형성과 권력 교체에 이르기까지. 욕망을 감추는 인간과 달리, 정도의 차이일 뿐 인간과 침팬지는 근본적으로 닮았다는 게 30년간 침팬지를 관찰한 저자의 주장이다. 추석날 한 자리에 모여 또 정치 이야기 하다 괜히 핏대나 올리지 말고 크게 보아 생김새도 비슷한 침팬지를 보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어떨까.


▲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세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지음ㆍ이상원 옮김ㆍ황소자리 발행>


싱거운 소리 한 마디. 인생이 참 지루하고 길어 보이지만 추석 명절 60번만 지내고 보면 어느덧 황혼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처럼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눈을 두 개씩이나 달고 있지만 우리는 시간을 볼 줄 모른다. 시간을 이해하고 시간을 사랑했으며 그 시간 속에서 인생 최고의 가치를 구현했던 한 과학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 앞에 남아있는 시간을 가늠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ㆍ이덕환 옮김ㆍ까치 발행>


이 책의 저자는 호기심을 밑천으로 발품 팔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기를 쓰는 게 원래 전공이었다. 하지만 그는 땅 위를 헤매는 것으로는 성이 안찼는지 이제는 시간 속을 헤집고 다닌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게만 느끼는 지질학, 화학, 천문학, 물리학 등 모든 과학의 역사와 현재를 관통하는 한 권의 책을 만든 것이다. 연휴 동안 하루만 쉬고 나머지 사흘 동안, 30년 걸려도 다 못 배울 과학지식을 잔뜩 챙기는 일. 조상님도 머리 쓰다듬어 주시지 않을까.



◇ 정은숙 < ‘마음산책’ 대표ㆍ시인>

▲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장석남 지음ㆍ창비 발행>


가을엔 서정시에 더 끌리게 된다. 왜일까? 아마 잘 모른다고 대답해야 하리라. 그러나 굳이 말하자면 그것이 내 감정에 더 육박해 온다고 해야 한다. 감정이라니? 그렇다. 나는 여전히 거기에 붙들려 있다. 이 시인의 시를 읽은 이후 나는 서정시에 대한 내 생각을 수정하게 되었다. 서정시는 나약하지 않다. 미당, 김현승 이후 또 한 명의 서정시인 장석남. 연휴의 가을 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보아버린 듯한 조숙한 청춘(?)의 시를, 다 알면 무슨 재미로 사나, 투덜투덜 하면서 나는 또 읽을 것이다.


▲ 릴랙스, 내게 필요한 완전한 휴식
<마이크 조지 지음ㆍ이재원 옮김ㆍ거름 발행>


일이 삶의 가장 중심에 놓인 지 오래. 그러다 보니 나는 휴식하는 법을 잘 모른다. 집에까지 일거리를 싸들고 가는 것도 습관이다. 휴,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인간이 되어 버렸을까. 이 책은 바로 나를 위해 나왔다.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릴랙스해진다. 주5일제다, 격주 휴무제다 말은 많지만 우리는 여전히 휴식하는 법을 모른다. 휴가 동안 이 책을 소리내어 읽으며 쉬어보자. ‘~하자’는 청유형 어미로 끝나는 1001가지 휴식법이 삶을 담백하게 사랑하라고 일깨운다.


▲ 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지음ㆍ창비 발행>


문: 올 여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답: ‘다빈치 코드’. 무슨 모임에 가면 곧잘 ‘다빈치 코드’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이는 왜 우리 작가들은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못 쓰느냐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책을 권한다. 명민한 작가의 소설적 재미, 게다가 우리의 이야기. ’다빈치 코드’와 다른 재미. 우리 명절에 우리 소설이 읽고 싶지 않은가?

입력시간 : 2004-09-2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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