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80년대 미국과 닮은 꼴…재평가 기대에 부풀어간접투자 열풍으로 유동성 풍부, 환율 악재 극복이 과제
증시 네 자릿수 시대 장기호황 신호탄인가 [주가 1,000포인트 시대] 증시, 80년대 미국과 닮은 꼴…재평가 기대에 부풀어 간접투자 열풍으로 유동성 풍부, 환율 악재 극복이 과제
지난 2000년에 이어 5년만에 한국 증시는 다시 네 자리수대를 맞이 했다. 이제 투자자들의 관심은 우리 증시가 과거처럼 1,000 고지에 올라서자 마자 미끄러지지 않고, 새롭게 재평가(리레이팅)될 것인 가에 쏠려 있다. 주식 시장이 지난달 900선을 돌파했을 때만 해도 주가가 네 자릿수 대에 올라설 수 있을 지 반신반의하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채 확신을 갖기도 전 주가는 이미 지난 28일 1,000선 고지에 점을 찍었다. 주가 1,000이 현실로 다가 오자, 투자자들에게는 흥분과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지난 1989년, 1994년, 2000년 세 번이나 1000 고지에 올랐다 미끄러졌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번엔 과거와 다르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면서 미국의 다우 지수처럼 장기 호황 국면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 섞인 전망이 그것이다. 다우 지수는 1980년대초 1,000을 돌파한 이후 무려 20년 동안 1만까지 10배 올랐다.
한국 증시 미국 80년대와 많이 닮아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국 증시는 87년 이후 500~1,000 박스권을 그렸다가 거의 20년만에 다시 1,000을 넘어섰다. 미국의 다우 지수도 지난 61년부터 82년까지 600~1000의 박스권을 그렸다가 1,000을 넘어서면서 리레이팅이 시작됐다. 이후 다우는 20년 동안 장기 호황 국면을 맞이했다. 미국의 다우 지수가 1,000을 넘어섰던 당시의 경제 상황도 지금과 상당 부분 흡사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 말 극심한 인플레이션 영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네 차례나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등 침체 국면에 빠져 있었다. 80년대 초반엔 소비 침체까지 이어졌다. 한국 역시 지난 2002년 신용 카드 사용 남발 등으로 소비 버블이 생긴 후 이것이 터지면서 소비 침체 등 극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미국은 당시 경제 위기론 등으로 혹독한 구조 조정을 탬는덫?이것은 IMF 위기 이후 한국 주요 기업이 구조 조정을 대대적으로 벌였다는 점과 유사하다. 간접 투자 열풍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가계 금융 자산은 1980년대 들어 간접 투자를 통해 주식 시장으로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국의 주식 펀드 투자 자금은 1982년 412억 달러에서 1983년에 537억 달러, 1984년에 770억 달러로 급격히 증가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해부터 적립식 펀드 열풍이 불면서 간접 투자 자금이 늘어났다. 증권 업계에 따르면 적립식 펀드의 계좌 수는 2003년말 20만개에서 지난해 말 100만개로 5배 이상 증가했다.
기술적 분석도 새로운 파동 직면 이윤학 LG투자증권 차티스트(기술적 분석가)는 “현재 한국 주식 시장은 10년 주기의 초장기 사이클인 그랜드 슈퍼 사이클(Grand Super Cycle)의 상승 3국면에 와 있다”며 “ 2005년 이후의 장기 상승 사이클은 조정의 폭과 시기에 따라 변화는 있겠지만 과거 장기 저항선이던 지수 1,000 이 앞으로 중요한 저지선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과거 강한 저항선이었던 1,000에 물려있는 주식들이 많아 이를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김정환 대우증권 차티스트 역시 “기술적으로 봤을 때 한국 증시가 500~1,000 박스권을 탈피한 것으로 보인다”며 “중요한 저항선 중 하나인 960을 뚫음으로써 위로 강하게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가능할까 한국은 그 동안 미국 일본은 물론이고, 대만 인도 태국 중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 내에서도 저평가를 받아 왔다. 주가 수익 비율(PER)을 보면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국가들의 경우 최소한 PER가 10배 이상이었지만 한국의 PER은 통상 7~8배 수준에 머물렀다. PER는 현 주가를 해당 기업의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저평가돼 있음을 나타낸다. 그 동안 한국 증시가 저평가되어 왔던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북핵과 같은 지정학적 요인이 컸다. 그러나 지난달초 북한이 핵 보유 파문을 일으키는 등 여전히 이 요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주가가 강세일 때는 잘 부각되지 못하지만, 투자 심리가 악화돼 왔을 때는 이 같은 요인이 조정의 핑계로 작용해 온 경험이 있다. 또 다른 문제가 삼성전자 등 수조원의 이익을 내는 세계적 기업들. 이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지만, 차세대 성장 엔진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는 것. 이들이 이익을 내는 분야는 대체로 기존 산업의 연장선상인 경우가 많다. 특히 환율 하락 등 불리한 외부적 환경 속에서도 이들 기업이 꾸준한 실적을 낼 수 있을 지 미지수다. 수출 기업의 경우, 환율 악재를 어떻게 극복해낼 수 있을 지도 과제다. 김학균 굿모닝신한증권 애널리스트는 “전체적으로 유동성 등 자금 흐름이 긍정적이어서 특별히 나쁘게 볼 요인은 없지만, 과연 우리 기업들이 환율 하락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비우호적인 환경 속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 지 검증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간접 투자로 인해 풍부해진 유동성을 얼마만큼 지속시킬 수 있느냐도 중요한 변수다. 지난 2000년 증시가 호황일 때 ‘바이 코리아’ 펀드 열풍에 힘입어 증시가 상승했지만, 지속적으로 이를 관리하지 못해 증시 폭락으로 이어진 바 있다. ‘냄비’가 아닌 ‘뚝배기’처럼 장기투자 분위기가 정착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입력시간 : 2005-03-0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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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화 객원 기자 hollyjeo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