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2인자…가톨릭 원칙주의자초 보수적 교리해석으로 미·중동과 갈등, 교회 개혁 시험대에일부 비판적 시각 불구 21세기 화해와 평화의 메신저 역할에 큰 기대

[특집] 제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
20년 2인자…가톨릭 원칙주의자
초 보수적 교리해석으로 미·중동과 갈등, 교회 개혁 시험대에
일부 비판적 시각 불구 21세기 화해와 평화의 메신저 역할에 큰 기대


교황 베네딕토 16세 연보

1927년 4월 16일 독일 바이에른주 마크들암인에서 경찰관의 아들로 출생
1939년 예비 신학교 입학
1943년 급우들과 방공부대로 차출. 뮌헨 외곽 BMW 공장 방어 책임
1945년 독일군이란 신분으로 포로가 됨. 6월 석방. 신학교 재입학
1951년 형 게오르그와 함께 사제 서품 받음
1957년 신학박사 학위 받음
1962~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상담신학 전문가로 근무
1969년 레겐스부르크 대학 교수 부임
1977년 뮌헨과 프라이징크 대주교. 6월 바오르 6세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
1981년 요한 바오르 2세에 의해 로마 가톨릭 신앙교리성 장관에 임명
2002년 추기경단 수석 추기경
2005년 4월 19일 제256대 교황으로 선출.

"하베무스 파팜(교황이 선출됐다)"

지난 19일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 오르고 성 베드로 대성당의 종이 10분간 울려 퍼진 뒤, 호르게 아르투로 메디나 에스테베스 추기경(교황 다음 최선임 추기경)은 새 교황이 선출됐음을 선언했다. 이어 성당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독일 출신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 그가 바로 265대 로마 가톨릭교회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이다.

'아버지'를 뜻하는 이탈리어어 'papa', 영어 'pope'로 불려지는 교황. 전세계 11억 가톨릭인은 말 그대로 새로운 정신적 아버지를 맞이 한 셈이다.

이변은 없었다. 가톨릭 내부의 진보-보수 간 입장 차이로 새 교황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가 적지않은 시간을 소요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시작 이틀 만인 세 번째 회의에서 라칭거 추기경이 새 교황에 뽑혔음을 알리는 '흰 연기'를 피워 올린 것이다. 이는 역대 콘클라베에서 최단시간 중의 하나이다. 최장 기간 진행된 콘클라베는 1268년 클레멘스 4세 교황이 선종한 뒤 이탈리아 비테르보의 한 궁전에서 시작해 2년 9개월 이틀 만인 1271년 9월에야 새 교황 그레고리오 10세를 선출했다.

근 500년 만에 독일인 출신 교황이 된 라칭거 추기경은 1981년부터 신앙교리성 수장으로 직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를 보좌해왔으며 콘클라베가 시작되기 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었다. 그러나 라칭거 추기경은 신학자로서의 명성과 요한 바오로 2세의 신망 등 소위 '준비된 교황'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보수 편향적인 강경 이미지 탓에, 교황 피선에 신중한 전망도 적지 않았다.

라칭거 추기경은 강성 보수 이미지 이외에도 2차 대전과 맞물린 청소년기에 나치에 협력했다는 꼬리표로 인하여 교황 선출에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는 1941년 나치 청소년 조직인 '나치 유겐트'에 입단했었고, 항공기 엔진을 만들던 BMW 공장의 방공포 부대에 근무하기도 했다. 그리고 헝가리 전선에서 유대인 강제 처형을 목격하고 44년 탈영해 전범수용소에 수감 중 종전을 맞았다.

그는 나치 전력과 관련,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일찍이 자서전을 통해 공개 해명했지만 선종한 요한 바오로 2세와 비교되는 행적으로 향후 행보에 일정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바티카니스티(교황을 전담 취재하는 기자)'들이 교황 선종 이후 라칭거 추기경의 여러 긍정적인 모습에 비추어 "라칭거를 둘러싼 (교회 내) 존경의 합의가 존재한다"고 평했던 것이 사실로 입증됐다.

라칭거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2세의 보수적 교리를 철저히 추종한다는 의미에서 추기경 시절 '요한 바오로 3세' '부교황'이라는 별명을 갖기도 했다.

그는 매우 엄격한 '초보수적' 교리해석으로 '신의 로트와일러(충견)'로 불리며 가톨릭 내의 대표적 보수 인사로 꼽혀 왔으며 해방신학, 종교 다원주의, 여성 사제 서품, 사제 결혼 등 진보 진영의 교회 개혁 의견을 분명하게 반대해 왔다. 그는 또 사회적 이슈인 동성애와 이혼, 생명복제, 콘돔 사용, 혼전 성관계 등에도 비타협적 입장을 견지해 '가톨릭 근본주의자'를 자처해 왔다. 이와 관련 해방신학의 출생지인 중남미 신학자들은 해방신학을 '공산주의'라고 까지 규정한 라칭거 추기경의 교황 피선 소식에 우려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주교들에게 편지를 써 낙태를 옹호하는 정치인과 관계를 끊으라고 촉구하기도 하고,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EU 가입에도 반대 입장을 표명,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19일 사설에서 "이슬람과의 화해가 요구되는 시대에 터키의 EU 가입에 반대하는 것은 세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결정"이라고 그의 유럽 중심적 기독교관을 꼬집었다. 나아가 또 자신의 보수적 믿음을 관철시키기 위해 주교를 교체하거나 관구의 예산을 깎기도 하는 저돌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가 가톨릭 교회를 중세 시대에 가두려 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처음부터 보수적인 신앙인은 아니었다고 전한다. 그는 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년)에서 개혁파 요제프 프링스 추기경의 편에 서서 활약하기도 했으나, 1969년 독일 레겐스부르크 대학 교수로 부임한 뒤 당시 유럽을 휩쓸던 68년 학생혁명의 이데올로기이던 신좌파와의 갈등을 겪으면서 보수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베네딕토 16세는 20일 첫 미사 집전에서 자신의 보수 성향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40년 전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천명한 '교회의 현대화와 개혁' 정신을 계속 실천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또한 외신들은 새 교황명을 베네딕토 16세로 택한 것은 향후 교황청의 향배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전한다. 다시 말해 라칭거 추기경이 베네딕토(축복을 의미하는 라틴어)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은 그에 앞선 베네딕토 15세 (1914~22년)의 행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읽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베네딕토 15세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어두운 시절에 분쟁국들 사이에서 화해를 위한 헌신적인 노력을 했다고 평가 받는다.

새 교황이 이름에서 시사했듯, 9ㆍ11 테러, 이라크 전쟁, 팍스 아메리카를 넘은 초강국 미국의 일방주의 등 혼돈으로 시작한 21세기에 화해와 평화의 막강한 메신저 역할을 행사할 지 주목된다.

그는 10개국 언어를 구사하고, 뛰어난 피아니스트로서 베토벤 음악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교황의 과제
진보와의 정신적 조화 어디까지?

조신 차장
가톨릭 교회가 전(前)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가 확장해 놓았던 세속 세계에 대한 권위와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숱한 난제들과 마주쳐야 한다.

지난 90년부터 <가톨릭뉴스통신> 로마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최고의 바티칸 전문가로 평가받는 루트비히 링 아이펠은 최근 저서 '세계의 절대권력 바티칸 제국'(열대림 간)에서 "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무너진 이후 상대주의, 이기주의, 소비사회라는 바이러스는 교회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이지만 이에 맞서 교회가 방벽을 세우는 것은 적절한 면역전략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에게는 종말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특히 "바티칸이 교회 밖의 정신적 경향들과 서로 교류하지 않는다면, 경직된 조직의 꼭대기에 있는 소위 '가톨릭 크렘린'이 될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 경고한다.

그러나 가톨릭 근본주의적 엄격성을 강조해 온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교회 밖의 현대의 정신적 시류와 어떻게 맞닥뜨릴지 초미의 관심사다.

우선 출산 조절 반대, 콘돔 사용 금지, 줄기세포 연구 제한 등 바티칸의 비타협적인 생명윤리 정책을 완화하라는, 교회 안팎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가 가장 골칫거리다.

물론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낙태를 반대하고, 또한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적지 않은 과학자 조차 인간배아의 사용을 금지하는 교회의 정책에 동조하고 있다. 문제는 콘돔 사용이나 생명과학의 제한적 이용까지 반대하는 근본주의적 보수 교리라는 지적들이다.

이와 관련 영국의학협회의 프랜카 트랜자 대변인은 '에이즈 환자가 급증하는 나라들에서 콘돔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며 "우리는 바티칸의 견해에 반대하는 많은 이슈들을 갖고 있으며, 새 교황이 좀 더 진보적인 견해를 취하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또한 바티칸은 대만과 수교를 단절하고 지난 1951년 사제 추방으로 단교했던 중국과의 관계회복에 나설 것인지도 당면 숙제다.

특히 베네딕토 16세에게 기대하는 정치적 영향력은 요한 바오로 2세가 끝까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 노력으로 급진 이슬람 근본주의자조차 이라크 전쟁을 이슬람에 대한 범기독교인의 전쟁으로 이해하지 않았듯이, 문명과 종교가 충돌하는 현장에서 화해와 평화의 전도사로서 권위를 키워 나가는 것이다.


교황, 한국과 인연

조신 차장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한국과의 인연은 그렇게 깊지 않은 것 같다. 우선 그는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 그러나 국내에 교황과 인연을 지닌 몇 사람은 있다.

정종휴(55) 전남대 법과대학장과 김정희(61) 전남대 사범대학 국민윤리교육과 명예교수가 이들이다.

정 학장은 독일에서 공부하던 1991년 라칭거 추기경을 처음 만났다. 당시 뮌헨 대교구 성당에서 봉헌된 추기경 서품 30주년 기념미사에서 그를 만난 정 학장은 "대담집(신앙의 현재 상황-그래도 로마가 중요하다)을 읽고 감동했다"며 번역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얼마 후 라칭거 추기경은 한국 신자들을 위한 서문까지 직접 써서 보내주었다. 이후 정 학장은 매년 서신을 주고 받으며 인연을 이어왔다.

또 국내 가톨릭 여성 신학자 1호인 김 교수는 1972년 신학 세미나에서 첫 만남을 가진 뒤 당시 라칭거 교수가 재직하던 독일 레겐스부르크대에 제자로 들어가 신학 박사가 됐다.

특히 김 교수는 박사과정 때 정신적 지도는 물론, 경제적 도움도 준 그가 교황으로 등극한데 대해 남다른 감회를 피력했다. 김 교수는 97년 전남대 부설 종교문화연구소를 설립할 때도 그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모두 새 교황이 보수적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언행에서 배어 나오는 겸손함과 타인에 대한 섬세한 배려를 갖춘 현인의 참모습을 몰라서 하는 얘기라는 것.

한편 성염 주 교황청 한국대사는 최근 "새 교황이 선출되면 한국에 추가로 추기경이 임명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현재 한국에서 추기경 후보는 대주교와 주교로 각각 3명과 19명. 이 가운데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를 겸하고 있는 정진석(71) 대주교와 광주대교구 최창무(69) 대주교, 춘천교구장 장익(61) 주교 등이 유력한 추기경 후보로 꼽힌다.

조신 차장


입력시간 : 2005-04-28 15:16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