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단의 보석같은 얼굴 다 모였네200여 문인들 참석, 멋과 낭만 나눈 친교 한마당

2005 한국일보 문학인의 밤
한국문단의 보석같은 얼굴 다 모였네
200여 문인들 참석, 멋과 낭만 나눈 친교 한마당


한국 현대문학의 주역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 ‘2005 한국일보 문학인의 밤’ 행사가 6월 30일 저녁 7시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올해 창간 51주년을 맞은 한국일보가, 한국전쟁 이후 문화 불모의 이 땅에 보석 같은 글의 꽃으로 문화의 힘을 키워 온 이들의 성취와 노고에 보답하고, 이어 갈 문학 만세(萬歲)의 다짐을 함께 하는 의미에서 마련됐다. 행사에는 노(老)작가들로부터 갓 등단한 20대 시인, 소설가, 비평가에 이르기까지 명실공히 오늘의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문인 200여 명이 참석했다.

1번은 소설가 김승옥 씨였다.

지난해 뇌졸중으로 쓰러져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던 그는 30일 오후 7시 송현클럽에 열린 행사에 1시간 먼저 나타나 가장 먼저 자리를 잡았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행사장을 지킨 그를 문단의 선배와 ‘무진기행’ 등을 통해 혁명적 감수성의 세례를 받았던 후학들이 반겨 맞았다. 단편 ‘생명연습’으로 1962년 스물 한 살의 나이에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김승옥 씨는 이날 다시 한 번 ‘문청’으로 되돌아 갔다.

행사 내내 자리를 지킨 소설가 이청준 씨는 실어증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갈게’라는 짧은 말을 던지고 먼저 자리를 뜬 그를 두고 “한국일보 출신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이 자리에 오면, 승옥이가 와 있을 것 같았다. 승옥이와 내가 막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60년대 그때로 돌아간 느낌”이라며 살짝 눈물을 비쳤다.

그네들 말고도 ‘문청’은 곳곳에 넘쳤다. CBS FM ‘김갑수의 아름다운 당신에게’을 진행하고 있는 시인 김갑수 씨의 진행으로 3시간에 걸쳐 진행된 행사에서 ‘성탄제’라는 시로 잘 알려진 원로 김종길 선생은 196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당신이 손수 뽑은 시인 이근배(65) 씨의 인사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처럼 부끄러워 하며 단상에 오른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김남조 시인은 “정말 편안 해서 자리를 뜰 수가 없다”며 소설가 오정희 시인 신달자 노향림 등과 함께 아주 늦게까지 행사장을 지켰다.

그뿐이 아니었다. 시인 황금찬 고은 선생과 소설가 조정래 씨가 있었으며 평론가 유종호 백낙청 씨도 자리의 무게를 더했다. 김광규 시인은 “얼추 200명 정도 온 것 같은데 근 10년간 문인들이 이렇게 많이 한자리에 모인 걸 처음 본다”며 “잘 한 행사다. 역시 한국일보의 동원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평했다. 평론가 정과리 씨는 “정말 이런 일이 있기 힘들다. 놀랐다”는 한 마디로 ‘한국일보 문학인의 밤’을 갈음했고 시인 신달자 씨는 “이런 자리를 마련한 한국일보가 건강하게 살아나리라는 염원을 가슴에 묻고 간다”고 했다.

노장과 대가들만이 송현클럽을 점령한 건 아니었다. 불가피하게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소설가 최윤 씨는 일찌감치 찾아와 방명록에 가장 먼저 이름을 남기는 정성을 보였다. “길을 잘 못 찾아 헤맸다”며 부랴부랴 행사장을 찾은 소설가 공선옥 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예의 걸쭉한 입담으로 좌중을 휘어 잡았고 구효서 씨는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멋지게 불렀다.

문단의 대표 주객으로 소문난 이윤학 시인은 백낙청 서울대 교수를 보자마자 대뜸 맥주를 따라드리는 ‘예의’도 차렸다. 뿐만 아니라 한국일보에 ‘길 위의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소설가 이순원 씨도 일련의 문인들을 진두지휘하며 ‘주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2004년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은 김경욱 작가와 올해 ‘미실’로 세계일보 문학상을 탄 김별아, 시인 정끝별 강정 소설가 고은주 등 젊은 문인들의 의기투합도 계속됐다. 소설가 이명랑 씨는 “원로 선생님들을 이렇게 많이 한 자리에서 뵌 건 처음”이라며 “문학이 작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 문학인들을 이렇게 소중히 여겨주시는 이 자리가 정말 즐겁다”고 기꺼워 했다.

여기에 소설가 김훈 씨를 포함해 전현직 한국일보 문학담당 기자들이 총출동한 것도 ‘한국일보 문학인의 밤’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행사장에서 젊은 작가들에게 단연 인기 1위였던

소설가 김훈 씨는 “한국일보 문학 기자로 봉직하면서 시상식 끝나면 술자리 시중까지 들으며 그분들의 체취를 느꼈다. 그리고 글 쓰기 훈련을 했다”며 “늙은 신인 작가로 살아갈 결심을 하고 있다”고 말해 좌중을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 무엇에도 속박당하지 않는, 영원한 자유혼을 늘 품고 사는 이들답게 분방하고 거리낌 없이 노는 자리였던 이날 행사를 한층 보드랍고 도탑게 만들어 준 건 가수들의 따듯한 노래. 포크 그룹 ‘나무 자전거’(자전거 탄 풍경)은 ‘보물’ 등 2곡의 노래를, 가수 김현성은 자신이 작곡한,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 문인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밤이 깊었고 술이 동났지만 행사는 오래도록 계속됐다. 시인 김정환 소설가 공선옥 평론가 방민호 씨 등 20여 명의 문인들은 장소를 인사동으로 옮겨 다음날 새벽까지 술자리를 이어갔다. 중학동 14번지, 한국일보 바로 거기에 한국 문단이 그렇게 오롯이 있었다.

한국일보 13층 송현클럽에서 진행된 '2005 한국일보 문학인의 밤' 행사에서 넒은 실내를 가득 메운 문인들이 담소를 나누며 화합의 정을 나누고 있다. 최흥수 기자.

밝은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는 노향림, 김남조, 김종해, 이근배 시인(왼쪽부터)

소설가 박완서씨와 시인 유안진씨.

축하공연을 하고 있는 노래그룹 '자전거 탄 풍경'. 고영권 기자.


김대성 기자


입력시간 : 2005-07-06 17:42


김대성 기자 lovelily@hk.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