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으로 파고든 성인 오락실

‘요즘 농촌에선 화투나 포커게임을 하려해도 네다섯 사람 모으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 탓에 자연히 소일거리가 없으면 군내 성인오락실에 가서 게임도 하고,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술도 마십니다. 굳이 숨어서 할 필요도, 짝을 찾을 것도 없이 시간 보내기에 성인오락실이 ‘딱’ 입니다. 이곳 기계는 좀처럼 안 터져 본전 복구가 안 됩니다. 조만간 친구들과 정선 강원랜드에 가서 제대로 한 번 베팅해볼까 합니다.”

요즘 성인오락실에 ‘출퇴근’하는, 경남 의령군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 40대 후반 L씨의 말이다. 그는 전형적인 도박 중독증세를 보이고 있다.

올들어 벌써 700만원 넘게 잃었지만 얼마 전 터뜨린 ‘대박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오락실에 가서 ‘본전 생각’ 때문에 잠도 자지 않고 이틀을 꼬박 베팅한 적도 있다.

그러나 다음날 성인오락실을 나설 때 손익계산서는 마이너스 90만원이었다. 빚만 잔뜩 졌다. L씨는 잃은 돈을 생각하면 잠도 안 오고 속도 쓰리지만 게임기 앞에만 앉으면 희한하게 모든 것을 잊는다고 한다.

성인오락실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도 보통이 아니다. 업주들은 한 푼이라고 더 많은 돈을 베팅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고객들에게 담배와 음료수는 물론 공짜 식사까지 배달시켜 준다.

5,000여 도박장 농촌지역서 성업 중

요즘 농촌지역 도박 열풍의 주범은 군과 읍 단위에까지 범람하는 성인오락실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도시에서나 볼 수 있던 사행성 성인오락실이 이처럼 농촌지역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허가제였던 성인오락실 개설이 2003년부터 등록제로 바뀌면서부터다.

여기에 주변에서 여가거리도 찾기 힘든 농촌의 생활 환경도 성인오락실이 붐을 이루는 데 한몫했다.

문화관광부의 시ㆍ도별 게임관련업 현황에 따르면 2005년 7월 기준으로 수도권과 대도시 지역을 제외한 지방에 등록된 성인용 게임업소만 4,100여 곳으로 집계됐다.

전국의 성인오락실 12,00여 곳인 것을 감안하면 30% 이상이 농촌과 군소도시에 몰려있다는 얘기다. 이들 등록된 성인오락실의 게임 형태는 포커, 일본식 빠찡코 등 일반종류과 스크린 경마, 이름도 생소한 바다이야기, 황금성, 남정게임 등 신종이다.

여기에 음성적으로 행해지는 무허가 카지노바, 실내낚시, 투견 등을 합치면 5,000여 도박장이 군소도시와 농촌지역에 성업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월 경북지방경찰청의 도박 일제단속에 적발된 안동의 한 성인오락실 경우 100원이 투입되는 1회 게임당 경품으로 최고 200만원짜리 상품권을 지급한 뒤 다시 현금으로 바꿔주는 수법을 사용해 5개월 동안 75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밝혀졌다.

인근의 또 다른 성인오락실도 하루 1억원의 매출에 1,000만원이 넘는 순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유형의 성인오락실이 안동에서만 50곳이 넘는다.

경북지역 전체로는 700곳 가까운 성인오락실이 성업 중이다. 얼마나 많은 농민과 지역 상인들이 주머니를 털리고 있는지 짐작하기조차 힘든 도박 광풍이다.

경북경찰청 관계자는 “농한기에 호기심에 성인오락실에 들렀다가 한 달 만에 2,000만원을 탕진한 농민도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도박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전직 도박사 P씨는 “단조로운 시골 생활을 하던 사람이 게임도박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쉽지 않다”면서 “어떤 농민은 휴대폰까지 꺼놓고 오락실에서 3박4일 동안 베팅에 정신을 뺏기는 통에 집에서는 실종 신고까지 하는 촌극이 벌여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요즘은 군소도시나 농촌지역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대거 성인오락실로 몰리는 바람에 당구장이나 다방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한다.

도박에 빠진 농민들과 영세상인들 사이 성인오락실 자금 마련을 위한 ‘카드깡’까지 성행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농촌지역까지 이렇게 성인오락실이 성행하게 된 데는 정부의 책임도 없지 않다.

‘도박산업 규제와 개선을 위한 전국 네트워크(이하 도박규제네트워크)’는 문화관광부가 2000년 성인오락실의 경품에 문화상품권을 포함시킨 것 자체가 성인오락실의 불법 도박을 방관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한다.

합법적으로는 현금 경품을 줄 수 없는 사행성 성인오락 사업에 현금과 마찬가지로 통용될 수 있는 문화상품권 발행을 허용함으로써 결국 오락실의 불법 도박행위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도박 중독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실제로 성인오락실에서는 1만원권 지폐를 넣고 게임을 해서 경품에 담청되면 5,000원권이나 1만원권 상품권이 게임기에서 나온다.

고객은 이 상품권을 10%의 수수료를 공제한 뒤 현금으로 환전해 다시 도박한다. 상품권이 도박장의 칩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 ‘도박규제네트워크’는 현행법상 오락기의 허가 권한만 가지고 있는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가 문제가 있는 성인오락실에 대해 등록 취소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사행성 성인오락실에 대한 사후관리 기능을 강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는 도박 열풍 탓에 도박중독자도 크게 늘고 있다. 국내서 유일하게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운영하고 있는 도박중독치료센터의 상담자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도박중독센터의 상담 건수 추이를 살펴보면 2001년 상담자수가 106명에 불과하던 것이 지난해에는 2,098명이나 돼 4년 동안 20배나 급증했다.

다행히 ‘강원랜드’는 올 2월 1일부터 급증하는 도박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카지노 장기출입자를 대상으로 도박중독 상담의무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따라서 도박 중독 상담자 수도 훨씬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상담의무제도는 △2개월 연속 20일 이상을 출입한 고객은 1시간 정도의 의무적인 상담을 △3개월 연속 20일 이상을 출입하거나 4개월 동안 출입이 72일 이상이면 상담 후 가족에게 통보하고 △6개월 동안 출입이 96일 이상이면 상담 후 가족에 통보와 함께 도박중독치료를 유도한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탈법적인 성인오락실에 중독된 농민에 대해서는 실태 파악조차 전혀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탕주의’ 도박 열풍에 무방비로 노출된 농촌 지역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