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모비스 유재학 감독 2005~2006 KCC 프로농구 '연봉 꼴찌팀의 반란' 이끌며 정규리그 우승트로피 안아

스타 선수 하나 없는 울산 모비스가 2005~2006 KCC 프로농구 정규리그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다. 10개 구단 중 선수들의 연봉이 가장 적은 지난 시즌 7위팀 모비스의 우승을 점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주인공은 바로 유재학(43) 감독. 1988년 울산 모비스의 전신인 실업 기아자동차에서 선수로서 농구대잔치 우승을 일궜던 그가 꼭 18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올라섰다.

▲ '코트의 여우'에서 '벤치의 여우'로

유 감독은 누구 보다 화려한 선수 생활을 했다. 용산중, 경복고를 거치면서 우승을 밥 먹 듯 했고, 연세대 졸업 후 86년 기아자동차 창단 멤버로 실업 무대에 데뷔했다.

빠른 두뇌 회전을 바탕으로 한 노련한 게임 운영 능력을 가진 그를 사람들은 ‘천재 가드’ 혹은 ‘코트의 여우’라 불렀다.

87년에는 한 경기서 무려 2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기록은 아마농구에서 지금껏 깨지지 않고 있다. 88년 농구대잔치 우승과 MVP 수상으로 그의 선수 시절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찬란하게 타올랐던 빛은 금세 사그라 들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한창 나이인 27세에 유니폼을 벗어야 했던 것. 덕분에 누구보다 빨리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유 감독은 98~99시즌 35세의 나이로 프로농구 대우의 지휘봉을 잡아 최연소 감독 타이틀을 얻었다.

다양한 전술과 짜임새 있는 농구로 ‘코트의 여우답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지난 시즌까지 7시즌 동안 4강 진출은 단 한 차례. 2004년 당시 최고 연봉인 2억3,000만원을 받고 친정팀 모비스로 옮길 때도 과대 평가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긴 기다림은 결국 그에게 우승 헹가래를 선사했다.

▲ 우승의 키워드는 체력과 경쟁

모비스의 우승 비결은 탄탄한 조직력과 강력한 수비다. 평균 득점이 10대 구단 중 7위에 불과하고, 리바운드는 꼴찌지만 실점과 턴오버가 가장 적다. 이는 강인한 체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부분.

유 감독은 지난 시즌이 끝나자마자 선수 전원을 소집해 서울 신사동과 경기도 분당의 피트니스 센터에서 기초 체력 훈련을 시작했다. 요가 수업까지 받게 했다. 3개월 간 공 한 번 잡지 못하는 지루한 시간이 이어졌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모비스에는 주전과 식스맨의 구분이 없다.

▲ 21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05~2006 프로농구 경기에서 인천전자랜드를 맞아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울산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링그물 커팅을 한 후 양팔을 들어보이고 있다. / 뉴시스
▲ 21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05~2006 프로농구 경기에서 인천전자랜드를 맞아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울산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링그물 커팅을 한 후 양팔을 들어보이고 있다.
/ 뉴시스

유 감독은 경기 시작 30분 전에야 그날 경기에 뛸 멤버를 발표한다.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를 준다.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우지원도, 지난 시즌 신인왕 양동근도 여차하면 벤치 신세. 자연스레 선수들 사이에 경쟁심과 긴장감이 생겨났다.

상대에 따른 적절한 선수 기용과 다양한 전술 구사, 빠른 상황 판단 능력을 가진 유 감독은 다른 구단 사령탑들에게 가장 까다로운 상대로 꼽힌다.

KCC전서는 추승균 수비를 위해 김동우를 활용하고 오리온스전에는 우지원을, LG전에는 현주엽 수비에 능한 김효범을 기용하는 식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능용병’ 크리스 윌리엄스를 발굴한 것도 그다. 독일 소속팀 감독을 따라 터키로 가려던 윌리엄스는 유 감독의 눈빛을 보고 선뜻 한국행을 택했다.

▲ 외로움과 병마를 딛고

동글동글 어려보이는 외모의 유 감독은 사람 좋기로 유명하다. 매너가 좋아 심판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힘들고 외로운 인간 유재학의 모습이 있다.

오랫동안 피말리는 프로 감독 생활을 하며 당뇨병을 얻었고, 올 시즌을 앞두고는 망막 손상으로 시력이 급격히 떨어져 실명 위기를 겪기도 했다.

6년 전 부인 김주연(43)씨와 아들 선호(16), 딸 선아(13)를 미국 LA 근교로 떠나보내고 숙소에서 같은 ‘기러기 아빠’ 신세인 임근배 코치, 미혼 선수들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우승 후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던 그도 가족들 이야기에는 목이 메었고, “왜 이러지”하며 슬쩍 타월을 집어 들어 눈물을 훔쳤다. 지독한 외로움과 오랜 시련을 딛고 일궈냈기에 더욱 값진 우승. 하지만 유 감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준비하겠다”며 챔피언 결정전을 향해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들에게는 ‘유재학 농구’를 즐기는 일만 남았다.


김지원 기자 eddie@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