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결정전 MVP 강혁, 삼성 퍼펙트 우승 이끌며 생애 첫 MVP 등극

서울 삼성의 가드 강혁(30ㆍ188㎝). 지금까지 그는 철저한 조연이었다.

항상 상대팀 슈터의 수비를 도맡으며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그에게 최우수선수(MVP)상은 인연이 없었다. 그동안 5시즌을 뛰면서 그가 받은 상은 식스맨상, 수비 5걸상, 모범상 등 모두 조연급 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한 주연이다. 성실함으로 무장한 그는 매 시즌 기량을 한 단계씩 끌어 올렸고, 마침내 2005~06시즌 챔피언결정전 무대에서 매 경기 고비마다 외곽포를 터트리는 등 삼성의 '퍼펙트 우승'을 이끌며 챔피언결정전 MVP에 올랐다.

올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강혁은 생애 첫 MVP 등극으로 '대박'을 예고했다.

성실과 투지로 성공기 쓰다

강혁은 농구를 위해 타고난 재능은 별로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선수다. 왜소한 체격에 특출한 기량도 없다. 그러나 그에게는 코트를 쉴새 없이 누비는 남다른 성실성이 있다. 강혁의 최대 장점이자 대기만성의 비결이다.

강혁은 성산초등학교 6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자신이 마냥 좋아서 시작한 농구다.

강혁의 어머니 최은예(58)씨는 몸도 작은 막내가 운동하는 게 안쓰러워 반대했지만 강혁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그래서 학교 성적이 떨어지면 하지 않는다는 조건부로 농구하는 것을 허락 받았다. 실제로 중학시절 성적이 떨어지자 잠시 운동을 그만뒀을 정도다.

삼일상고 졸업 때 '그저 그런' 선수였던 강혁은 경희대에서 최부영 감독의 혹독한 조련을 받으며 새로이 태어났다. 대학 4학년 때인 98년에는 MBC배 대학농구대회에서 경희대를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에 올랐다.

그는 MVP 수상 직후 "최부영 감독님은 대학 때 하찮은 선수에 불과했던 내게 투지를 가르쳐주셨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디 높았다. 신인드래프트 3순위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지만 쟁쟁한 선배들에 가려 식스맨을 전전했다. 승패가 갈린 경기 막바지 1분 정도밖에 뛰지 못하니 경기 감각을 익히기도 힘들었고, "선수는 코트에서 뛰어야 하는데"라는 자괴감에도 시달렸다.

그때마다 큰 힘이 되어준 것은 학창시절 농구를 만류했던 어머니였다.

강혁이 부상으로 힘들어할 때나 후보선수로 괴로워할 때나 그의 곁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있었다. 고교시절에는 아들의 운동에 방해될까 싶어 담석수술을 받는 것도 알리지 않았던 어머니였다. 그는 좌절감이 고개를 들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지난 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서 TG삼보에 내리 3번을 져 물러난 그는 올 시즌을 독하게 준비했다.

다른 선수들이 달콤한 휴식에 취하는 중에도 그는 농구공을 잡았다. 시즌 동안에도 외출도 거의 않고 숙소 붙박이로 지내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챔피언결정전 MVP를 거머쥐며 생애 최고의 날을 보냈다.

/ 김지곤 기자

동안의 악바리, 조연에서 주연으로

서른 살 답지 않게 앳된 얼굴에 수줍은 미소. 하지만 코트에만 들어서면 '파이터'로 변했다. 식스맨으로 저평가됐지만 항상 상대팀은 그를 껄끄러워했다.

"이젠 '어리버리' 작전도 안 통하네요." 강혁은 순하게 생긴 얼굴이 자신의 제일 큰 무기였다고 웃음 지었다. '어리버리'한 모습에 상대 수비들도 긴장을 풀었다는 것. 하지만 이제 하도 '악바리'로 소문난 터라 상대팀 경계가 심해졌다고 하소연(?)한다.

챔프전 상대 모비스도 경계대상 1순위로 강혁을 꼽았다. 챔피언결정전 4차전.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그동안의 패배 원인을 강혁에 대한 수비 실패로 분석했다. 그래서 '강혁 봉쇄'로 마지막 배수의 진을 쳤다. 모비스 성준모, 우지원, 김재훈 등은 강혁을 집중 마크했다.

예상은 했지만 상대의 거친 수비에 흥분한 강혁은 4차전 경기 시작 17분이 되어서야 첫 득점을 올리는 등 부진한 출발을 보였다. "할퀴고, 옆구리 치고…. 가뜩이나 빈약한 나를 자꾸 팔꿈치로 치는데 갈비뼈 부러지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악바리다운 기질로 후반 맹활약, 결국 유종의 미를 거뒀다.

MVP 수상자 발표 당시 놀란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강혁은 "4차전서 잘하지 못해 이규섭이 받을 줄 알았다. 내가 우승의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게 너무 좋아 목이 메인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영원한 삼성맨

조연에서 주연으로 발돋움한 강혁은 FA 대박을 예약했다. 이미 그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 김지곤 기자

삼성 고위관계자는 "천금을 주더라도 꼭 강혁을 잡겠다"고 말했다. 올 FA시장에서 최고의 블루칩은 김승현(오리온스)이지만 그의 높은 연봉 3억5,000만원을 감안할 때 연봉 2억원인 강혁이 최고 인상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강혁은 "내 실력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몸값을 높게 부르면 욕을 먹을 것 같다"고 몸을 낮췄다. 또 "삼성이 좋다"며 잔류 의사를 내비쳤다. "삼성에 처음 들어와 지금까지 남은 선수는 이규섭과 나 정도다. 영원한 삼성맨으로 남고 싶다."

그렇다면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의 다음 목표는? 단순하고도 가장 어렵다. "다시는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이지 않도록 다치지 않고 뛸래요."

정규리그 막판 한 달여 동안 발목과 무릎 부상으로 코트에 나서지 못하는 등 부상에 시달렸던 그는 어머니의 눈물에 가장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 놓았다.

'성실 농구'로 자신을 무장해 '클러치 히터' 능력까지 겸비한 강혁은 이제 명실상부한 농구스타로서 힘찬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


오미현 기자 mhoh25@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