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 탈락 불구 월드컵 첫 골에 집 한채 보너스… '검은 돌풍'은 미풍

▲ 12일 밤(한국시간) 독일 카이저스라우테른에서 열린 호주-일본 경기에서 호주 알로이시가 일본 수비를 제치고 세번째골을 성공시키자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2006 독일월드컵이 1차 관문인 조별 리그를 마치고 16강 진출 팀이 가려졌다.

월드컵 본선 32개 출전국 가운데 꼭 절반이 웃고 울었다. ‘히딩크 마법’을 발휘한 호주의 거스 히딩크 감독은 또 한번 월드컵 스타감독으로 떴다. 65억 지구촌 인구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독일월드컵 조별 리그의 안팎을 살펴본다.

계속된 히딩크 신화

거스 히딩크 감독(60)이 이번에는 호주를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16강에 올려놨다. 호주는 23일 슈투트가르트 고트리브 다임러스타디움에서 열린 F조 조별 리그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2-2로 비겨 1승1무1패로 16강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32년 만에 호주를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켜 호주의 영웅으로 떠오른 히딩크 감독이 여기에 그치지 않고 팀을 16강까지 올려 놓는 신화를 이어가면서 ‘역시’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히딩크는 독일월드컵에서 연이어 선제골을 내준 뒤 동점골을 뽑거나 전세를 뒤집는 ‘마법’을 발휘했다.

일본전에서 선제골을 내준 뒤 경기 막판 9분 동안 3골을 몰아쳐 3-1로 대역전승을 거둔 데 이어 16강 진출의 분수령이었던 크로아티아전에서도 호주는 경기 시작 2분 만에 크로아티아에 선취점을 내주면서 기선을 제압당했다.

페널티킥 동점골로 따라붙은 뒤 다시 크로아티아에 1-2로 끌려가던 히딩크 감독은 수비수를 빼고 공격수를 잇따라 투입해 극적인 동점골을 뽑는데 성공했다.

호주 대표팀의 주장이자 간판 공격수인 마크 비두카(31ㆍ미들스부르)는 “히딩크 감독을 위해서라면 그라운드에서 쓰러질 각오가 돼 있다”고 말할 정도로 선수들은 그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이미 1998년과 2002년에 각각 네덜란드, 한국 대표팀을 맡아 월드컵 4강에 올려놓는 업적을 달성한 바 있다.

가는 곳마다 승리를 불러오는 ‘히딩크 마법’이 독일월드컵에서도 계속될지 관심이 쏠린다.

특히 히딩크 감독은 4년 만에 다시 이탈리아와 맞붙는 묘한 인연을 이어갔다. 한국 대표팀을 맡아 한일월드컵 16강에서 이탈리아를 만나 2-1 역전승을 연출했던 히딩크 호주감독은 독일월드컵에서도 이탈리아와 16강에서 만나 ‘어게인 2002’를 꿈꾼다.

처녀 출전국들의 희비

이번 대회 공식 첫 출전국은 가나와 코트디부아르, 토고, 앙골라 등 아프리카 4개국, 북중미의 트리니다드토바고, 유럽의 체코, 세르비아-몬테네그로, 우크라이나 등이다.

이 가운데 우크라이나는 1991년 옛 소련 연방에서 독립한 뒤 처음으로 출전했고, 체코는 체코슬로바키아 국명으로 월드컵에 단골로 나오다 1993년 슬로바키아와 분리된 후 독자 출전했다.

또 세르비아-몬테네그로도 유고슬라비아라는 국명으로 7차례나 월드컵에 출전했었기 때문에 사실상 월드컵 무대가 난생 처음인 국가는 이들 3개국을 제외한 5개국. 트리니다드토바고를 제외하면 모두 아프리카대륙에 속해 있다.

첫 출전국 가운데 16강에 오른 팀은 ‘아프리카의 검은 별’ 가나가 유일하다.

가나는 E조 조별 리그 3차전에서 미국을 2-1로 꺾고 이탈리아(2승1무)에 이어 조2위(2승1패)로 16강에 올랐다. 가나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처음 본선을 밟아 프랑스를 꺾는 등 8강까지 오른 세네갈의 돌풍을 이어갈지 주목된다.

그러나 다른 팀들은 모두 조별 예선리그를 끝으로 짐을 쌌다.

앙골라는 1차전에서 포르투갈에 0-1로 아쉽게 패한 뒤 멕시코, 이란과 잇따라 비겨 고배를 마셨고, 토고는 한국과 스위스에 연패해 탈락했다. 코트디부아르는 우승 후보국인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를 만나 기를 펴보지 못하고 3차전에서 세르비아-몬테네그로를 꺾어 1승을 올리는 데 만족해야 했다.

트리니다드토바고는 1차전에서 스웨덴과 0-0 무승부를 일궈내 이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듯 했으나 잉글랜드와 파라과이에 잇따라 0-2로 패해 단 1골도 넣지 못한 채 퇴장했다.

16강 탈락 팀의 명암

국가별로 ‘16강 탈락’이라는 성적표는 똑같지만 나라마다 반응은 제각각이다. “잘했다”고 갈채를 받는 팀이 있는 반면, 그 자체 만으로도 영웅 대접을 받는 곳도 있다. 이는 팀 성적과 무관치 않다.

D조에서 2무1패로 탈락한 앙골라에게 사상 월드컵 첫 골을 선사한 플라비우(27ㆍ알 알리)는 골을 넣은 대가로 집 한 채를 보너스로 받았다. 16강에 탈락하고도 영웅 대접을 받은 대표적인 케이스다.

22일 이란전(0-0) 후반 15분에 선제 헤딩슛을 성공한 플라비우는 15만 달러짜리 집을 받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전 공격수 아콰를 대신해 후반 교체 투입된 플라비우가 뜻밖의 횡재를 한 셈이다. 앙골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300달러도 안 된다.

22일 세르비아-몬테네그로에 3-2로 이기며 월드컵 첫 출전에 첫 승리의 감격을 맛본 코드디부아르는 16강에 탈락했지만 축제 분위기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코드디부아르 전역에서 수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춤추고 노래 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게다가 2골을 내준 뒤 거둔 역전승은 1970년 멕시코월드컵 이후 36년 만에 나온 것이라 전 세계 축구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반면 초상집도 여러 군데 있다. D조 이란은 감독과 선수가 서로 ‘삿대질’을 하는 등 풍비박산났다.

브란코 이반코비치 감독은 성적부진을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면서 미드필더 알리 카리미(25ㆍ바이에른 뮌헨)가 3차전 앙골라전 출전을 거부했다고 폭로했다. 이란 정부는 이번 논란에 대한 책임을 물어 모하메드 다드칸 축구연맹회장을 전격 해임했다.

3패로 탈락한 A조 코스타리카 선수단은 22일 공항에 내리자마자 위로 대신 욕 세례를 받았다.

산 호세공항 입국장에 선수단이 모습을 드러내자 일부 팬이 입에 담기 험한 욕설을 퍼부은 것. 리오 에레라(65)는 “커피농장 인부 구함”이라고 새겨진 플래카드를 흔들며‘축구를 못하면 농장에서라도 열심히 일해 코스타리카 특산품인 커피로 나라를 빛내라’는 식의 야유를 보냈다.

쓸쓸히 돌아선 톱 스타들

개인적인 기량은 ‘월드 스타’지만 팀 성적이 좋지 않아 월드컵에서 일찌감치 짐을 싸야 하는 불운의 스타들도 많았다.

‘검은 표범’ 파울로 완초페(코스타리카)와 ‘최고의 얼짱’ 로케 산타크루스(파라과이), 디디에 드로그바(코트디부아르), 드와이트 요크(트리니다드 토바고)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독일월드컵을 빛낼 것으로 주목받았으나 조국의 조별 리그 탈락이 확정되면서 쓸쓸한 귀국길에 오르게 된 스타 플레이어들이다.

코스타리카의 간판 골잡이 완초페(30ㆍ에레디아노)는 2002 한일월드컵 때 브라질과 조별 리그서 만회골을 뽑았고, 이번 대회 독일과 개막전에서도 2골을 사냥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코스타리카는 A조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21일)였던 폴란드전에서 1-2로 져 3연패했고, 완초페는 단 1승도 챙기지 못하고 독일을 떠나게 됐다.

이번 대회에서 최고의 미남으로 선정했던 산타크루스(25ㆍ바이에른 뮌헨)도 사정은 비슷하다. A매치 42경기에서 13골을 넣었던 파라과이의 간판 공격수 산타크루스는 팀이 B조 3위(1승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 골 맛도 보지 못하고 독일월드컵과 인연을 끊어야 했다.

그뿐인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 역사상 최고 이적료(3,500만 파운드)를 기록했던 코트디부아르의 ‘축구영웅’ 드로그바(28), 199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3관왕(UEFA챔피언스리그, 프리미어리그, FA컵 우승 석권)에 빛나는 트리니다드의 요크(34ㆍ시드니 FC)도 조별 리그 탈락으로 일찍 귀국길에 올랐다.

한국과 같은 G조에 속했던 토고의 스트라이커 에마뉘엘 아데바요르(22ㆍ아스널)도 팀이 2연패하면서 16강 무대를 밟지 못한 채 퇴장했다. 일본의 나카타 히데토시(31ㆍ볼튼 원더러스)도 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눈물을 삼켰다.


월드컵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