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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발한 노장 투혼, 빛 바랜 샛별
막 내린 '꿈의 구연' 월드컵
기대 못미친 축구 신동들… 지단·피구·레만 등 노장들은 유종의 미
유럽팀 초강세, 아시아·아프리카 된서리… 오심 논란 속 이변 없어



▲ 프랑스를 결승까지 끌어올린 지네딘 지단이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에서 앙리가 골을 넣자 지단 어깨로 뛰어오른 비에이라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 로이터=뉴시스

한 달 동안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꿈의 구연’ 2006 독일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6월 10일 (이하 한국시간) 뮌헨 알리안츠아레나에서 열린 독일과 코스타리카의 A조 조별 리그를 시작으로 막을 연 독일 월드컵은 7월 10일 오전 3시 베를린 올림픽슈타디온에서 열린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결승전을 끝으로 대단원을 맞았다.

‘4강 신화 재현’을 노리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6강 진출 문턱에서 아쉽게 발걸음을 돌리며 ‘원정 월드컵 첫 승’을 기록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월드컵이 아니라 유로 2006’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유럽팀들이 초강세를 보였고 기대를 모았던 샛별들의 활약은 미미했던 반면 은퇴를 목전에 눈 노장들은 마지막 불꽃 투혼으로 축구팬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지난 대회 세네갈, 한국과 같은 돌풍의 팀은 나타나지 않았고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를 뒤집는 이변도 눈에 띄지 않았다.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 지난 한 달간의 월드컵을 되돌아 본다.

아드보카트호, 절반의 성공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결국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6월 13일 프랑크푸르트 월드컵슈타디온에서 토고를 상대로 2-1의 기분 좋은 역전승을 거두며 월드컵 도전 52년 만에 원정 첫 승을 기록한 한국은 19일 라이프치히 월드컵 슈타디온에서 강호 프랑스와 1-1로 비기며 아시아 최초의 2개 대회 연속 16강 진출의 꿈에 부풀었지만 24일 하노버에서 열린 스위스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2-0으로 석패, 16강 고지 등정 9부 능선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아드보카트 호’는 비록 16강 진출이라는 지상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짧은 준비 기간을 고려한다면 결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부임한 아드보카트 감독이 월드컵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9개월 남짓했다. 벼락치기로 준비한 시험임을 감안하면 최소 체면치레는 했다고 볼 수 있다.

또 ‘한국 축구에 절대로 맞지 않는다’는 포백 수비라인을 대표팀에 연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점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그간 세계 축구의 대세임에도 불구, 포백 수비라인의 도입에 번번이 실패한 바 있다.

독일월드컵은 한국 축구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향후 나아갈 길을 제시해준 대회이기도 하다.

한국 축구는 여전히 세계 정상급 팀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과 전술 소화력 등에 있어서 축구 강호들은 여전히 우리보다 한 수 위에 있었다. 조직력과 체력만을 앞세워 ‘세계 축구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클럽팀에서 좀 더 수준 높은 리그의 팀들과 맞부딪힐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하고 기회가 주어지는 선수들은 유럽 선진 리그로 적극적인 진출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것은 K리그의 활성화다. 월드컵이 끝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지만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K리그의 질적 향상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팬들의 지속적인 성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독일월드컵에 출전한 23명의 태극전사 중 16명이 K리그 소속 선수들이다. K리그는 대표팀과 한국 축구의 젖줄이다. K리그 발전 없이 대표팀의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에 다름 아니다.

이변은 없었다

월드컵의 역사는 이변과 파란의 역사다. 지난 대회만 해도 개최국 한국이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거함들을 잇달아 격침시켰고 처녀 출전국 세네갈은 개막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독일 월드컵은 객관적 전력에 따라 승부가 결정됐다. 이변이라고 부를 만한 승부는 가나의 ‘검은 돌풍’이 동유럽 축구의 강국 체코를 무너뜨렸다는 것 정도.

그러나 가나는 마이클 에시엔(첼시)을 비롯, 설리 문타리(우디네세), 스티븐 아피아(페네르바체) 등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들로 이뤄져 다크호스로 주목 받은 팀이라는 점에서 경천동지할 만한 사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유럽과 남미세를 제외한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제 3세계 국가들은 독일에서 된서리를 맞았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출전한 9개국 중 조별 리그를 통과한 팀은 가나가 유일하다. 이란과 일본, 사우디 아라비아 등은 각각 1무 2패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고 한국도 16강 진출의 길목에서 무너졌다. 앙골라, 코트디부아르, 튀니지, 토고 등도 일찌감치 16강행이 좌절됐다.

반면 안방에서 경기를 치른 유럽팀들은 초강세를 보였다.

8강 중 여섯 자리를 차지한 유럽세는 준결승 티켓 4장을 독차지했다. 호화 멤버를 자랑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각각 프랑스와 독일에 덜미를 잡히며 고개를 떨궜다. 유럽팀들끼리 준결승을 치르는 것은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각 팀들의 징크스는 이번 대회에서도 계속됐다. 징크스의 최대 피해자는 ‘축구 종가’ 잉글랜드.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하며 스웨덴 무승 징크스를 깨뜨리는 데 실패했다.

또 8강전에서 루이스 필리프 스콜라리 감독이 이끄는 포르투갈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 ‘스콜라리 징크스’와 ‘승부차기 징크스’를 이어갔다. 잉글랜드는 최근 메이저 대회에서 스콜라리 감독에게 3연패했고 월드컵 본선에서 치른 세 차례 승부차기에서도 모조리 패배했다.

개최국으로서 네 번째 우승을 노리던 독일도 ‘이탈리아 징크스’를 넘지 못했다. 5일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준결승에서 독일은 연장 종료 직전 잇달아 두 골을 내주며 0-2로 패배했다. 독일은 월드컵 본선에서 이탈리아와 5차례 만나 2무 3패로 일방적인 열세를 보이고 있다.

브라질이라는 ‘꿩’을 잡는 ‘매’는 프랑스임도 다시 한번 확인됐다. 역대 최강으로 불렸던 스타군단 브라질은 8강전에서 지네딘 지단(34ㆍ레알 마드리드)의 노련한 경기 운영을 앞세운 프랑스에 0-1로 패배하며 8년 전 프랑스월드컵 결승전에서 당했던 0-3의 참패를 설욕하는 데 실패했다. 브라질은 1986년 멕시코월드컵 8강전에서도 프랑스에게 덜미를 잡힌 바 있다.

뜨지 못한 샛별, 찬란한 빛을 발한 석양

독일월드컵은 사상 최대의 물갈이 장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각국에 대거 포진한 20대 초반의 ‘영건’들의 화려한 비상이 점쳐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각국의 축구 천재들 중 이름 값을 한 이는 독일의 루카스 포돌스키(21ㆍ쾰른)과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도(21ㆍ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정도. 경기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19ㆍ바르셀로나), 잉글랜드의 웨인 루니(21ㆍ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브라질의 호비뉴(22ㆍ레알 마드리드) 등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보였다.

이들 중 가장 큰 망신을 당한 이는 ‘잉글랜드의 신동’ 웨인 루니. 오른발 중족골 부상으로 월드컵 출전이 불투명했던 그는 예상밖의 빠른 회복세를 보여 조별 리그 2차전부터 그라운드를 밟았지만 4경기 출장, 단 한 개의 공격 포인트도 기록하지 못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특히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는 특유의 불 같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상대 수비수의 급소를 발로 밟은 후 맨유 동료 호날도를 밀쳐 레드 카드를 받아 졸지에 ‘잉글랜드의 희망’에서 ‘역적’으로 전락했다.

아르헨티나의 메시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의 조별 리그 2차전 후반 교체 출장, 15분간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천재성을 과시했지만 포지션 경쟁에서 선배들에게 밀리며 선발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다.

브라질의 호비뉴도 쟁쟁한 선배들의 그늘에 가려 4경기 동안 143분을 소화하는 데 그쳤고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데도 실패했다.

신동 그룹의 부진과 대조적으로 노장들은 불굴의 투혼으로 마지막 월드컵 무대를 아름답게 장식했다.

월드컵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 지단은 노쇠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무색하게 하는 원숙한 기량으로 강력한 우승후보 스페인과 브라질에 이어 포르투갈을 잇달아 격침시키고 프랑스가 결승전에 진출하는 데 1등 공신이 되었다.

특히 브라질전 후반 절묘한 프리킥 크로스로 티에리 앙리(아스널)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적장 파헤이라 감독으로부터 ‘최고의 플레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지단과 동갑내기인 루이스 피구(인터밀란)도 어시스트 2개를 기록하는 등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조국 포르투갈을 40년 만에 준결승에 진출시켰다. 피구는 비록 과거와 같은 날카로운 맛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경기의 완급을 조절하고 적재적소에 볼을 투입하며 포르투갈의 ‘안전 운행’을 진두지휘했다.

대회 개막을 앞두고 ‘과체중 논란’에 시달렸던 브라질의 호나우두(30ㆍ레알 마드리드)는 과거와 같은 폭발력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5경기에서 3골을 터트리며 녹슬지 않은 킬러 본능을 뽐냈다. 호나우두는 이로써 월드컵 본선에서 통산 15골을 기록, 게르트 뮐러(독일ㆍ14골)를 제치고 역대 월드컵 본선 최다 득점자로 올라섰다.

이 밖에 골키퍼로서는 환갑이 넘은 나이인 독일의 옌스 레만(37ㆍ아스널)은 아르헨티나와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무려 4발 중 절반의 킥을 막아내는 ‘신기’를 보였고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의 중앙 수비수 피비오 칸나바로(33ㆍ유벤투스)도 ‘카테나치오의 핵’으로서 흠잡을 데 없는 수비력을 보였다.



입력시간 : 2006/07/10 16:26




김정민 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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