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통산 400홈런 돌파… 일본 최고 명문팀의 '보물'로 우뚝

인간 만사의 기본인 ‘믿음’은 야구 무대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이승엽(30·요미우리 자이언츠)이 올시즌 믿기지 않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원인을 여러 가지 꼽을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은 것은 정신적인 면에서의 변화다. 2004년과 2005년 지바 롯데에서 뛸 때 “야구가 하기 싫다”, “공이 잘 안 보인다”는 말은 어느새 옛날 이야기가 됐다.

물론 지난 2년간의 뼈아픈 경험과 타구가 잘 날아가는 도쿄돔이 프랜차이즈 구장이어서 일본 투수들의 변화무쌍한 변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콤팩트 스윙이 자연스럽게 완성됐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올시즌의 굴곡없는 상승세를 설명하려면 벤치의 분위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승엽은 올시즌 운 좋게도 하라 다츠노리 감독(48)을 만났다. 하라 감독은 비교적 합리적인 사령탑으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단점도 적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도 이승엽에게만큼은 100점 감독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하라 감독은 2002년 전임 나가시마 시게오 요미우리 종신 명예감독의 바통을 이어받아 처음으로 사령탑에 오른 뒤 바로 그해 리그 우승을 해 콧대가 높아졌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결국 이듬해인 2003년 프런트와의 마찰로 시즌 중인 9월 유니폼을 벗었다.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하라 감독의 사퇴 소식에 “야구에도 권력 암투가 있는 것 같다”는 조크 아닌 조크를 던지기도 했다.

때로는 합리성의 한켠에 도사리고 있는 고집과 독선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던 하라 감독은 올시즌 3년 만에 요미우리 호에 재승선, 야심차게 키를 잡았다.

그의 첫 작품은 ‘4번 타자 이승엽’이었다. 하라 감독은 이승엽이 지난 2월 열린 월드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5개의 홈런을 치며 홈런킹에 오른 것에 더없이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요미우리의 48번째 4번 타자(이승엽은 70번째)이기도 한 하라 감독은 세계 톱 클래스의 투수들을 상대로 자신감을 폭발시킨 이승엽을 개막 1개월여 전부터 붙박이 4번으로 점찍어 뒀다.

하라 감독이 최대 버팀목

일부 야구 전문가들은 지난해 이승엽보다 4개 많은 34홈런을 친 고쿠보 히로키를 4번 타자로 예상하기도 했지만 하라 감독의 생각은 확고했다.

요미우리 역사상 외국인 선수로는 사상 3번째로 개막전 4번 자리를 꿰찬 이승엽은 강렬한 첫 인상으로 성공 신화를 예고했다. 3월31일 도쿄 돔구장에서 열린 요코하마전에서 다섯 타석에서 모두 출루하며 1호 결승 홈런을 포함해 2타수 2안타 3타점을 기록했다.

경기MVP로 요미우리의 테이프를 끊은 이승엽에게 고비도 있었지만 최대 버팀목은 하라 감독이었다. 개막 15경기를 치른 4월18일과 19일 팬서비를 위해 지방인 구라시키와 오사카 돔구장에서 열린 야쿠르트와의 2경기서 8타수 무안타에 그친 뒤 급격히 타격감을 잃었다. 타이밍을 잡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은 이시이 카즈히사, 이시가와 마사노리 등 2명의 왼손 선발 투수를 잇따라 상대했던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4월20일 한신전에서도 계속 무안타로 부진하다가 연장 11회 마지막 타석에서 구보타에게 끝내기 2점 홈런을 쳤지만 몸이 빠진 상태에서의 빗맞은 타구였다. 이후 이승엽은 11경기서 무홈런으로 침묵했고, 안타를 치지 못한 경기도 5경기나 됐다. 이때 가슴 찡한 감동을 준 사람도 다름 아닌 하라 감독이었다.

어느날 하라 감독은 이승엽이 득점 찬스에서 잇따라 삼진으로 물러나자 통역 정창용씨를 불러 귓속말을 건넸다. “절대 기죽지 말고 자신있게 플레이를 하라. 요미우리 4번 타자로서의 프라이드를 가져라.” 경기중 이 얘기를 전해들은 이승엽은 가슴이 뭉클할 수밖에 없었다.

이승엽은 긴 숨고르기 끝에 5월5일 홈런포를 재가동한 뒤 “부진했을 때도 계속 믿고 밀어준 감독에게 감사한다. 꼭 보답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감격했다. 자신에 대한 감독의 신뢰를 가슴으로 체험한 이승엽은 시즌 6호에 이어 2경기 연속 홈런으로 7호째를 쳐낸 뒤 인터리그를 맞아 대폭발을 하며 일본 정상 정복을 향한 깃발을 올렸다.

우치다 준조 타격코치(59)의 애정어린 어드바이스도 재진격에 단단히 한몫을 거들었다. 타격 밸런스가 갑자기 흔들리는 것을 감지한 우치다 코치는 보도진을 차단한 채 특별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며 키킹 동작의 문제점과 체중 이동 등에 대한 충고를 해주며 이승엽이 미처 느끼지 못하는 부분들을 꼼꼼하게 체크해줬다.

우치다 코치는 당시 이승엽이 슬럼프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절대 그렇지 않다. 2월부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냈기 때문에 정신적,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때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별 조언이 필요없다. 단, 순간 잃어버리기 쉬운 기본적인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을 뿐이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언제 출전 엔트리에서 제외될 줄 몰라 불안해 했던 지바 롯데에서의 2년간과는 전혀 딴판의 세상을 요미우리에서 만났다. 3일 현재 타율 3할3푼(370타수 122안타)에 34홈런, 71타점, 장타율 0.670.

시즌 뒤 거취가 최대 관심사

▲ 아버지 이춘광 씨. 부인 이송정 씨. 아들 은혁이 도쿄돔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 넘는 경이로운 성적을 기록중인 이승엽은 1일 도쿄돔 한신전에서 한-일 통산 400호 홈런을 친 뒤 “내가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고 이런 기록을 세웠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돌을 앞둔 은혁이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뇌의 지바 롯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자신을 지켜준 가족들이 제일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승엽의 부인 이송정씨는 지금도 지난 2년간을 회상하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그러면서도 “그런 때를 잘 이겼기 때문에 지금의 오빠가 있는 것 같다”며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마음 속에 참을 인(忍)자를 그렸을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내가 무너지면 한국 야구의 자존심이 무너진다’는 한가지 신념으로 버텨온 요미우리 4번타자 이승엽. 자신에 대한 강한 신념 그리고 주위의 믿음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만들어진 2006년 최고의 걸작품임에 틀림없다.

아직 언제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승엽이 요미우리 유니폼을 벗을 때 남길 성적표를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가슴 설레는 요즘이다.


도쿄=양정석 통신원 jsyang0615@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