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 클리블랜드 이적 후 만루포 등 팡팡… 마이너 설움 날려

“사람에게는 3번의 기회가 온다잖아요. 야구를 시작했던 게 첫 번째 기회고, 메이저리그 캠프에 합류하는 이번이 두 번째 기회 같아요.”

‘한국인 메이저리그 타자 2호’ 추신수(24ㆍ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청운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간 지 3년째, 2003년 당시 소속팀이던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프링캠프 참가를 앞두고 한 말이다. 그리고 추신수도 예감하지 못한 세 번째 기회는 그로부터 꼭 3년 만에 찾아왔다.

2006년 8월 4일. 정든 시애틀을 떠나 클리블랜드에 새 둥지를 튼 추신수는 자신에게 온 세 번째 기회를 드라마틱한 만루홈런으로 장식했다.

3-3 동점이던 6회초 1사 만루.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 구장인 펜웨이 파크에는 타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맞바람이 불어쳤다. 180㎝ㆍ95kg으로 보통 체격의 동양인 선수가 맞바람을 뚫고 장타를 만들어 내기는 어려워 보였다.

상대 선발 투수는 커트 실링과 함께 ‘원투펀치’를 이루는 보스턴의 ‘영건’ 조시 베켓. 2003년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빛나는 베켓은 초구에 무시무시한 156㎞ 짜리 광속구를 뿌렸다. 순간 추신수의 방망이는 번개처럼 돌아갔고, 타구는 펜웨이 파크에서 가장 깊은 가운데 담장을 살짝 넘어갔다.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첫 그랜드 슬램. 지난 6년간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선수. 평범한 체격의 ‘만년 유망주’. 추신수의 설움도 담장 너머로 훨훨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추신수는 10일 LA 에인절스와의 홈 경기에서는 3안타를 몰아치며 빅리그 첫 도루를 성공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이제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 빠르게 연착륙했다.

못 속이는 피, 못 말리는 끼

2000년 6월 5일. 롯데 자이언츠는 당시 고교 랭킹 1위의 좌완 투수인 부산고 추신수를 주저 없이 1차 지명했다.

추신수는 현재 은퇴 후 미국에서 연수 중인 ‘악바리’ 박정태(롯데 코치)의 외조카로도 유명하다. 추신수는 어린 시절부터 외삼촌을 우상으로 삼고 근성을 키워 왔다. 비단 물려받은 ‘끼’가 아니더라도 그의 학창시절 이력은 화려했다.

추신수는 부산 수영초등학교와 부산중학교를 거치는 동안 투ㆍ타에서 빼어난 활약을 보이면서 일찌감치 재목으로 꼽혔다.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처럼 고교 시절에는 투수로 더 이름을 날렸다. 당시 180㎝ㆍ83kg의 단단한 체구에 왼손에서 내리꽂는 최고 구속 147㎞의 직구는 또래 선수들을 압도했다.

특히 1999년 대통령배 고교야구 결승전에서 어깨와 팔꿈치 통증을 진통제로 버텨가며 9이닝 동안 탈삼진 16개, 3실점의 호투를 하며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이듬해에도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며 부산고에 대통령배 2연패를 안겼다. 소문을 들은 메이저리그 8개팀 스카우트들이 대거 동대문구장을 찾아 진을 치기도 했다.

그해 8월 추신수는 캐나다 에드먼튼에서 열린 제19회 세계 청소년선수권대회에 참가해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고 대회 최우수선수(MVP)와 최우수투수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결승전이 끝난 직후 추신수는 시애틀 구단과 135만 달러에 입단 계약을 했다.

만년 유망주에서 ML 연착륙까지

시애틀은 추신수를 영입할 때부터 투수보다 타자로 키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왼손의 강속구도 구미가 당기지만 고교시절 4번 타자로 활약했던 추신수의 타격 재능을 썩히기 아까웠던 것이다.

2001년 루키 리그를 시작하자마자 추신수는 3할 타율(0.302)로 팀 관계자들을 흡족케 했다. 추신수의 이름이 다시 한국 언론에 등장한 건 2002년. 시애틀 산하 싱글A 위스콘신 팀버래틀스 소속의 추신수는 마이너리그 유망주들의 잔치인 ‘올스타 퓨처스게임’에 월드팀 멤버로 선정됐다. 그해에도 추신수는 타율 3할2리에 7홈런, 57타점, 33도루로 전천후 활약을 펼쳤다.

추신수는 2004년 시애틀에서 ‘올해의 마이너리거’로 뽑히면서 메이저리그 진출의 기회를 잡았다. 이듬해 시범경기에서 타율 3할5푼에 1홈런 4타점으로 맹활약, 마침내 2005년 4월 미국 진출 5년 만에 한국인 타자로는 최희섭(보스턴)에 이어 두 번째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그러나 4경기에서 11타수 1안타로 부진했고 중견수 수비 적응에도 실패했다. 올해도 7월에 잠시 빅리그로 올라왔다가 다시 마이너로 내려갔다.

최고의 마이너리거로 이름을 날렸지만 시애틀의 마크 하그로브 감독은 추신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정교함에 장타력, 빠른 발에 수비와 송구 능력까지 완벽하게 갖춘 이른바 ‘파이브툴(5 tool) 플레이어’였지만 눈 높은 하그로브 감독을 만족시키기는 힘들었다.

추신수는 마침내 7월 27일 시애틀에서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됐다. 모두들 그를 의심했다.

클리블랜드 팬들은 구단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추신수를 데리고 온 이유를 모르겠다”며 그의 영입을 비난했다. 심지어 클리블랜드 지역신문인 ‘더 플레인 딜러’는 당시 현지 스카우트의 말을 인용해 “추신수가 타석에만 서면 겁을 먹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 추신수 프로필

생년월일= 1982년 5월 23일
출신교= 부산중-부산고
체격조건= 180㎝ㆍ95kg
가족= 아내 하원미(23) 씨와 아들 무빈
주요 경력=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2년 연속(1999~2000년) 최우수선수(MVP) 및 우승, 캐나다 에드먼튼 세계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 및 최우수투수, 올해의 마이너리그 선수(2004년), 2006년 마이너리그 성적 타율 3할2푼3리, 13홈런, 48타점, 26도루

이치로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했던 추신수, 세 번째 찾아 온 기회를 또다시 놓칠 수 없었던 추신수의 절박함은 방망이로 폭발했다.

추신수는 지난달 29일 이적 후 데뷔전에서 결승 솔로 홈런포를 쏘면서 화려한 신고식을 했다. 8월 4일 보스터전 결승 만루홈런. 세 차례의 멀티히트, 이때부터 클리블랜드 전역의 눈과 귀는 추신수에게 집중되기 시작했다.

추신수의 영입을 비난했던 클레블랜드 팬들은 180도 태도를 바꿔 ‘추추 트레인’, ‘추바카’ 등 추신수 별명 짓기 운동을 벌이며 열렬한 성원을 보내고 있다.

벗고 싶은 헬멧, 달고 싶은 태극마크

TV에 나오는 추신수의 모습을 보면 ‘귀 보호대’가 양쪽에 모두 달린 헬멧을 쓰는 것이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지금은 당당한 메이저리거지만 마이너리거들이 착용하는 헬멧이다. 모든 헬멧이 서양 선수들 머리 스타일에 맞게 돼 있어 추신수의 머리에 맞는 ‘메이저리거용 헬멧’이 없기 때문이다. 빅리그를 밟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구단에서 미처 준비하지 못 했다.

추신수의 목표는 내년 시즌 머리에 맞는 헬멧을 제공받는 것이다. 풀타임 메이저리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대목이다.

클리블랜드의 에릭 웨지 감독의 추신수에 대한 칭찬 강도는 점점 세지고 있다. 특히 웨지 감독은 “추신수는 항상 뭔가 보여줄 태세를 갖춘 선수”라며 준비된 메이저리거임을 인정하고 나섰다. 웨지 감독의 전폭적인 신뢰와 추신수의 최근 활약상을 감안하면 추신수의 풀타임 메이저리거 꿈은 곧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추신수는 아직도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직접 뛰지 못하고 TV로만 지켜본 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싶은 것이 숨길 수 없는 욕심이다.

그래서 추신수의 올해 목표는 두 가지.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자리 잡는 것과 오는 12월 열리는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히는 일이다. 해외파 선수들의 합류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던 대표팀 김재박 감독(현대)도 연일 스포츠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추신수를 외면하기는 힘들다.

추신수의 홈런포에 열광하는 팬들의 함성은 마치 “나를 기억해 달라”는 추신수의 외침처럼 들려온다.

묵묵히 뒷바라지한 아내의 '추바라기 사랑'

추신수가 6년 넘게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는 동안 가장 큰 후원자 노릇을 해준 이는 아내 하원미(23) 씨다.

2004년 겨울, 양가 어른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하게 결혼식을 올린 사실이 지난해 뒤늦게 현지 언론을 통해 알려져 화제가 됐다. 국내 언론에 미혼으로 알려져 있던 추신수는 지난해 3월 시범경기 도중 '득남 휴가'를 받은 것으로 시애틀 언론에 전해졌다. 당시에는 현지 언론의 오보로 알려졌으나 얼마 안 있어 추신수의 직접 고백으로 결혼 사실이 공개됐다.

갑작스레 트레이드된 추신수는 시애틀을 홀로 떠나 호텔에서 지내다 최근 클리블랜드로 건너 온 아내 하씨, 한 살 난 아들 무빈이와 상봉했다. 이적 후 8월 4일 보스턴전에서 만루홈런을 친 뒤에는 아내로부터 걸려 온 축하전화를 받고 눈시울을 붉혔다. 기댈 곳 없던 이역만리에서의 마이너리그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자신만을 바라보고 내조를 아끼지 않은 아내가 한없이 고마웠을 게다.

추신수는 지난해 결혼 사실이 보도되자 "빅리그에 올라간 다음에 정식으로 결혼식을 가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제 추신수의 소망처럼 떳떳하고 화려한 결혼식을 올릴 날이 멀지 않았다.




성환희 기자 hhsu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