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메달 꿈 현실로 '성큼'… 기술·파워 보강이 관건

80년간 변방국의 한을 삭혀 온 한국 수영계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 21일 캐나다에서 열린 2006범태평양수영선수권에서 어리고 가냘픈 17세 미소년이 가르는 물살에 한국 수영은 ‘희망’을 발견했고, 선진국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올림픽 메달도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한국 수영의 신기원을 이룩한 박태환(17ㆍ경기고 2)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아시아 신기록 2개와 한국 수영 사상 세계대회 첫 번째, 두 번째 금메달을 한아름 안고 24일 금의환향한 박태환은 “세계 최강인 그랜드 해켓(호주·남자 자유형 1,500m 세계신기록 보유자)과 붙고 싶다”며 야무진 각오를 드러냈다.

신동에서 월드스타로

타고난 체격과 발군의 스피드. 육상과 함께 ‘천부성’을 요하는 대표적인 종목이 수영이다. 박태환 역시 ‘천재형’에 가깝다. 5세 때 천식을 치료에 좋다는 의사의 권유로 수영을 시작한 박태환은 땅보다 물이 더 푸근했다. 오로지 수영에만 매달렸다. 어머니 유성미(49) 씨는 “울다가도 물가에만 데려다 놓으면 울음을 뚝 그칠 정도”였다고 술회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수영을 업으로 삼을 줄 몰랐던 박태환에게 최고의 관심사는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도 ‘물’이었다. 개인 사업을 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 유 씨는 만사를 제쳐두고 아들 뒷바라지에 나섰다.

그리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 최연소 대표로 뽑힐 때만 해도 박태환은 ‘유망주’일 뿐이었다. 청운의 꿈을 품고 출전한 올림픽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당해 제대로 레이스도 펼쳐보지 못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그해 11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국제수영연맹(FINA) 경영월드컵 2차 대회 자유형 1,500m에서 은메달을 따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이듬해 동아수영대회 자유형 200m와 400m에서 자신의 첫 한국신기록을 수립하며 한국 수영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박태환은 지난해 한국 신기록을 6개나 작성했고, 마카오 동아시아대회 등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4개나 목에 걸었다. 울산 전국체전에서는 4관왕에 올라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등극했다. 이후 국제대회에 꾸준히 출전하며 기량과 경험을 축적한 박태환은 중장거리 국내 1인자로 떠올랐다. 이미 국내 무대에서 적수는 없었다.

연이은 금빛 물살에 철없던 ‘수영 신동’은 한국 수영의 ‘대들보’로, 이제 한국 수영의 올림픽 메달 색깔을 가늠하는 ‘월드스타’로 급성장했다.

지고는 못 사는 독종, 부모님 앞에선 효자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외모에도 아직 여자친구가 없다는 박태환은 숫기가 없고 말수가 적다.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에 쑥쓰러워하는 모습도 영락없는 사춘기 소년이다. 그러나 훈련에 열중할 때면 코치들이 말릴 정도다.

박태환을 지도해온 대한수영연맹의 우원기 코치는 “부력과 유연성 등 수영에 가장 적합한 몸을 타고났는데 훈련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아이”라며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다.

태릉 선수촌에서 합숙 훈련을 하는 박태환의 평소 훈련 스케줄은 오전 4시30분에 시작된다. 기상과 동시에 수영장으로 나가 새벽훈련을 한 뒤 오전 7시 삼성동에 있는 경기고까지 등교해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수업을 받는다.

오전수업을 마친 뒤 낮 1시께 태릉으로 돌아와 오후 3시부터 다시 낮 훈련, 오후 7시30분까지 저녁훈련이 이어지는 말 그대로 강행군이다. 하루 평균 6시간30분씩 훈련을 하지만 박태환은 불평 한마디 없이 고된 훈련을 소화한다.

박태환이 자신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건 지난 4월 상하이 세계쇼트코스수영선수권대회다. 당시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은메달 2개를 따낸 건 기적에 가까웠다. 대회 불과 두 달 전 맹장수술을 받은 박태환은 훈련을 거의 못하다시피한 상태에서 출전을 강행했다. 부모님과 코칭스태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술 뒤 평소의 2~3배 훈련에 매진했다.

박태환은 우수한 성적을 내는 비결에 대해 “옆 선수를 보며 페이스를 조절하다 보면 마지막에는 꼭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박태환이 열심인 이유는 부모님의 격려에 보답하기 위해서다. 박태환의 어머니 유 씨는 4년 전 유방암 수술을 받았고, 최근에는 오십견이 와 고생했다. 몸이 성치 않은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프다는 박태환이다. 지난 상하이 대회 때 받은 격려금 500만원도 부모님 수술비로 내놓았다. 지난 범태평양수영선수권 대회 성적으로 받을 포상금도 당연히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몫이다.

올림픽 메달은 무슨 색

박태환의 1차 목표는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3관왕이다. 중국의 간판 장린은 더 이상 박태환의 라이벌이 아니다. 이미 세계 스타가 된 박태환에게 아시아 무대가 좁아 보일지 모르지만 박태환의 성장에는 경험이라는 소중한 자산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수영 올림픽사를 새로 쓰기 위해서는 보완하고 가다듬어야 할 점이 있다. 체격을 더 늘려야 한다. 박태환은 올 초 60㎏ 중반대이던 몸무게를 70㎏까지 찌우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지난 범태평양수영선수권에 출전한 박태환의 프로필에 그의 몸무게는 70㎏로 기재돼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목표를 달성했을 만큼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도하 아시안게임까지는 72㎏으로 늘릴 계획.

우 코치는 “기술적인 면에서도 보완을 해야겠지만 체격을 좀 더 늘리는 것이 지상과제다. 무거운 몸을 만들어 힘을 제대로 써야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다”며 박태환의 훈련 방향을 제시했다. 근육이 별로 없어 아직 파워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정상급 선수들이 구사하는 ‘돌핀 킥(양발을 움츠려 위ㆍ아래로 차며 전진하는 동작)’을 마스터하는 것이 목표다.

박태환은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자신감이다. 기술과 체력을 보완하면 올림픽 메달이 꿈만은 아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물론 방심은 금물. 지난 범태평양수영선수권에는 세계 랭킹 1위인 이언 소프와 그랜트 헤켓(이상 호주)을 비롯해 네덜란드의 후겔 벤더 등 세계 3, 4위권의 정상급 선수들이 불참했다.

아테네올림픽 수영 6관왕에 빛나는 미국의 펠프스는 접영으로 종목을 바꿔 박태환과 만날 일이 없었다. 400m의 경우 소프가 2002년 세운 3분40초08, 1,500m는 헤켓의 14분34초56(2001년) 등 세계 기록과도 아직 격차는 있다.

그러나 17세 소년 박태환이 보여 준 능력은 대단했고, 가능성은 무한하다. 몸도, 정신도, 기술도 점점 성장하고 있는 박태환에게는 2년 뒤 베이징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세계의 시선을 모으는 일만 남았다.


성환희 기자 hhsu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