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우, 한국 프로야구 첫 200승 금자탑프로입단 18년, 불혹의 나이에 이룩한 위업… 통산 3,000이닝 새 목표

“차범근 선수처럼 훌륭한 축구선수가 될래요.”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통산 200승을 달성한 송진우(40)의 어린 시절 꿈은 축구선수였다.

달력을 지난 1976년으로 돌려보자. 축구계를 주름잡던 차범근은 제6회 박스컵 말레이시아와의 1차전 1-4로 뒤진 후반 38분부터 7분 사이에 세 골을 성공시켰다. 추억이 깃든 흑백 TV 앞에 모여든 국민이 ‘차범근’을 외치며 열광할 수밖에.

충북 괴산군 증평초등학교 4학년 송진우는 차범근처럼 녹색 그라운드를 누비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던 어느날 날렵하게 축구공을 차던 송진우는 조중혁(89) 교장의 호출을 받았다.

“진우야, 야구를 해보면 어떨까?” 야구부를 창단을 위해 선수를 물색하던 조 교장은 또래 아이보다 운동신경이 탁월했던 송진우를 점찍었다. 이때부터 송진우를 둘러싼 축구부와 야구부의 쟁탈전은 시작했다. 이리저리 피해 다녔지만 결국 야구부의 전리품이 된 송진우는 새로운 꿈을 꾼다. “훌륭한 야구선수가 돼야지!”

'미래의 차범근' 꿈 대신 최고의 투수로 우뚝

딱 30년의 세월이 흐른 2006년 8월 29일. ‘미래의 차범근’을 꿈꾸던 송진우는 광주 KIA전에서 한국프로야구 25년 역사상 첫 통산 200승(142패)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89년 빙그레에 입단한 지 18년 만이다. 200승은 수준급 투수의 기준인 시즌 10승을 20년간 거둬야 이룰 수 있는 대기록. ‘국보급 투수’로 명성을 날렸던 선동열(146승)도 감히 넘보지 못한 기록이다.

세계에서 역대 최다승 투수는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스타 사이영으로 511승(316패)을 올렸다. 월터 존슨(417승)과 그로버 알렉산더(373승)가 사이영의 뒤를 잇고, 현역 선수 가운데는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44ㆍ휴스턴)가 9월 1일 현재 347승(역대 8위)으로 가장 많은 승수를 쌓았다.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재일동포 김정일(일본이름 가네다 마사이치)이 400승(298패)으로 최다승을 거뒀고, 총 23명이 ‘200승 클럽’에 가입했다.

송진우의 200승은 세계 야구사에서 어디쯤 위치할까. 현역으로는 12위, 역대로 계산하면 공동 131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한 시즌 162경기를 치르는 반면 한국프로야구는 126경기에 불과하다. 따라서 송진우의 200승은 경기수로 단순 비교하면 빅리그 258승과 견줄 수 있다. 통산 258승은 빅리그 역대 40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세계 2번째 200승-100세이브라는 진기록도 송진우의 몫. 송진우(200승-102세이브)는 82년 일본프로야구 에나쓰 유타카(206승-193세이브) 이후 200승-100세이브를 달성한 두 번째 투수가 됐다. 200승-100세이브는 13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단 한 명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이다.

프로 데뷔전(89년 4월 12일 대전 롯데전)에서 역대 다섯 번째 신인 데뷔전 완봉승의 주인공이 된 송진우는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찬사를 받았다. 92년에는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다승왕(19승)과 구원왕(25세이브포인트)를 동시에 휩쓸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잘 나가던 송진우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97년과 98년에 고작 6승에 그쳤다. “송진우도 이제 한물갔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체인지업 등 다양한 변화구를 연마하고 제구력을 가다듬은 송진우는 99년 15승(5패)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 8월 29일 역사적인 200승 달성에 성공한 송진우 선수가 광주구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모자를 벗어 인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해 말 프로야구 선수협회 회장을 맡아 밤잠을 설쳤다. “잘못하면 선수 생활이 끝날 수 있다는 생각에 밤에 잠이 안 오더라구요.” 선수 권익에 앞장선 송진우는 ‘회장님’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겨우내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평소 몸관리가 철저했던 송진우는 2000년 5월 18일 광주 해태전에서 역대 최고령(34세3개월2일) 노히트노런을 세웠다.

송진우는 “그동안 선동열, 최동원 등 훌륭한 투수 선배가 많았다”면서 “그러나 지난 18년간 꾸준함으로 일군 200승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제는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털어놓은 송진우는 “통산 3,000이닝을 달성하는 게 마지막 목표다”고 했다. 3,000이닝은 송진우(9월 2일 현재 2,801이닝)가 2008년까지 꾸준히 선발투수로 뛰어야 달성할 수 있는 수치다.

청주 세광중 시절 소년체전 출전을 위해 호적 나이를 고친 송진우는 한국 나이로 마흔 둘이다. 불혹을 넘긴 지 오래지만 ‘회장님’의 야구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상준기자

SBS 스포츠, 대기록 탄생 생중계 외면

송진우가 통산 200승을 달성한 8월 29일은 한국프로야구의 잔칫날이었다. 공교롭게도 96년 전 일본제국주의에 나라를 뺏긴 경술국치일. 송진우의 200승 도전에 눈과 귀를 집중시킨 야구팬의 분노가 폭발한 날이기도 했다. SBS스포츠가 이승엽(30ㆍ요미우리)이 출전한 요미우리-히로시마전을 생중계하느라 송진우의 대기록 도전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SBS스포츠 시청자 게시판에는 "SBS스포츠는 송진우의 200승 도전보다 시청률이 소중하냐?" "이승엽 경기가 끝날 때까지 SBS스포츠에 항의전화하자!"는 야구팬의 화난 목소리가 게재됐지만 SBS스포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SBS스포츠는 송진우가 세 번째 200승에 도전했던 지난 16일 인천 SK-한화전도 생중계를 하지 않고 녹화 중계해 원성을 들었다.

SBS스포츠 관계자는 "이승엽 경기를 생중계하면서 화면 아래 작은 창을 만들어 송진우 경기도 보여줬다"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송진우의 투구 모습이 아니라 한화의 득점 장면 위주로 잠깐씩 비춰주는 데 그쳤다.

축제의 분위기를 즐겨야 할 송진우가 "내 경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고 전제한 뒤 "한국프로야구의 역사를 쓴 경기인데 방송이 외면했다는 사실은 서글프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시청자 염동인 씨는 "8월 29일은 일본에 나라를 뺏긴 지 96년째 되는 경술국치일이다"면서 "이런 수치스러운 날에 일본 경기를 중계하느라 얼마나 힘드냐"고 SBS스포츠를 비꼬았다. SBS스포츠에 항의전화를 했던 한상훈 씨는 "SBS스포츠 여직원이 '그럼 시청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라고 말했다"며 흥분하기도 했다.

시청률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방송의 생리는 이해한다. 하지만 프로야구 25년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송진우의 200승 도전을 두 번이나 외면한 SBS스포츠의 행동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다.

공중파 TV는 물론 케이블 TV마저 외면할 정도로 프로야구의 위상이 떨어졌다고 말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이상준 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