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출신 이태현 이종격투기 진출, 최용수·최홍만과 함께 '트로이카' 구축

‘천하장사’ 이태현(30), ‘투혼의 복서’ 최용수(34), 그리고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26). 씨름과 복싱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대번에 알 수 있는 친숙한 이름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조금은 낯선 무대에 약속이나 한 듯 차례로 서게 됐다. 바로 K-1과 프라이드로 대표되는 이종격투기 무대가 바로 그곳. 9월 10일 프라이드 데뷔전을 치른 이태현을 필두로 16일 최용수, 그리고 30일에는 최홍만이 차례로 나서 일본 이종격투기에 ‘한류 바람’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프라이드 무대로 간 씨름 천하장사

이태현은 가장 최근에 변신을 시도한 주인공. 지난 8월 8일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일본 이종격투기 프라이드행을 선언했다.

프라이드는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종합격투기 무대다. K-1과 함께 이종격투기의 양대산맥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미르코 크로캅 등 강력한 파이터들이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어 K-1의 인기를 추월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는 단체. 그 최고의 무대에 ‘천하장사’ 이태현이 도전장을 던졌다.

프라이드측은 “헤비급의 경우 효도르와 크로캅 등 서양 격투가들이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이태현과 같은 동양 출신의 거물 파이터의 등장은 획기적인 일”이라며 이태현의 프라이드 진출을 반기고 있다.

이태현의 신체조건과 종합격투기 룰을 고려해볼 때 성공 가능성은 최홍만에 못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허리 힘이 강해 상대의 테이크다운(밀어 눕히기)에 견딜 수 있고, 씨름선수 특유의 완력에 관절꺾기 기술 등이 뒷받침된다면 헤비급에서도 충분히 통할 만한 전력이란 평.

다만 타격 경험이 없는 이태현이 과연 프라이드 헤비급 선수들의 묵직한 펀치를 견딜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또한 최홍만처럼 이태현이 단시일 내에 복싱 테크닉을 익힐 수 있는지의 여부도 그의 성공을 가늠할 변수가 될 전망이다.

'헝그리 복서'에서 '헝그리 격투가'로.

복싱 슈퍼페더급 챔피언 최용수는 지난 2월 복서에서 격투가(K-1)로 변신했다. 변신의 이유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한창 나이(23세)였던 1995년 아르헨티나 적지에 가서 세계권투연맹 슈퍼페더급 챔피언이 된 뒤, 7차례 방어에 성공했다가 챔피언 자리를 내주었던 최용수는 2003년 재기전에 실패하며 권투계를 떠났다.

최용수는 이후 복싱 체육관을 전전하다 여의치 않아 한때 버스운전기사가 되기 위해 1종 대형면허 자격증 취득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최용수는 K-1에 뛰어든 이유는 오로지 하나,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복싱 세계챔피언이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최용수는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최용수는 9월 16일 K-1 칸(KHAN) 대회 슈퍼파이트에서 스웨덴 출신의 드리튼 라마와 데뷔전을 치른다. 라마의 특기는 태국 무술인 무에타이. 킥을 주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둘 간의 맞대결 결과는 펀치와 킥이라는 상반된 종류의 타격기술 중 누가 더 뛰어나느냐에 달려 있다.

정상 등극이 눈앞에

그러나 역시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역시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이다.

최홍만은 K-1 진출 이래 최대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상대가 바로 지난 10년간 K-1 최강자로 군림해온 제롬 르 밴너(34)다. 복서 출신으로 95년 K-1에 진출한 이래 아직까지 한 번도 월드그랑프리 챔피언에 오르지 못했지만 실력만큼은 자타공인 K-1 최강. 특히 그가 내뻗는 왼손 스트레이트는 살인적인 파괴력을 갖고 있기로 유명하다.

2000년 밴너는 극진가라데의 ‘대부’인 프란시스코 필리오를 왼손 스트레이트 한 방으로 실신 KO시켰는데 당시 이 모습을 지켜본 K-1의 타니가와 프로듀서는 “1,000년 만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KO”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최홍만이 지난해 판정으로 꺾은 밥 샙(32)보다도 주먹의 파괴력은 한참 위라는 평.

최홍만은 지난해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K-1월드그랑프리 개막전 무대에서 밴너와 숙명의 맞대결을 펼친다. 9월 30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밥 샙을 꺾고 K-1 톱클래스 파이터 대열에 합류한 최홍만이 이번에도 파란을 일으킬지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밴너는 최홍만이 이종격투기로 전향한 뒤 입버릇처럼 ‘우상’이라고 말한 선수. 자신이 과거부터 존경했던 존재와의 맞대결이라는 점만으로도 비상한 관심을 끌어모으는 매치업이다.

일본 언론들도 K-1월드그랑프리 개막전 8경기 중 최홍만-밴너 전을 사실상의 메인이벤트로 보고 있을 정도. 최홍만이 밴너마저 꺾는다면 명실상부한 K-1 최강 파이터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다.


김기범 기자 kik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