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팀 내 부진 불구 亞게임 엔트리 포함베어벡, 기회 부여… "달라진 면모 보여줘야"

‘한국 축구의 희망’, ‘축구 천재’ 등의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다니던 박주영(21ㆍFC 서울)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근 득점포가 뜸한 그는 대표팀 선발에서도 두 차례나 제외되는 시련을 겪고 있다.

박주영은 지난 8월 말 이란, 대만과의 2007 아시안컵 B조 예선전 홈경기를 앞두고 발표된 ‘베어벡호 2기’ 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독일 월드컵 멤버 중 박주영과 안정환(30)이 탈락해 눈길을 끌었다. 소속팀을 정하지 못해 ‘무적(無籍) 선수’가 된 안정환의 제외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됐지만, 비록 최근 부진해도 박주영이 누락될 것이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가나와의 평가전(10월 8일), 시리아와의 2007 아시안컵 B조 예선 5차전(10월 11일ㆍ이상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앞두고 9월 26일 발표된 ‘베어벡호 3기’에서도 박주영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무려 31명이나 되는 ‘예비 명단’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도하 아시안게임과 2008 베이징 올림픽 예선전의 주축이 될 23세 이하의 동년배들이 무려 16명이나 이름을 올린 가운데 박주영이 제외됐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히 아시안게임 엔트리에서도 제외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핌 베어벡 감독은 9월 27일 오전에 발표한 20명의 아시안게임 엔트리에 박주영을 포함시켰다. 시련을 겪고 있는 박주영으로서는 반전의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그러나 하루 만에 박주영을 울리고 웃긴 베어벡 감독의 처사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베어벡 감독은 도대체 박주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현재 보이는 기량은 아직도 기대 이하

베어벡 감독은 9월 27일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를 발표하며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다음주에 아시안게임이 열린다면 박주영을 발탁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며 “박주영은 현재도 작년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못하지만 높은 잠재력을 고려할 때 2개월 후에 과거와 같은 좋은 활약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 그를 선발했다”고 말했다.

현재 그라운드에서 펼치는 플레이는 대표 선수의 선발 기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최근 회복세를 보이는 것을 고려 2개월 후의 ‘달라진 박주영’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이다.

베어벡 감독의 이 같은 발언은 현재 박주영이 처지를 정확히 짚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박주영은 독일 월드컵에서 돌아온 이후 소속팀에서 선발 출장을 보장할 수 없을 정도로 입지가 좁아졌다. 이장수 FC 서울 감독은 컵대회 우승 이후 포지션별 ‘무한 경쟁’을 선언했고 박주영은 스트라이커 자리를 놓고 브라질 용병 두두,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정조국, 노련한 김은중 등과 힘겨운 자리 싸움을 벌여야 했다.

박주영은 출장 기회를 잡아도 예전과 같은 예리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결정적인 골 찬스에서 실수를 하거나 소극적인 플레이를 보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러다 보니 자연히 출장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야 대표팀에 선발될 수 있다’는 베어벡 감독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베어벡 감독은 ‘소속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하는 선수는 절대로 대표팀에 선발될 수 없다’는 원칙을 매우 충실히 지키고 있다. 물론 몇몇 예외는 있다. 그러나 ‘이름값’ 따위는 대표 선수를 선발하는 데 있어 전혀 고려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베어벡 감독의 이 같은 지론을 잘 설명해주는 대표적인 경우가 박주영을 대신해 ‘베어벡호 3기’에 선발됐다고도 볼 수 있는 염기훈(23ㆍ전북)의 발탁이다.

호남대를 졸업하고 올해 전북 유니폼을 입은 염기훈은 아마추어 시절 청소년대표팀이나 올림픽대표팀 선발 등의 ‘엘리트 코스’를 밟지 못했다.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선수 중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20세 이하)이나 올림픽 본선 출전 경험이 없는 유일한 선수가 염기훈이다.

그러나 염기훈은 올 시즌 초반부터 소속팀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였고 특히 최근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방문한 경기마다 매서운 공격력을 과시한 끝에 생애 처음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영예를 누렸다.

‘베어벡호 3기’에 박주영이 제외되고 염기훈이 발탁된 것은 베어벡 감독의 대표 선수 선발에 대한 원칙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베어벡 감독은 현재의 부진만으로 2개월 후 벌어질 아시안게임 엔트리에서도 박주영을 제외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박주영은 이미 검증된 선수이고 그의 컨디션이 좋을 때 어떤 활약을 보였는지를 누구보다 베어벡 감독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스물을 갓 넘긴 어린 나이에 그처럼 풍부한 국제경기경험을 갖춘 선수도 찾아보기 힘들다.

예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린다(?)

일각에서는 ‘박주영이 베어벡 감독의 눈 밖에 난 것 아니냐’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기도 하는데, 베어벡 감독이 과거 박주영에 대해 언급한 말들을 되짚어 보면 오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보다 박주영에 대해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이가 베어벡 감독이다. 베어벡 감독은 지난해 9월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한국을 떠들썩하게 한 박주영이란 존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2005년 6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20세 이하)에서 한국 취재진들을 만나 박주영의 유럽행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던 이도 바로 베어벡 감독이다. 그는 당시 한국 취재진들과 만나 “박주영은 한국 선수들 중 가장 가능성 있는 선수다.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클럽들도 그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그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베어벡 감독은 선수들의 잠재력을 알아 보고 이를 개발하는 데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다. 진흙 속에 묻혀 있다 베어벡 감독의 눈에 들어 스타로 성장한 대표적인 선수가 김남일(29ㆍ수원)이다.

베어벡 감독은 히딩크 감독을 보좌할 시절 “한국 선수로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며 그를 적극 추천,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길러내 바 있다. ‘아드보카트호의 황태자’ 이호(22ㆍ제니트)를 천거한 이도 베어벡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일찌감치 박주영의 재능을 인정한 베어벡 감독이 일시적인 부진을 보였다고 해서 그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보이고 대표팀에 선발하지 않는다는 것은 평소 그의 성향과 다르다. 꾸준히 기회를 주고 지켜보며 선수의 장점을 개발하는 것이 베어벡 감독의 스타일이다.

기대가 큰 만큼 베어벡 감독은 박주영이 좀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하고 있다. 주마가편이랄까. 국제적인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하고 달라진 면모를 보여야 한다고 기회가 올 때마다 박주영을 자극하고 있다.

베어벡 감독은 대표팀 수석코치로 재직하던 지난 2005년 11월 골닷컴이라는 축구 전문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좀 더 팀 플레이에 동화돼야 한다. 유럽에서 뛰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기회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며 박주영의 단점을 일일이 지적한 뒤 “박주영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쓴소리를 했다”고 그를 질책한 배경을 밝힌 바 있다.

최근 베어벡 감독이 잇달아 대표팀 선발에서 박주영을 제외한 뒤 인터뷰에서 그의 분발을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예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는 부모의 심정’으로.


김정민 기자 goav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