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SK 와이번스 새 사령탑 김성근 감독

“승부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팬들에게 재미있는 야구를 서비스해야만 한다.”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신영철 사장이 밝힌 2007년 경영 방침이다. 프로야구가 살아남으려면 승리의 짜릿함은 물론 팬 서비스도 중요하다는 판단.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스포츠(sports)와 오락(entertainment)의 합성어 스포테인먼트(sportainment)다.

SK가 지난 9일 스포테인먼트를 구현할 신임 사령탑으로 김성근(64) 전 LG 감독을 선택했다. 이로써 2002년 LG를 한국시리즈에 진출시켰지만 구단 고위층과의 갈등으로 경질된 김성근 감독은 4년 만에 한국프로야구에 복귀하게 됐다.

또 SK는 국내 최고의 공격형 포수로 명성을 날렸던 이만수(48)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코치를 김성근 감독을 보좌할 수석코치로 내정했다.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 하지만 지도력을 갖춘 김 감독과 상품성을 지닌 이 코치를 통해 성적과 서비스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한 선택이다.

"투혼의 야구를 보여주겠다."

김 감독은 ‘근성(根性)’ 있는 야구를 강조한다. 지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으로 팬들을 사로잡겠다는 뜻.

하지만 김 감독은 “승부의 세계도 중요하지만 이기든 지든 팬들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부터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코치로 활동한 그는 “밸런타인 롯데 감독이 관중 앞에서 춤추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팬이 없으면 프로야구는 망한다. 앞으로 SK는 팬들을 위해 재미있는 야구를 펼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성근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지옥훈련’, ‘관리야구’ 등이다. 실수를 싫어하는 그는 혹독한 훈련으로 선수단을 조련한다. 예외도 없고 성역도 없다. SK 선수단에 “이제 우리는 죽었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야구는 예상밖으로 ‘자율야구’다. 선수들이 스스로 할 일을 깨닫고 실천에 옮긴다면 ‘관리’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 자율야구가 정착되면 SK의 창단 후 첫 우승도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데이터 야구’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는 공부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야구는 확률의 경기다. 따라서 끊임없이 자료를 분석해 작전에 활용하면 실력 이상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는 “통계만으로는 최고가 될 수 없다. 통계와 분석은 참고사항일 뿐 승부처에서는 직감이 중요하다”고 했다. ‘데이터 야구’로 가을잔치에 나갈 수는 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서는 분석과 함께 직감에 따른 용병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수석코치로 이만수 내정

▲ 이만수 수석코치 내정자

“태평양 감독 시절 뜨거웠던 야구 열기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다시 한번 인천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겠다.”

김 감독의 말에 인천야구팬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지난 89년 인천팀으로는 처음으로 태평양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당시 사령탑이 바로 김 감독이기 때문. SK 홈페이지에는 “환영합니다. 감독님. 89년 태평양을 잊을 수 없습니다. 첨으로 인천야구를 보는 맛을 느끼게 해주셨지요” “부탁드리고 싶은 건 한 가지입니다. 인천야구의 부활을 꼭 이뤄주시길 바랍니다” 등 환영의 글이 쏟아졌다.

팬들을 위한 재미있는 야구를 약속한 김 감독은 “성적보다는 팬 서비스가 우선이지만 포스트시즌은 진출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일단 한국을 떠난 지 2년이나 됐기에 선수단 파악이 급선무다. 하지만 그는 “올 겨울 선수단과 함께 착실하게 내년을 준비해 궁극적인 목표(한국시리즈 우승)를 달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탁월한 지도력과 해박한 야구지식을 갖춘 김성근 감독. 그는 태평양, 쌍방울, LG 등 약팀을 맡아 가을잔치에 진출시켰지만 우승 경험이 없어 ‘4강 감독’이라는 혹평도 들었다. 그러나 SK는 기존의 팀과는 달리 어느 정도 전력을 갖춘 데다 선수단 지원도 남다르다. 따라서 그가 ‘우승 청부사’의 임무를 완수하리라 보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SK는 애초에 감독 후보로 김 감독과 이만수 코치를 놓고 저울질했다. 김 감독을 사령탑으로 점찍은 SK는 스포테인먼트 구현을 들어 이 코치를 수석코치로 영입하고 싶다는 뜻을 그에게 전달했다. 감독이 코치를 결정하는 게 프로야구의 오랜 전통. 하지만 김 감독은 “프로는 비즈니스다”면서 이 코치의 영입을 받아들였다.

일본 프로야구를 섭렵한 김 감독과 미국 프로야구를 경험한 이 코치. 이들이 이끄는 SK가 어떤 색깔의 야구를 보여줄지 야구팬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프로야구 60대 감독 전성시대 예고

프로야구에 60대 감독 전성시대가 열릴까.

'근성의 야구'를 강조하는 김성근(64) 감독이 제3대 SK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이로써 2007년 프로야구는 롯데 강병철(60) 감독, 한화 김인식(59) 감독 등 60대 감독이 3명이나 포진하게 된다. 프로야구계를 주름잡던 40대 감독들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줄줄이 사령탑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달력을 3년 전으로 돌려보자. 백인천 롯데 감독, 이광환 LG 감독 등 50~60대 지도자들이 줄줄이 지휘봉을 놓았다. 2003년 말 김응용 삼성 감독을 제외한 7명의 감독 모두가 40대였다. 특히 조범현 감독이 만년 하위팀 SK를 한국시리즈에 진출 시키자 40대 감독 전성시대가 열렸다.

프로야구 감독은 파리 목숨과 같은 신세라고 했던가.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성적이 부진했던 유승안 한화 감독과 김성한 KIA 감독이 물러났다. 올해는 이순철 LG 감독과 조범현 SK 감독이 미역국을 먹었다. 데이터야구의 선구자 김성근 감독은 공교롭게도 수제자 조범현 감독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이제 남은 40대 감독은 삼성 선동열(43) 감독과 두산 김경문(48) 감독뿐.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한 이들과 50대에 접어든 현대 김재박(52) 감독을 제외하면 모조리 물갈이가 됐다. 특히 김인식 감독을 영입한 한화가 지난해 꼴찌후보라는 예상과 달리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자 40대의 패기보다 60대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60대의 급부상도 유행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성적 지상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각 팀 감독의 운명은 순위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상준 기자 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