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SUN'철벽 마운드 조련… 벌써 명장 반열에 올라"9일 개막 아시아 시리즈도 우승하겠다"

지난달 29일 잠실 구장에서 벌어진 삼성과 한화의 한국시리즈 6차전. 경기 초반 0-3으로 끌려 가던 한화는 8회 한 점차까지 따라 붙더니 9회 말 마지막 공격에서 역전 찬스를 잡았다. 선두 한상훈의 중전 안타와 심광호의 보내기 번트로 만든 1사 2루에서 선동열(43) 삼성 감독은 주저 없이 마무리 투수 오승환을 투입했다. 그러나 믿었던 오승환이 조원우에게 내야 안타를 얻어 맞고 1, 3루 위기에 몰리자 선 감독이 직접 다시 마운드에 올라왔다.

선 감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애제자 오승환에게 건넨 말은 “져도 좋으니 자신 있게 던져라”는 한마디였다. 오승환은 계속된 1사 만루에서 클리어를 내야 플라이, 데이비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팀의 한국시리즈 2연패를 확정지었다. 경기 후 오승환은 “감독님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만루 위기에 몰렸지만 결코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털어 놓았다.

데뷔 감독으로 프로야구 사상 첫 2년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 선동열 감독. 과거 모래알 같던 사자들을 조련, ‘정글의 제왕’으로 거듭나게 한 선 감독의 리더십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국시리즈 2연패의 기쁨과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대구구장에서 선 감독을 단독으로 만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어봤다.

두 번 실패는 없다

2004년 삼성 수석코치로 당시 김응용 감독(현 삼성 사장)을 보좌하며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선 감독은 첫해 2차례의 시련을 경험했다. 첫 위기는 4월에 찾아왔다. “당시 감독님께 큰 소리를 뻥뻥 쳤는데 첫 달에 8개 팀 중 방어율이 꼴찌였습니다. 또 5월에는 10연패를 당해 팀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더워지면서 투수들이 서서히 올라오더군요. 결국 팀 방어율 1위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해 현대와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 9차전까지 3차례나 무승부를 벌이는 혈투 끝에 무릎을 꿇었다. “김 사장님께 감독 마지막 해에 우승을 안겨드리려고 신경을 무지하게 썼습니다. 그러나 좋은 결과가 안 나와 속도 많이 상했습니다. 모든 결정은 김 사장님이 하셨지만 수석코치로서 책임감이 컸습니다. 선수들이 그렇게 안돼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독으로서 실패는 하지 말자고 굳게 마음 먹었습니다”.

바꾸지 않으면 우승할 수 없다

이듬해 김 사장으로부터 지휘봉을 넘겨 받은 선 감독은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에 따라 팀 체질 개선에 착수했다. 5년 임기 동안 3번은 우승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선 감독은 가장 먼저 팀의 고질적인 병폐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과거 삼성이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주저 앉은 이유는 큰 것 한방에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 수석코치를 맡았을 때부터 팀 컬러를 바꾸지 않으면 우승은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정규 시즌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한국시리즈와 같은 큰 경기에서는 역시 수비와 투수력에 초점을 맞춘 지키는 야구, 이기는 야구가 관건입니다.”

지옥 훈련에 돌입하다

현역 시절 ‘국보급 투수’로 명성을 떨쳤던 선 감독은 우선 마운드 개혁에 나섰다. 선 감독이 투수들에게 제일 먼저 강조한 것은 체력 강화와 마운드에서의 자신감이었다. “과거 30년간 선수 생활 경험을 비춰볼 때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밸런스입니다. 밸런스가 좋아야 좋은 공을 던질 수 있고,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평소 체력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선 감독은 2005년 괌 전지 훈련을 앞두고 투수들에게 “죽을 각오를 하고 오라”고 선언했다. 투수들은 캠프 기간동안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뛰며 구슬땀을 흘렸고, 3,000개 이상씩 공을 던지며 어깨를 만들었다. 또 당시 선 감독은 직접 "우리는 야구가 아니라 전쟁을 치르는 것"이라는 내용의 10계명 문건을 작성, 투수들에게 나눠주며 승부욕을 불태우게 했다.

이름값은 필요 없다

최고 스타 출신인 선 감독은 선수 기용에 있어서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았다. 과거 삼성이 몇몇 스타에 의존하는 바람에 팀워크가 깨졌고, 곧 이는 만년 준우승으로 이어졌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로 선 감독은 지난해 대구 지역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양준혁이 슬럼프에 빠지자 과감하게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했다. 당시 “야구를 시작한 이후 가장 힘든 해였다”라고 털어 놓은 양준혁은 절치부심, 올 시즌 서른여덟의 나이이 무색한 맹활약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선 감독의 이 같은 용병술은 선수단 전체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나 하나만 잘하면 된다”는 개인주의는 서서히 사라져갔고 팀을 먼저 생각하는 화학적 반응이 ‘융합’을 일으켰다. 선 감독은 또 지난해 첫 우승을 차지한 후 “내가 있는 동안은 이제 더 이상 FA(자유계약선수)를 외부에서 데려오는 일은 없다. 아무리 잘하는 선수라고 해도 오히려 팀워크만 저해할 뿐이다”라고 깜짝 선언을 했다.

달콤한 결실을 맺다

선 감독의 ‘지키는 야구, 이기는 야구’는 2년 연속 우승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2005년 74승4무48패(승률 6할7리)로 정규 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삼성은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 4승 무패를 거둔 데 이어 올해도 주전 선수들이 막판 줄부상을 당하는 가운데서 정규 시즌과 한국시리즈 동반 우승의 쾌거를 이뤄냈다. 82년 원년 이후 데뷔 사령탑이 한국시리즈를 2연패한 건 선 감독이 처음이다.

무엇보다 세대 교체에 성공한 마운드가 가장 큰 밑거름이 됐다. 오승환, 권오준, 권혁, 임동규, 정홍준, 안지만 등 선 감독이 키워낸 젊은 투수들은 ‘지키는 야구’의 선봉에 섰다. 또 큰 것 한 방보다는 기동력과 세밀한 작전을 앞세우는 선 감독의 절묘한 벤치워크는 특히 1점차 승부와 단기전에서 빛을 발했다. 삼성은 올 시즌 한화와의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 연속 연장전을 벌이면서도 2승1무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지난 2년간 한국시리즈에서 거둔 8승 중 4승을 1점차 승부에서 따냈다.

난 아직도 배고프다

선 감독은 85년 프로입단 이후 선수(해태 86~89년, 91, 93년ㆍ일본 주니치 드래곤스 99년)와 감독(2005, 2006년)으로서 9차례나 정상의 감격을 맛봤다. 그러나 선 감독은 임기가 끝나는 2009시즌까지 한 번은 더 우승하고 싶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5년간 내내 우승하면 좋지만 어디 야구가 뜻대로 되나요. 아무튼 내년에 타선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통해 우승에 도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0번째 우승을 채우면 좋겠죠”.

선 감독은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우승의 기쁨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곧바로 선수단을 이끌고 훈련에 돌입했다. 9일부터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제2회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한국과 일본ㆍ대만 리그 우승팀과 중국 올스타팀이 참가하는 이 대회에서 삼성은 지난해 일본 챔피언인 지바 롯데 마린스에 예선과 결승전에서 잇따라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올해는 일본 니혼햄과 대만 라뉴 베어스를 넘어야 정상을 넘볼 수 있다. “한국시리즈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제대로 상대팀 전력 분석도 못했지만 지키는 야구로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올 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투수 코치를 맡아 한국의 4강 쾌거에 일조했던 선 감독이 한국시리즈 2연패에 이어 ‘아시아 정벌’의 꿈을 이루며 올해 화룡점정을 찍을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선동열 프로필

▲생년월일= 1963년 1월10일

▲신체= 185㎝ㆍ97㎏

▲출신교= 광주 송정동초-무등중-광주일고-고려대

▲가족 관계= 아내 김현미(41) 씨, 아들 민우(16), 딸 민정(14)

▲경력=해태(85~95년) 주니치(96~99년)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위원(2000~2003년) 삼성 코치(2004년) 삼성 감독(2005년~)

▲주요 경력=다승 1위(86, 89~91년) 평균자책점 1위(85~91, 93년) 승률 1위(87, 89~91년) 탈삼진 1위(86, 88~91년) 구원 1위(93, 95년) 세이브 1위(93, 95년) 페넌트레이스 MVP(86, 89ㆍ90년) 골든글러브(86, 88~91, 93년)

▲감독 경력=페넌트레이스 1위(2005ㆍ2006년) 한국시리즈 우승(2005ㆍ2006년)




대구=이승택기자 lst@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