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SUN'철벽 마운드 조련… 벌써 명장 반열에 올라"9일 개막 아시아 시리즈도 우승하겠다"
선 감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애제자 오승환에게 건넨 말은 “져도 좋으니 자신 있게 던져라”는 한마디였다. 오승환은 계속된 1사 만루에서 클리어를 내야 플라이, 데이비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팀의 한국시리즈 2연패를 확정지었다. 경기 후 오승환은 “감독님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만루 위기에 몰렸지만 결코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털어 놓았다.
데뷔 감독으로 프로야구 사상 첫 2년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한 선동열 감독. 과거 모래알 같던 사자들을 조련, ‘정글의 제왕’으로 거듭나게 한 선 감독의 리더십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국시리즈 2연패의 기쁨과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대구구장에서 선 감독을 단독으로 만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어봤다.
두 번 실패는 없다
2004년 삼성 수석코치로 당시 김응용 감독(현 삼성 사장)을 보좌하며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선 감독은 첫해 2차례의 시련을 경험했다. 첫 위기는 4월에 찾아왔다. “당시 감독님께 큰 소리를 뻥뻥 쳤는데 첫 달에 8개 팀 중 방어율이 꼴찌였습니다. 또 5월에는 10연패를 당해 팀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더워지면서 투수들이 서서히 올라오더군요. 결국 팀 방어율 1위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해 현대와 맞붙은 한국시리즈에서 9차전까지 3차례나 무승부를 벌이는 혈투 끝에 무릎을 꿇었다. “김 사장님께 감독 마지막 해에 우승을 안겨드리려고 신경을 무지하게 썼습니다. 그러나 좋은 결과가 안 나와 속도 많이 상했습니다. 모든 결정은 김 사장님이 하셨지만 수석코치로서 책임감이 컸습니다. 선수들이 그렇게 안돼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독으로서 실패는 하지 말자고 굳게 마음 먹었습니다”.
바꾸지 않으면 우승할 수 없다
이듬해 김 사장으로부터 지휘봉을 넘겨 받은 선 감독은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에 따라 팀 체질 개선에 착수했다. 5년 임기 동안 3번은 우승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선 감독은 가장 먼저 팀의 고질적인 병폐를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과거 삼성이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주저 앉은 이유는 큰 것 한방에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처음 수석코치를 맡았을 때부터 팀 컬러를 바꾸지 않으면 우승은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정규 시즌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한국시리즈와 같은 큰 경기에서는 역시 수비와 투수력에 초점을 맞춘 지키는 야구, 이기는 야구가 관건입니다.”
지옥 훈련에 돌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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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감독은 2005년 괌 전지 훈련을 앞두고 투수들에게 “죽을 각오를 하고 오라”고 선언했다. 투수들은 캠프 기간동안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뛰며 구슬땀을 흘렸고, 3,000개 이상씩 공을 던지며 어깨를 만들었다. 또 당시 선 감독은 직접 "우리는 야구가 아니라 전쟁을 치르는 것"이라는 내용의 10계명 문건을 작성, 투수들에게 나눠주며 승부욕을 불태우게 했다.
이름값은 필요 없다
최고 스타 출신인 선 감독은 선수 기용에 있어서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았다. 과거 삼성이 몇몇 스타에 의존하는 바람에 팀워크가 깨졌고, 곧 이는 만년 준우승으로 이어졌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로 선 감독은 지난해 대구 지역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양준혁이 슬럼프에 빠지자 과감하게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했다. 당시 “야구를 시작한 이후 가장 힘든 해였다”라고 털어 놓은 양준혁은 절치부심, 올 시즌 서른여덟의 나이이 무색한 맹활약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선 감독의 이 같은 용병술은 선수단 전체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나 하나만 잘하면 된다”는 개인주의는 서서히 사라져갔고 팀을 먼저 생각하는 화학적 반응이 ‘융합’을 일으켰다. 선 감독은 또 지난해 첫 우승을 차지한 후 “내가 있는 동안은 이제 더 이상 FA(자유계약선수)를 외부에서 데려오는 일은 없다. 아무리 잘하는 선수라고 해도 오히려 팀워크만 저해할 뿐이다”라고 깜짝 선언을 했다.
달콤한 결실을 맺다
선 감독의 ‘지키는 야구, 이기는 야구’는 2년 연속 우승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2005년 74승4무48패(승률 6할7리)로 정규 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삼성은 두산과의 한국시리즈에서 4승 무패를 거둔 데 이어 올해도 주전 선수들이 막판 줄부상을 당하는 가운데서 정규 시즌과 한국시리즈 동반 우승의 쾌거를 이뤄냈다. 82년 원년 이후 데뷔 사령탑이 한국시리즈를 2연패한 건 선 감독이 처음이다.
무엇보다 세대 교체에 성공한 마운드가 가장 큰 밑거름이 됐다. 오승환, 권오준, 권혁, 임동규, 정홍준, 안지만 등 선 감독이 키워낸 젊은 투수들은 ‘지키는 야구’의 선봉에 섰다. 또 큰 것 한 방보다는 기동력과 세밀한 작전을 앞세우는 선 감독의 절묘한 벤치워크는 특히 1점차 승부와 단기전에서 빛을 발했다. 삼성은 올 시즌 한화와의 한국시리즈에서 3경기 연속 연장전을 벌이면서도 2승1무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지난 2년간 한국시리즈에서 거둔 8승 중 4승을 1점차 승부에서 따냈다.
난 아직도 배고프다
선 감독은 85년 프로입단 이후 선수(해태 86~89년, 91, 93년ㆍ일본 주니치 드래곤스 99년)와 감독(2005, 2006년)으로서 9차례나 정상의 감격을 맛봤다. 그러나 선 감독은 임기가 끝나는 2009시즌까지 한 번은 더 우승하고 싶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5년간 내내 우승하면 좋지만 어디 야구가 뜻대로 되나요. 아무튼 내년에 타선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통해 우승에 도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0번째 우승을 채우면 좋겠죠”.
선 감독은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우승의 기쁨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곧바로 선수단을 이끌고 훈련에 돌입했다. 9일부터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제2회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한국과 일본ㆍ대만 리그 우승팀과 중국 올스타팀이 참가하는 이 대회에서 삼성은 지난해 일본 챔피언인 지바 롯데 마린스에 예선과 결승전에서 잇따라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올해는 일본 니혼햄과 대만 라뉴 베어스를 넘어야 정상을 넘볼 수 있다. “한국시리즈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제대로 상대팀 전력 분석도 못했지만 지키는 야구로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올 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투수 코치를 맡아 한국의 4강 쾌거에 일조했던 선 감독이 한국시리즈 2연패에 이어 ‘아시아 정벌’의 꿈을 이루며 올해 화룡점정을 찍을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선동열 프로필 ▲생년월일= 1963년 1월10일 ▲신체= 185㎝ㆍ97㎏ ▲출신교= 광주 송정동초-무등중-광주일고-고려대 ▲가족 관계= 아내 김현미(41) 씨, 아들 민우(16), 딸 민정(14) ▲경력=해태(85~95년) 주니치(96~99년)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위원(2000~2003년) 삼성 코치(2004년) 삼성 감독(2005년~) ▲주요 경력=다승 1위(86, 89~91년) 평균자책점 1위(85~91, 93년) 승률 1위(87, 89~91년) 탈삼진 1위(86, 88~91년) 구원 1위(93, 95년) 세이브 1위(93, 95년) 페넌트레이스 MVP(86, 89ㆍ90년) 골든글러브(86, 88~91, 93년) ▲감독 경력=페넌트레이스 1위(2005ㆍ2006년) 한국시리즈 우승(2005ㆍ2006년) |
대구=이승택기자 lst@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