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삼부자 양용은이 돈부자까지 됐네.'

‘잡초인생’ 양용은(34^게이지디자인)이 하루 아침에 톱스타로 떠올랐다. 지난 12일 막을 내린 유럽프로골프투어 HSBC 챔피언스에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2타차로 물리치고 정상에 우뚝 서면서 세계 골프계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양용은도 기대하지 않은 뜻밖의 우승이다. 예기치 않은 우승과 관련된 일화 한 가지. 양용은은 대회 첫날 보기없이 7언더파 65타를 쳐 선두에 1타 뒤진 2위에 올라 파란을 예고했다. 그날 경기를 마치고 저녁 식사 중에 호주 출신의 캐디 자렛이 양용은에게 “이러다가 우승하는 것 아니냐”고 말을 건넸다. 양용은이 캐디의 머리를 치면서 “내가 우승하면 너한테 롤렉스 시계 사 줄게”라고 약속했다.

우즈, 짐 퓨릭 등 세계 골프랭킹 상위권 선수들이 대거 출전한 대회인 만큼 우승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 말이나마 큰 선심을 쓰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캐디의 말대로 적중했다. 우승 직후 캐디가 “양 프로, 롤렉스?”라고 운을 떼자 양용은은 며칠 전에 무심코 던진 말이 생각났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 기쁜 마음으로 “OK”했다.

‘가난한 골퍼’로 유명했던 양용은은 이번 대회 우승으로 돈방석에 앉게 됐다. 양용은은 우승 상금 83만 달러와 소속사인 게이지디자인측으로부터 우승 상금의 50%인 41만 달러를 받게 돼 모두 120여 만 달러의 거액을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앞으로 몸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을 전망이다. 양용은은 올해 초 게이지디자인과 1년간 3억원에 계약했다. 계약 기간은 올해로 마감된다. 게이지디자인측과 재계약하거나 다른 업체로 옮길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맺은 인연을 중시하는 ‘의리파’ 양용은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현재 계약사와 인연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고 계약사측도 당연히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재계약을 놓고 양측이 벌써 어느 정도 교감을 나눈 상태. 양용은이 미국 프로골프투어에 나설 경우 1년간 몸값은 ‘100만 달러+α ’선이다. 지금보다 세 배 이상 늘어나는 셈. 유럽투어 대회 한 차례 우승치고는 초특급 신분 상승 케이스다.

양용은은 평소 스스로를 ‘골프 검정고시생’이라고 털어놓았다. 가난해서 그만큼 어렵게 골프를 했다는 뜻이다. 제주 출신의 양용은은 집안이 넉넉치 못해 다른 선수들과 달리 제대로 레슨을 받지도 못했다. 생계수단으로 19세 때 골프연습장에서 일을 하게 된 게 골프와의 첫 만남이었다. 대성하기 위해서는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주위의 권유로 무작정 짐을 쌌고, 처음 안착한 곳이 경기 여주골프장의 연습생 신분이었다.

양용은은 돈벌이가 시원찮아 한때 골프를 그만둘 생각도 했다. 1996년 프로에 데뷔한 양용은은 99년 한국 프로골프에서 상금랭킹 생애 첫 톱10(9위)에 들었다. 그러나 시즌 총상금은 고작 1,800만원. 세금을 떼고 난 뒤 남는 돈은 1,000만원 정도. 양용은은 ‘구두닦이로 나서 국내에서 9위에 들었다면 이보다 돈을 더 벌지 않았겠는가’라고 낙담을 했다. 당시 골프채도 잡지 않고 술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중도에 그만두기는 너무 아쉬움이 컸다. 그리고 부인에게 앞으로 5년만 더 해보겠다고 했다. 당시 집은 경기 용인의 지하 단칸 월셋방이었다.

양용은은 나이트클럽에서 한때 쟁반을 들기도 했다. “친구랑 놀러 갔다가 잠깐 웨이터 생활을 했지만 오래 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이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읍소하기도.

양용은은 부인 사이에 아들만 세 명 둔 ‘아들부자’다. 특히 갓 돌을 지낸 막내 경민이는 양용은에게 있어 복덩어리나 다름없다. 지난해 경민이가 태어나자마자 일본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경민이가 돌잔치를 했던 지난 9월 초에는 내셔널타이틀인 한국오픈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양용은은 HSBC 챔피언스 우승으로 세계 골프랭킹이 77위에서 38위로 무려 39계단이나 껑충 뛰었다. 연말까지 50위 안에 들면 내년도 미국 프로골프투어 4대 메이저대회 등 별들의 잔치에 나설 수 있고, PGA투어 일반 대회 출전 횟수도 늘어나 ‘아메리칸 드림’을 기대할 수 있다. 양용은은 이와 별도로 평생 소원인 PGA투어 회원이 되기 위해 내달 열리는 미국 프로골프투어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한다.

"골프채가 아니라 손모가지가 중요"

“문제는 골프채가 아니라 손모가지지.”

양용은의 골프클럽에 대한 철학(?)이다. 연장 탓할 게 아니라는 뜻이다. 양용은의 용품 계약사인 게이지디자인측의 한 관계자는 양용은은 다른 선수와 달리 까탈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맞춤클럽 등을 제안하면“골프채가 문제가 아니라 손모가지가 문제”라며 농담을 건넨 뒤“무겁고 강하게만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채를 가지고 다니기 귀찮아 한국과 일본에 두 개의 클럽을 만들어 쓰고 있다. 손에 익지 않으면 불안할 텐데 양용은은“그런 거 신경쓰지 않는다. 손에 있는 거 치면 된다”라고 잘라 말한다.

연장 탓을 하지 않는 양용은이지만 장타에서 퍼트까지 골프 실력은 대단하다. 양용은은 국내 골프선수 중에서 최장타로 꼽힌다. 양용은은 크지 않은 체격(177㎝)이지만 일본투어에서 평균 비거리 292야드로 장타부문 16위에 올라 있다. 양용은은 또 홀당 퍼팅 수 1위(1,7184개), 라운드당 평균 버디 수 1위(4,171개) 등 장타와 정교함을 겸비했다.


정동철 기자 bal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