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농구·축구팀 아시안게임서 충격의 졸전… "몸값이 아깝다" 비난 높아

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했던 한국의 3대 구기 스포츠가 변방으로 전락하고 있다.

제15회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충격적으로 드러난 한국 프로스포츠의 현주소다. 아시안게임 3연패에 도전했던 야구는 사회인과 대학생 연합으로 구성된 일본에 믿기 힘든 패배를 당하고 동메달에 그쳤다. 대회 2연패를 꿈꾸는 농구는 장신화에 성공했다는 자평에도 불구하고 중동세에마저 밀리는 수모를 당했다.

아시안게임 한국 구기 종목이 총체적 난항에 빠진 가운데 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야구, 축구, 농구는 현저하게 떨어진 경기력으로 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열사의 땅’ 도하에서 내심 아시아 최강임을 확인하려던 한국 프로스포츠의 장밋빛 청사진은 낯뜨거울 만큼 어두운 암갈색으로 변하고 말았다.

스몰볼의 한계

‘야구 쇼크’ 이후 남자 축구는 매 경기 힘겨운 승부를 이어가고 있다. 농구 역시 졸전을 거듭하고 있다. 프로야구 스타로 구성된 야구는 말로만 3연패를 외치고 아무런 준비 없이 대회를 맞았다. 결과는 대만과 사회인이 주축이 된 일본에 연패, 동메달을 목에 매고 말았다. 전원 프로 선수로 구성된 축구는 패배만 없었을 뿐 야구에 못지않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에서 이름조차 찾기 힘든 방글라데시에 3-0으로, 베트남에 2-0, 바레인에게는 1-0으로 이기며 간신히 8강에 진출했다. 역대 최강 멤버로 꾸려졌다는 농구는 2차전에서 약체로 평가됐던 이란에 덜미를 잡혔다. 카타르에 40점 차

로 대패한 시리아를 맞아서도 종료 5분여를 남기고 역전을 당하는 등 졸전 끝에 이겼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연봉, 투지와 근성의 상실을 지적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3대 구기 스포츠가 동시에 몰락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법하다.

프로야구 삼성 선동열 감독이 지향한 ‘지키는 야구’는 어느샌가 한국 야구의 트렌드가 됐다. 한국 프로야구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올 시즌 투고타저 현상 역시 이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작전과 번트에 의존한 한국 야구는 단기전과 같은 큰 무대에서 힘을 내지 못할 뿐더러 흥미도 반감되고 있다. 약체를 상대로 졸전을 거듭한 축구도 마찬가지였고, 저득점 하향평준화된 KBL(프로농구연맹) 리그도 ‘수비 스포츠’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우물 안 개구리

야구에서 대만은 늘 이길 수 있는 대상이었고, 아시아 무대는 언제나 좁아보였다. 한국은 현실에 안주했다. 농구 이란전은 그런 한국 프로스포츠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 준 경기였다. 대표팀은 2m가 넘는 선수가 4명이나 된다며 장신화에 성공했다고 자평했지만 경기 스타일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서장훈과 이규섭, 송영진은 모두 12개의 3점슛을 시도했지만 모두 림을 외면했다. 지난 2경기에서 총 58개의 3점슛을 던진 한국은 같은 B조 중 최다. 그러나 성공률은 31%로 4위, 기대 이하였다. 농구 관계자들은 문경은과 추승균 등 전문 슈터의 부재를 아쉬워하고 있다. 탄력과 파워에서 점점 좋아지고 있는 중동에 비해 한국은 어정쩡한 스타일을 고수했다. 한국의 장신 선수들은 슈터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골밑을 장악한 것도 아니었다.

또 다른 ‘우물 안’은 질적인 수준 차이다. 해외파가 빠진 한국은 ‘종이 호랑이’에 불과했다. 3월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서 한국이 세계 강호를 연파하고 4강에 오른 건 해외파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국내 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축구의 경우도 해외파가 합류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경우 현격한 경기력 차를 실감할 수밖에 없다.

아시아의 3류로 머물 것인가

정답은 단순하다. 한국 야구가, 농구가, 축구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경기력 향상을 도모해야 한다. 어떻게 강해져야 할지는 각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선수들의 질적인 향상이 시급한 문제다. 특히 감독들은 경기 전술적인 면에서 선수의 성장을 돕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 스몰볼이 유행하면서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는 찾아볼 수 없다. 수비 위주의 플레이와 공식화된 패턴은 경기력을 저하시키고, 팬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다.

호쾌한 타격전, 짜릿한 역전 골, 100점대를 넘기는 화끈한 공격 농구는 팬들을 매료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성적 지상주의에만 빠져 오직 ‘이기는 방법’만 연구하는 프로 구단들이 앞장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대만 야구의 강타선이 일순간에 탄생하지 않았고, 중동의 엄청난 파워 농구가 하루 아침에 완성됐을 리 없다. ‘타도 한국’을 되뇌이며 줄기차게 준비하고 노력한 결과물이다. 이제는 한국이 ‘도하의 아픔’을 와신상담으로 삼을 차례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