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프로야구 '아시아 엔트리제' 도입팀마다 아시아계 선수 1명씩 자유기용 가능해져"한국 등서 유망주 싹쓸이할 우려 높다" 위기감 팽배

지난 3월 18일 벌어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과 일본 경기. <연합뉴스>
일본이 2차 대전 때 ‘신질서와 공동 번영’을 명분으로 내세워 아시아 각국을 침략했던 과거사를 21세기 야구 무대에서 재현하려고 한다면 지나친 논리 비약일까. 일본 프로야구 양대 리그(센트럴, 퍼시픽) 12개 구단의 단장 모임인 실행위원회는 지난 4일 ‘아시아 엔트리제’의 도입을 결정했다. 이어 11일에는 일본 프로야구기구(NPB) 사업위원회(위원장 기요다케 히데토시 요미우리 단장)가 내년 시즌부터 새 제도를 실행에 옮긴다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12개 구단의 만장일치로 통과된 ‘아시아 엔트리제’는 각 팀마다 아시아계 선수 1명씩을 외국인 엔트리에 포함시키지 않고 자국 선수처럼 자유롭게 기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NPB의 사업위원회는 22일 대만에, 그리고 내년 초에는 한국에 위원들을 파견, 설득에 나서기로 했다. 일본이 내세운 ‘아시아 엔트리제’ 추진 이유는 아시아야구의 발전을 통해 메이저리그 중심의 흐름을 견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형 스타들의 잇단 메이저리그 유출로 위기에 놓인 일본 프로야구의 부흥을 꾀하는 자구책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엔화의 위력을 앞세운 일본 프로야구의 아시아 공략은 무차별로 진행될 게 분명하다.

‘아시아 엔트리제’가 탄생한 이유

‘아시아 엔트리제’는 지난해 처음으로 일본 프로야구의 대표 구단인 요미우리를 중심으로 제안됐지만 한국과 대만의 반발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올 시즌 다시 이 안이 전면으로 등장한 것은 대형 스타들의 잇단 빅리그 진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올해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괴물 투수’인 우완 마쓰자카 다이스케(세이부 라이온즈)와 최고 좌완 이가와 게이(한신 타이거즈), 슬러거 이와무라 아키노리(야쿠르트 스왈로즈)가 포스팅시스템(입찰 제도)를 통해 빅리그로 떠났다.

3명 모두 27세의 동갑내기로 자유계약선수(FA)가 아닌 구단의 승낙을 전제로 한 공개 입찰 형식으로 자신들의 꿈을 이뤘다. 일본의 스타급 선수들은 구단과 매년 연봉 계약을 하면서 어느 시점에서는 메이저리그 입찰을 허용한다는 조건으로 재계약 사인을 하는 경우가 많다. 선수들의 무리한 몸값 요구를 억누르면서, 거액의 입찰액을 챙길 수 있다는 구단의 실익 전략이 프로야구계의 불황으로 이어지면서 이제는 큰 짐이 되고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경제적인 방법으로 아시아권의 ‘뉴 페이스’를 끌어들여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아시아 엔트리제’라는 비장의 카드를 뽑아 들었다.

아시아 공략의 최고 타깃은 한국(?)

일본 야구는 이미 대만과 중국 쪽에는 깊숙하게 침투해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 1일 퍼시픽리그의 지바 롯데가 올 시즌 라뉴 베이스에서 17승3패1세이브를 기록, 팀을 우승으로 이끈 대만 국가대표 우스요(24)를 전격 영입하는 등 매년 빠짐없이 중국계 선수들이 일본으로 진출하고 있다.

올 시즌 육성군(3군)을 제외하고 일본 프로야구에서 뛴 중국계 선수는 요미우리의 투수 장치엔밍 등 8명이다. 일본 팀들이 데려 오는 중국계 선수들의 공통점은 모두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의 유망주들이라는 것이다.

육성군(3군)에 3명의 중국계 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요미우리는 지난 9월에는 중학교를 갓 졸업한 대만 투수 린이하오(15)와 계약을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요미우리는 린이하오의 일본 적응을 돕기 위해 일본어 가정교사까지 붙여 줬다.

야구 선수들을 병역 문제와 관계없이 해외로 자유스럽게 풀어주고 있는 대만의 ‘야구 세계화 전략’과 일본의 현실적인 욕구가 잘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무대에 대한 조기 적응 여부가 확실하지 않고 몸값도 비싼 한국의 프로 스타들을 데려 오느니 차라리 장기적인 안목에서 중국계 선수들을 ‘입도선매’해 키우겠다는 속셈이다. ‘아시아 엔트리제’가 실행되면 일본의 스카우트들은 한국의 프로 선수뿐아니라 대학, 고교로까지 손길을 뻗칠 가능성이 높다. 메이저리그 진출 꿈을 갖고 있는 어린 선수들에게 일본 무대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좋은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결국 ‘아시아 엔트리제’의 여파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그래도 쓸 만한 재목이 풍성한 한국의 아마추어 야구계까지 흔들어 놓을 위험성을 안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실행안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시아계 선수들도 ‘아시아 엔트리’에 포함될 경우 빅리그에 간 뒤 일본으로 우회하는 한국과 대만, 중국 선수들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아시아 엔트리제’의 실현으로 한국과 대만 중국 선수들에게 문이 활짝 열린다면 아시아 야구의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 비해 야구 저변과 시장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열악한 주변국의 사정을 감안한다면 ‘아시아 엔트리제’는 자칫 아시아 야구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경기에서 강적 쿠바를 꺾고 우승한 일본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손을 들어 황호 하고 있다. <연합뉴스>
7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일본과 대만의 야구 결승전에서 일본 투수 타카사키가 피칭을 하고 있다.

도쿄=양정석 일본야구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