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家 갈라지자 야구단 지원 줄어 매각시장에농협·외국기업서 인수 입질 불구 무산 '격세지감'

현대가(家)의 야구사랑은 남다르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을 비롯해 고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등 그룹 오너들이 하나같이 야구라면 만사를 제쳐뒀다.

'왕회장'은 생전에 골프 중에도 '현대가 삼성을 이겼다'는 보고를 받으면 "아무렴, 그래야지"라며 박수를 쳤다. 정몽헌 회장도 야구에 들어가는 돈이라면 두말없이 OK 했다. 정몽윤 회장은 해외출장 때도 야구경기 시간이 되면 측근에 전화를 걸어 '라이브 중계방송'을 전해 들었다.

대선 패배 후 야구에 관심

현대가 야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정주영 회장은 그룹의 이미지 쇄신 차원에서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된다.

프로야구 원년이었던 82년 인천을 연고로 창단을 제안 받았을 때만 해도 정 회장은 "국가적인 대사인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에 전념해야 한다"며 고사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정 회장은 "아무리 봐도 야구는 재미가 없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고 한다.

현대가 해서 안 되는 일이 없었지만 야구는 달랐다. 기존 8개 구단으로서는 막강한 자금력을 지닌 현대의 프로야구 입성이 달가울 리 없었다. “현대가 프로야구에 들어오면 질서가 무너진다”고 반대했다.

하는 수 없이 현대는 우회전술을 폈다. 창단 대신 쌍방울 인수작업을 벌인 것. 97년 무주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 자금이 필요했던 쌍방울은 400억원을 요구했고, 현대는 이를 수락했다. 하지만 쌍방울이 유니버시아드 선수촌 2개 동 건립을 추가로 요구하면서 양측의 협상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농협중앙회가 사실상 현대 유니콘스 프로야구단 포기 의사를 밝힌 가운데 22일 오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KBO 이사간담회세서 신상우 총재가 현대 매각 추진 과정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쌍방울 인수에 실패했다고 포기할 현대가 아니었다. 현대는 이현태 현대석유화학회장을 대한야구협회장에 앉히면서 아마추어 장악에 성공했다. 이어 94년 11월 28일 실업팀 현대 피닉스를 창단했다. 말이 아마추어였지 프로 부럽지 않은 '공룡 군단'이었다. 당시 피닉스 주축 선수들은 조경환(KIA), 문동환(한화), 임선동(현대), 문희성(전 두산), 안희봉(전 해태), 박재홍(SK) 등 초호화판이었다.

태평양 인수로 프로야구 참여

피닉스로 아마를 평정한 현대는 95년 8월 꿈에 그리던 프로야구 진입에 성공한다. 현대는 주당 37만5,000원에 태평양 야구단 주식 12만 주를 사들였다. 순수 몸값만 450억원이었다.

현대는 태평양 인수 후 ‘현대 프라이드’ 심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95년 겨울 선수들과 그들의 가족을 초청해 2박3일 일정으로 전국의 현대 계열사 견학을 시킨다. 울산 현대중공업, 서산농장,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반도체) 이천공장 등 전국 각지의 ‘현대 신화’를 목격한 선수들은 감격에 목이 멨다. "현대를 위해 분골쇄신하겠습니다."

무너진 현대 신화

'제일주의'를 표방하는 삼성을 누르고 야구판을 휘젓던 현대호에 이상징후가 생긴 것은 2000년. 현대는 연고지 인천ㆍ경기ㆍ강원을 신생팀 SK에 넘기고 서울 입성을 선언했다.

현대는 서울로 옮기는 조건으로 SK에게 받은 54억원을 LG와 두산에 각 27억원씩 주기로 했다. 그러나 2001년 대주주 하이닉스 반도체가 구조조정 등으로 경영난을 겪자 54억원을 구단 운영자금으로 써버렸다.

이때부터 현대는 ‘무연고 구단’으로 전락한 채 임시 거처인 수원서 어정쩡하게 머물게 됐다. 한편으로는 SK로부터 “54억원을 돌려주든지, 수원을 떠나라”는 압박에 시달렸다.

2003년 8월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더욱 운영이 어려워진 현대는 '사촌'인 현대차그룹으로부터 매년 70억~80억원의 지원금을 받으며 간신히 야구단을 꾸려왔다.

하지만 정 회장의 부인 현정은 회장이 야구단에 거의 지원을 하지 않아 사정이 말이 아니었다. 천만다행, 매년 심정수, 박진만, 박종호(이상 삼성) 등 거물 FA(자유계약선수) 장사로 운영비를 마련했다.

야구단 매각설이 최초로 흘러나온 것은 2001년부터다. 야구단 지분의 76%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 하이닉스 반도체가 그룹에서 분리된 뒤 지분 매각을 강력하게 원했기 때문이다. 하이닉스는 법정관리에 묶인 탓에 7년 째 2군 훈련장인 원당구장을 제공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단돈 10원도 지원하지 않았다.

이제는 짝사랑

지난해를 기준으로 하이닉스 반도체 다음으로 현대자동차 14.8%, 현대종합상사 4.1%, 현대증권 4.1% 순으로 현대 야구단 지분을 갖고 있다. 구단 운영비는 총 180억원 가운데 현대자동차그룹 75억원(현대차 50억원, 현대제철 10억원, 현대모비스 10억원, 현대하이스코 5억원), 현대해상화재보험에서 40억원(광고비)을 지원 받았다.

나머지 65억원은 입장수입(7억원)과 현대오토넷,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현대증권 등 계열사에서 각종 광고비 명목으로 충당했다. 그러나 환율하락과 노사갈등 등으로 수출에 비상이 걸린 현대차그룹이 “올해부터는 현대 야구단을 지원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구단주 역할을 해왔던 정몽윤 회장도 두 손을 들었다.

최근 들어 ‘민족은행’을 자처하는 농협중앙회와 ‘외국기업’ 프로스테이트 홀딩 컴퍼니가 현대 인수에 관심을 보였다가 잇따라 포기를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는 심한 멍이 들었다. 야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정몽윤 회장이 지원하고, KBO가 긴급자금을 댄다면 현대는 올 시즌을 근근이 버틸 수도 있다. 하지만 올 시즌이 끝나면 새로운 주인이 나서지 않는 한 내년은 정말로 기약하기 어렵다. 현대의 야구사랑도 이제는 '짝사랑'으로 남을 수밖에 없게 됐다.


최경호 기자 squeez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