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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 도슨 "이젠 '정말 멋진'삶 살 수 있을 것"
26년 만에 친아버지 만나… 한국계 입양아로 토리노 동계올림픽서 메달따며 '아버지 찾기' 본격화
비로소 '혼란스런 삶' 정리… "고아·입양아 위해 봉사하겠다" 계획 밝혀

친아버지 김재수 씨가 아들의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있다.






“아버지, 오래 기다렸어요!”

아들은 밤새 연습하고 외운 한국말을 천천히 발음했다. 한국계 입양아로 미국에서 자란 탓에 발음이 서툴렀을까. 잃어버렸던 아들을 26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알아듣질 못했다. 그저 엉엉 울기만 할 뿐. 회한의 눈물만 뚝뚝 떨어졌다.

“Don’t cry, father! You are a strong man(울지 마세요, 아버지. 당신은 강하신 분입니다).” 아들은 울먹이는 아버지의 귀에 울지 말라고 속삭였다. 1981년 부산 범일동 중앙시장에서 미아가 된 아들. 그토록 만나고픈 아들이 눈앞에 있었지만 죄책감 때문인지 말문은 막히고 굵은 눈물만 흘렀다.

아버지가 울음을 그치자 아들은 한국말로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아버지, 오래 기다렸어요.” 이어 영어로 “아버지, 울지 마세요. 오늘은 기쁜 날이잖아요. 만나 뵙기를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강해지세요”라고 했다.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도착한 전날 “친아버지(biological father)를 만나면 왜 나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던 아들의 닫힌 마음은 어느새 열렸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모굴스키 동메달리스트 도비 도슨(29ㆍ미국)이 지난달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아버지 김재수(53) 씨를 만났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자란 도슨은 “그동안 삶이 혼란스러웠다”고 어린 시절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아버지(father) 앞에 생물학적(biological)이라는 수식어를 달 만큼 애증이 교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토비 도슨의 어릴 적 모습.
도슨의 이름은 Toby SC Dawson이다. 덴버에서 스키강사로 일하던 양부모 도슨 부부는 82년 3월 입양한 아들에게 토비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가운데 이름 SC는 한국이름 김수철을 뜻한다.

노랑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아이들 속에서 “나는 왜 까만 머리, 까만 눈을 가졌을까”라고 고민한 도슨은 어린 시절 SC는 너무 멋진(so cool)이라고 친구들에게 말하기도. 그러나 도슨의 진짜 이름은 김봉석. 81년 미아가 된 도슨은 부산 남광임시보호소에 머물면서 김수철이란 이름을 얻었다.

양아버지 마이크 도슨은 “토비가 밤마다 한국말로 ‘엄마’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고 회상한다. “토비는 밤마다 한국말로 ‘엄마’를 부르짖으며 울었어요.

침대가 무섭다며 마룻바닥에서 양어머니(데보라 도슨)를 껴안은 채 자곤 했죠.” 도슨이 밤마다 부르짖던 어머니는 부산에 거주하고 있다. 어머니(52)는 도슨을 잃어버리고 나서 아버지 김재수 씨와 불화를 겪은 끝에 이혼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스키 남자 모굴 부문 동메달리스트인 토비 도슨(오른쪽.29.한국명 김수철)이 28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친아버지 김재수(가운데), 동생 현철씨와 헤어진지 26년만에 만나 감격적인 상봉을 하고 있다. 손용석 기자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삶이 괴로웠다”는 도슨의 사연은 2004년부터 한국에 알려졌다. 도슨이 모굴스키 월드컵에서 종합 2위를 차지하자 워싱턴포스트가 도슨의 사연을 대서특필했고, 도슨이 2005년 말 토리노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찾고 싶다”고 말하자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도슨은 2006년 2월 16일 올림픽 메달을 따냈지만 “친부모를 찾는 일은 신중하게 진행하겠다”고 자세를 바꿨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혈육이지만 전혀 딴 세상에서 살아온 터라 상봉 자체가 큰 부담이었다. 최근 유전자 검사를 통해 김재수 씨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아버지(father)가 아닌 생물학적 아버지(biological father)라고 지칭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버지 김재수 씨는 “봉석이를 잃어버린 뒤 1년 동안 부산 시내 고아원을 찾아다녔다. 당시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었는데 일이 끝난 저녁이나 휴일이면 봉석이를 찾으러 쏘다녔다”며 고개를 떨궜다.

“나를 왜 잃어버렸는지 지금까지 왜 찾지 않았는지 궁금하다”던 도슨은 “완전하게 납득되지는 않지만 아버지의 상황을 이해하겠다”며 아버지를 껴안았다.

“아버지를 직접 보니까 내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겠다. 어릴 때부터 ‘나는 왜 구레나룻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웃으며) 아버지와 비교하면 나는 ‘아기 구레나룻’에 불과하다.” 구레나룻은 물론 얼굴 생김새와 체격까지 쏙 빼닮은 아들과 아버지는 26년 만에 서로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도슨은 미국시민권자지만 한국 호적도 갖고 있다. 김재수 씨가 아직까지 호적을 정리하지 않아서다. “내가 살아 생전에 봉석이를 찾지 못하면 작은 아들 현철(24)이가 대신 찾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적에 이름이라도 남아야 현철이가 ‘형님이 어딘가 계시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겠나.” 순간 기자회견장에 있던 동생 현철 씨와 도슨의 약혼녀 리아 핼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도슨은 한국계 입양아 단체 ‘Korea Heritage Camp’에서 상담원으로 활동해왔다. 본인 역시 정체성 문제로 방황한 경험이 있어 비슷한 처지의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어서다. 그래선지 도슨은 “앞으로 고아와 입양아를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앞으로 자녀를 입양할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아직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당황했다. 도슨은 “입양이 한 생명에게 얼마나 큰 기회가 되는지 잘 안다”면서도 “입양 문제는 앞으로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평생을 입양아로 살아온 도슨에게도 입양은 아직도 ‘뜨거운 감자’인 것이다.

도슨은 2일 서울 합정동에 위치한 홀트아동복지회를 방문해 “해외 입양아들은 양부모와 생김새가 달라 정신적으로 힘들다. 입양아에게 상처를 덜 주도록 국내 입양이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7/03/06 21:07




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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