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인가 단순 사고인가"경주로 상태 불량" "매 경기 후 평탄화 작업" 기수협·마사회 갈등 증폭사고 후 현장보존 안돼 원인 규명 불발… 야간 경기라 사진촬영도 못해

고 임대규 기수
경마장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는 말에서 기수가 떨어져 사망했다면 경주마 잘못일까? 아니면 기수의 실수가 조금이라도? 그것도 아니라면 경주마가 달리는 주로에 문제점이?

지난 8월 11일 경마 도중 낙마 사고로 사망한 임대규 기수의 사망원인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임 기수의 사망 원인이 불량한 경주로 상태 때문 아니냐는 의혹에서다. 사고 원인과 책임을 놓고 유족과 기수협회, 마사회 간 갈등도 증폭되고 있다.

고인이 된 임대규 씨는 경력 21년의 베테랑 기수로 평균 랭킹 국내 5위안에 드는 성적을 유지해 올 만큼 뛰어난 실력파 선수이다. 특히 사고 전 기수협회 회장직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사망이 가져온 파장은 더욱 크다.

임 선수는 지난 경주에서 타고 달리던 말에서 급작스레 떨어지면서 뒤따라 오던 다른 경주마의 발에 머리를 채여 사망했다. 그가 말에서 떨어진 직접적인 이유는 타고 있던 경주마의 왼쪽 앞 다리가 부러졌기 때문. 다리가 부러진 말이 넘어지면서 임 기수도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경기 중 달리던 경주마의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골절)가 왜 생기느냐는 것. 바로 경주로의 상태 불량 때문에 사고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연결된다. 임 선수의 실력과 경력이 말해 주듯 기수의 순간적인 실수나 잘못 때문에 발생한 사고라고 결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마장에서 대부분의 낙마 사고는 내측 경주로를 차지하기 위해 경주마끼리 ‘몸 싸움’을 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경주마 충돌은 전체 낙마 사고의 절반을 차지한다. 폭우 등으로 경주로 상태가 불량했을 때도 낙마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기수가 고삐를 놓쳤을 때도 낙마가 일어날 수 있다. 임 선수가 낙마 직전 고삐를 놓쳤지만, 말 다리가 부러지면서 생긴 큰 반동으로 인해 놓친 것이기 때문에 단순 실수로는 보기 어렵다.

때문에 기수협회에서는 임 선수 사망 후 경주로 상태 불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기수협회 김기선 사무국장은 “경기 도중 말 다리가 부러지는 것은 말 자체의 뼈 조직 이상이나 심한 운동 때문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무엇 보다 경주로 상태 불량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일 수 있다”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여타 기수들의 입장도 일치한다. 김기선 사무국장은 “과천 경마장의 경우 1989년 뚝섬에서 이사 온 후 18년 간 한 번도 보수공사를 하지 않았다. 매일 사용하기 때문에 보수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외국의 경우 시즌 별로 경주로를 사용해 경마장 관리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과천 경마장은 비가 올 때 배수가 잘 되지 않아 물이 차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주로의 상태는 물을 머금은 정도에 따라 다섯 단계로 나뉘는데 1~5%가 건조, 6~9%까지 양호, 10~14%까지 다습이고 15~19%가 포화, 20% 이상은 불량으로 구분된다.

물을 많이 머금게 되면 경주로가 질퍽해져 경주마의 다리가 빠져 사고 위험률이 높다. 사고가 난 이날 함수율은 15%였다. 8월초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가 계속 돼 경주로 바닥이 푹 젖어 있었다는 얘기다. 김기선 국장은 “경주로가 완전히 잠긴 건 아니지만 모래를 짜내면 물이 나올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평탄화 작업을 하더라도 경주로 상태가 불안하면 경기 중 말의 착지가 불안정해 다리가 부러질 수 있는 것이다.

사고 당시 경주로에 이물질이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기수들은 “이물질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 국장은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더라도 경기 도중 자갈이나 편자가 들어 갔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경주로 내 이물질 문제는 90년대 중반까지 과천 경마장의 골칫거리였다. 당시 경주로 안 잔디밭은 골프 연습장으로 사용됐고 골프공이 경주로로 들어가 종종 사고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95년 골프장 사용이 금지되면서 일단락 됐다.

경마장 내 사고 빈도와 관련해서도 마사회와 기수협회의 의견이 엇갈린다. 마사회 탁성현 과장은 “말 다리가 부러져 낙마한 경우는 11년 만에 처음”이라 밝혔다. 그러나 기수협회 측은 “서울에서 활동중인 기수 60명은 찰과상 등 사고를 당해 연평균 2번씩, 총 120번 입원한다. 말 다리가 부러져 생긴 사고는 일년에 5~6차례”라고 말한다. 경마의 경우 자동차 경주의 10배 정도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

이번 사고 처리와 관련된 어정쩡한 조치도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사고 직후 바로 다음 경기가 치러졌고 경주로 평탄화 작업을 실시했기 때문에 사고 상태를 제대로 분석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기수협회와 유족들은 “마사회에서 사고원인을 제대로 규명 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이에 대해 마사회 측은 “다음 경기를 그대로 진행한 것은 전화연락을 통해 기수협회측과 합의가 끝난 후였다”고 반박하고 있다. 마사회 탁성현 과장은 “통상 1년에 30건의 낙마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임 선수의 경우도 부상 상태로 병원에 후송된 것이기 때문에 경기를 그대로 진행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마사회는 경주로 문제제기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매 경기마다 평탄화 작업을 하고 있고, 매일 모래 보충과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탁 과장은 “사고 후 경주로에서 발견된 이물질이 하나도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즉, 경주로 관리에는 이상이 없다는 입장이다.

수사를 맡은 과천 경찰서 최남현 형사는 “문제의 7경기 이후 곧바로 8경기가 진행돼 현장 보존이 안 됐을 뿐더러 야간이라 사진촬영을 하지 못했다” 말했다. 사고 당시 경주로 상태와 관련 최남현 형사는 “수사 진행중인 사항이라 아직은 알 수 없다”는 대답만 보내왔다.

지난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승마경기 중 발생했던 김형칠 선수 사망 사고 때도 직접 원인은 말 앞발이 장애물에 걸렸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지만, 폭우 속에서 치러진 데 따른 경주로 문제가 거론된 적이 있다. 국내 경마 경기 도중 낙마 사망 사고는 1996년 6월30일 이준희 기수 이후 11년 만의 일이다. 국내 경마에서 기수가 말에서 떨어져 숨진 예는 1991년 처음 있었고 이번 임대규 기수 사망 사고가 세 번째다.

● 병원 후송과정도 아리송
기도 확보 둘러싸고 해석 제각각

11일 서울경마공원 토요경마 제7경주에서 임대규(41) 기수가 낙마하고 있다. 의식을 잃은 임대규 기수는 곧바로 평촌 한림대병원 응급실로 후송됐으나 사망했다.

임대규 기수의 사망 사건을 놓고 또 다른 갈등은 후송과정에서 발생했다. 또 마사회의 구조적인 안전 조치 미비도 더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유족과 기수협회 측에서는 후송 당시 임 선수의 기도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사망으로 이어졌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출혈과다가 있었는데도 기도확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겨졌다. 임대규 선수의 경우 산소 호흡기를 공급하는 과정이 미흡했다고 병원차트에 기록됐다”고 전했다.

유족들의 의혹 제기에 대해 마사회 측은 즉각 반박했다. 응급구조 담당 전승철 씨는 “유족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혈중 산소농도가 낮았던 데서 비롯된 오해다. 혈중 산소농도 90% 이상이 정상 수치인데 임대규 선수를 옮길 당시는 50~60%였다. 사고 당시 임 선수의 출혈이 심했기 때문에 입안에 튜브를 넣어 기도확보와 산소공급을 하는 방법을 썼다. 병원 후송까지 50~60% 산소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건 기도를 확보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혈중 산소 포화도가 80~85%이하로 지속되면 위독한 상태다.

이번 응급 조치와 관련, 마사회 측 자문을 한 국립의료원 황정연 박사는 “기도확보 한 가지보다는 다량 출혈 등 다른 문제가 복합적으로 있기 때문에 산소포화도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민감한 사안에 대해 부검을 하지 않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 논리”라는 견해를 덧붙였다. 임 선수는 지난 16일 장례를 치렀다.

후송 조처에 대한 양측간 갈등이 마사회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과천 주말 경마 경기의 경우 통상 ‘PA(Park Assistant)’라 불리는 아르바이트 구조대원이 응급 조치를 담당하게 돼있다. 이들은 나중에119 응급대원 지원 등을 위해 현장경험 차 지원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경력이2년 미만인 경우가 많다.

임 선수의 구조를 담당했던 구조대원 역시 각각 2년 7개월, 11개월 경력의 아르바이트 구조대원이었다. 경험이 적은 안전 요원을 배치한 것이 유족들에게 불신을 준 셈이다. 마사회는 이번 사고 후 경력 10~ 14년의 상근 구조대원을 주말에 상주하게 하는 방안을 마련,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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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