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신지체인 축구교류대회 한국 , 35도 폭염 속 1-0으로 일본 격파

일본 히로시마 종합운동장. 섭씨 35도의 불볕이 말그대로 이글거린다. 하루중에도 가장 바짝 독이 오른 한낮의 열기다. 과연 선수들이 견뎌낼 수 있을까. 전 스태프가 긴장했다. “ 어차피 힘들기는 일본팀도 마찬가지일테니 지켜봅시다! ” 누군가가 외쳤다. 오히려 당사자인 선수들의 표정에 여유와 의욕이 감돌았다.

오후 2시반. 경기가 시작됐다. 선수들에게는 1년이나 기다려 온 순간이다.

10여분 후, 갑자기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한국팀 공격수가 골에어리어 쪽으로 민첩하게 파고들자 당황한 일본 수비수가 거칠게 태클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승조(26.신아재활원) 선수가 차분히 볼 앞에 섰다. 이내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대형 전광판에 ‘GOAL!'이라는 글자가 번쩍였다. PK골을 성공시키며 한국팀의 첫 득점이 나왔다.

얼마 뒤 한 선수가 갑자기 운동장에 나뒹굴었다. 상대 일본팀 선수의 팔에 가슴을 얻어맞은 것이다. 경기가 종료된 오후 4시, 마침내 한국팀은 1대 0으로 일본팀을 누르고 승리를 따냈다.

히로시마 한·일 정신지체인 축구교류대회 개막식. 심판진과 선수단 입장이 시작되고 있다. <사진제공/ 조기호 코치(신아재활원)>

■ 놀이패 '한소리' 사물놀이 응원

지난 8월 26일, 대한정신지체인스포츠협회(회장 김원경)와 일본장애인축구연맹(회장 나가누마 겐)이 주최한 제5회 한일 정신지체인 축구교류대회가 일본 히로시마에서 펼쳐졌다. 한국일보와 대한축구협회 등이 후원, 사실상 아시아권 정신지체인 축구계의 승자를 가리는 친선 이상의 결전이다.

대회는 식전 축하행사인 일본 3인조 밴드의 공연과 현지 한인교민들로 구성된 놀이패 ‘한소리’의 흥겨운 사물놀이로부터 시작되었다.

공식 경기가 개막된 것이 오후 2시30분, 전후반 각 35분간의 경기 끝에 한국팀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정신지체라는 장애를 딛고 수없는 반복 학습과 훈련 끝에 거둔, 눈물 배인 승리였다.

일본 선수단 중 일부는 패배의 아쉬움으로 끝내 눈물을 터뜨려 대회 관계자들과 관중들로부터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박기용 총감독(영남대 사범대 학장)은 “ 낯선 환경과 더위 속에서도 기대 이상의 플레이를 보여준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결과에 만족한다. ”고 말했다.

일본장애인축구연맹 마사카추 세토와키 사무국장은 “ 작년 대회때보다 한국팀에게서 큰 변화를 느꼈다. 비록 일본팀이 지기는 했지만 다음 대회와 장기적인 축구발전에 있어서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들의 경기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정신지체라는 남다른 한계에 도전하고 극복해 온 과정에 있다. 이날 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발팀은 각 지역 예선전 등을 통해 선발된 뒤 길게는 수년간의 훈련을 받아 온 특A급 정신지체장애인 선수들이다.

공식경기에 들어가기전 한·일 양국 선발팀 선수들이 우정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국내의 전체 장애인구가 약 2백만명, 그중 정신지체인이 약 17만명이다. 지적(知的) 장애 정도에 따른 3개 등급중에서도 최상급의 IQ가 50-70선이다.

축구는 이같은 지적 장애를 극복하는데 가장 어렵고도 효과적인 스포츠로 알려져 있다. 경기 과정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순간판단력과 팀워크, 전술 및 경기 규정에 대한 이해, 상황 대처능력 등 고난도의 사고 능력때문이다.

신인으로 기용된 후 대표팀 선수로서 제 몫을 발휘하기까지 평균 3년이 소요된다. 훈련 초기의 경우, 타고난 개인기와 운동능력을 갖추고도 막상 경기에 투입되면 당황하거나 우왕좌왕하는 신인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요즘도 지역 예선전에서는 갖가지 해프닝이 반복적으로 속출한다. 자살골을 넣거나 심지어 그 상황에서도 같은 팀 선수들까지 함께 기뻐하며 뛰는 등 기본적인 경기 방식에 대한 이해조차 이들에게는 쉽지 않다.

이 단계를 넘어서기까지 가장 중대한 역할을 하는 이들이 코칭 스태프다. 매번 실수때마다 가장 알아듣기 쉽고 자상한 설명으로 수없이 경기 방식과 규칙에 대한 해설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 바로잡았다.

이 고비만 넘기면 자신의 몫은 물론 갓 들어온 후배들까지 직접 이끌어주는 단계로까지 변화가 나타난다.

장우선 수석코치(천마재활원)는 “ IQ 변화에 대한 정확한 연구결과가 없어 단언할 수는 없지만, 축구를 시작한 후 이들의 전반적인 사고능력이 향상되는 현상이 선발팀 훈련과정에서 뚜렷이 확인된다.”고 말했다.

이는 정신지체인 축구가 지닌 궁극적인 사회적 가치이기도 하다. 실제로 선발팀 출신의 정신지체인들의 경우 이후 사회적응도나 취업률, 대우 및 근무 여건 등에서 비선수 출신 정신지체인들보다 훨씬 나은 조건에서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것으로 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

배연창 명예단장(한국정신지체인애호협회 회장)은 “ 한일 축구교류대회도 양국간의 스포츠 교류와 아울러 이같은 정신지체인들의 사회성 향상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식 경기중 양팀 선수들이 볼 다툼을 벌이고 있다. 붉은색 상의가 한국팀.

■ 3년 연속 승리… 목표는 남아공 월드컵 8강

한일 정신지체인 축구교류대회는 2001년 일본 요코하마 대회를 출발점으로 한국의 부산, 일본의 시즈호카, 한국의 대구 등 세계 월드컵 대회가 열리는 해를 제외한 매년마다 한국과 일본을 번갈아가며 개최돼 왔다.

첫 대회에서 한국이 0대 10으로 일본팀에 완패를 당한 후, 이를 와신상담으로 한국 선발팀의 기량은 해마다 상승세를 보여왔다.

그리고 2004년 일본 시즈호카 대회를 기점으로 역전세를 기록, 이번 대회까지 3연속 우승이라는 쾌거를 일궈냈다. 박기용 총감독은 “ 우리의 최종 목표는 2010년 남아공 정신지체인 월드컵 대회의 8강 진출 ”이라며 “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숨은 투지를 내비쳤다.

이번 히로시마 대회에서는 현지 한인교민들의 뜨거운 응원도 행사의 열기를 더했다. 경기의 개막에서부터 폐막때까지 약 4시간 동안 이들 응원단의 우렁찬 ‘대한민국’ 구호가 단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고국에 대한 뜨거운 동포애를 재확인시켰다.

대회는 이튿날인 27일자 아사히 신문 등 일본 현지 언론에도 곳곳에 소개돼 관심을 모았다. 한국 선발팀은 8월 28일 히로시마 공항에서 공식 해단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원경 단장(한국체대 교수. 대한정신지체인스포츠협회 회장)은 대회의 성과를 자축하고 그동안 선수들을 비롯한 전 스태프의 노고를 치하했다.

한국 정신지체인 복지계에 또하나의 낭보를 전해 준 이번 행사에 이어 오는 9월에는 전국장애인체육대회(김천.10~14일)가, 10월에는 전국 정신지체인 시도대항 축구대회(서울.24~26일)가 펼쳐질 예정이다.

■ 제5회 한일정신지체인축구교류대회

한국일보사와 대한장애인체육회 등이 후원하는 제5회 한일정신지체인축구교류대회가 8월 25(토)부터 28(화)까지 3박 4일간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됩니다.

김원경 단장과 박기용 감독 그리고 이승조 선수 등 총 31명으로 구성된 한국선수단은 8월 25일(토)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출국하여 26일(일) 오후 2시 히로시마 종합운동장에서 일본선발팀과 정규경기를 가지고 이어서 히로시마 선발팀과 하프경기를 가질 예정입니다.

이 대회는 한일 양국의 정신지체인 축구발전을 도모하고 국제경기를 통하여 정신지체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제고시키며 국제교류를 통한 정신지체인들의 사회통합의 장을 마련할 목적으로 2001년부터 정신지체인 월드컵대회가 개최되는 해를 제외하고 매년 방문 및 초청형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대회 역대전적은 2승 2패로 한국선수단은 이번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20일부터 영남대학교에서 합숙훈련을 통해 기량과 전술을 연마하고 있습니다.

각종 국내대회에서 좋은 기량을 선보인 한국 선수들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대회기간 : 8ㆍ 25(토) ~ 28(화)

▦장소 : 일본 히로시마

▦주최 : 일본장애인축구연맹

▦주관 : 대한정신지체인스포츠협회, (사)한국정신지체인애호협회

▦후원 : 한국일보사, 대한장애인체육회, 대한축구협회, 영남대학교,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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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