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이대수·채상병 등 복덩이들, 찬밥신세 벗어나 화끈한 활약

이대수
처음엔 어느 누구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단 한번의 1군 경험도 없이 내쳐진 선수도 있었고, 그저 ‘발만 빠른 반쪽 선수’라는 냉혹한 평가를 받은 선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이 빠진 팀 전력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2005년 이후 2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두산은 김동주(31) 홍성흔(30) 등 몇몇 선수 외에는 빼어난 스타 플레이어가 없음에도 ‘무서운 팀’이다. 시즌 초 최하위를 맴돌 때만 해도 두산이 포스트시즌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 전문가들은 없었다. 올시즌을 앞둔 두산 구단의 자체 평가도 고작 6위였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두산은 시즌 초반 최하위를 맴돌다가 4월말 유격수 (26)를 SK에서 트레이드 해오며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등 팀을 페넌트레이스 2위로 이끈 무명 선수들은 가을잔치에서도 맹활약을 펼치며 ‘큰 경기에서는 역시 베테랑’이라는 속설을 완전히 뒤엎었다. 두산은 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3연승으로 일축하고 당당히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 MVP (27ㆍ중견수)은 11타수 6안타(0.545) 7득점 3타점 2도루로 ‘미쳤고’, 는 타율 6할(10타수 6안타)의 맹타를 휘둘렀다. 김현수(19ㆍ좌익수)는 10타수 5안타(0.500) 1홈런 2타점을 기록했다.

플레이오프 최고의 화두로 떠오른 ‘2익수’ 고영민(23)과 ‘대표팀 포수’ 홍성흔을 지명타자로 밀어내고 안방마님 자리를 꿰찬 (28)도 숨은 공신들이다. 두산은 그렇게 무명 용사들의 반란과 함께 우승의 꿈을 부풀리고 있다.

■ 우회로 인생- 김현수

그들에게 2005년은 혹독했다. 2003년 현대에 입단한 은 그 해 말 상무에 입대했다. 하지만 2005년 말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그를 기다린 것은 ‘방출 통보’였다.

우여곡절 끝에 두산 유니폼을 입은 은 무섭게 성장했다. 지난해는 빠른 발을 앞세워 톱타자 자리를 꿰차며 ‘깜짝 도루왕’에 오르더니 올해는 방망이까지 업그레이드 됐다. 비록 도루 47개로 이대형(53개ㆍLG)에게 밀려 2연패에는 실패했지만 ‘3할 타자’(0.316)로 거듭났다. 시즌 내내 기복 없는 활약을 펼친 이 없었다면 두산의 플레이오프 직행은 어려웠을 것이라는 평이다.

두산 외야수 김현수에게도 2년 전 겨울은 마냥 춥기만 했다. 신일고 시절 2003년 최고의 아마추어 타자가 받는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할 정도로 타격 재능을 인정 받았다. 그러나 발이 느리고 수비가 약하다는 이유로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2004년에는 아시아청소년대회 대표팀에 발탁됐지만 고작 5번 밖에 타석에 서지 못했다.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선수는 프로에 지명돼 선발로 출전했습니다. 프로에 지명되지 못한 것보다 그런 상황 자체가 더욱 가슴 아팠습니다.”

때마침 두산에서 연습생 제의가 와 지난해 신고선수로 입단했고 그동안 흘린 땀은 그를 배반하지 않았다. 지난해는 1군 무대에 딱 한번 섰지만 1년 만에 두산의 주축 선수로 성장했다.

직선길을 뻔히 보고도 멀리 돌아가야 했던 ‘우회로 인생’. 하지만 그랬기에 묵묵히 앞만 보고 숨가쁘게 달려올 수 있었다.

■ 트레이드 히든 카드-

그들에게 트레이드는 ‘설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제2의 야구인생’을 여는 행운이 됐다.

2001년 연습생으로 SK에 입단한 ‘섬 소년’ 는 어렵게 주전 유격수가 됐다. 하지만 올해 신임 김성근 감독과 ‘궁합’이 맞지 않았다. 결국 백업 선수로 밀려난 는 지난 4월29일 나주환과 맞트레이드 돼 두산으로 팀을 옮겨야 했다.

그러나 는 물 만난 고기처럼 펄펄 날며 두산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 잡았다. 내야 수비를 안정시킨 는 하위타선에서 예기치 못한 한방까지 때리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팀 내에서 그의 별명은 ‘복덩이’다.

2002년 한화에 입단한 은 트레이드 이후에도 좀처럼 주전을 꿰차지 못했다. 2003년 말 신경현의 군 제대로 입지가 더욱 좁아진 그는 오른손 투수 문동환과의 트레이드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최강의 포수 홍성흔을 보유한 두산에서도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병역파동에 휘말렸던 은 2004년 15경기만 뛴 뒤 이듬해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그러나 은 불과 3년 만에 ‘트레이드 성공작’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지난 5월 군 복무를 마친 은 홍성흔이 잇단 부상으로 슬럼프에 빠진 사이 당당히 주전 마스크를 꿰찼다. 올시즌 91경기에서 2할3푼7리에 7홈런으로 공수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친 은 한국시리즈에서도 든든한 안방마님 노릇을 하게 된다.

■ 유틸리티맨-고영민 민병헌

시작은 ‘대주자’였다. 그러나 그저 ‘발만 빠른’ 선수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했다. 2002년 두산에 입단한 고영민은 서울 성남고 시절 1년 후배 박경수(LG)와 함께 고교야구 최강의 키스톤 콤비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고 4년간 2군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었다.

그러나 지난해 베테랑 안경현이 1루로 전환하면서 기회를 잡더니 어느새 ‘명품 2루수’로 거듭났다. 우익수와 중견수의 경계를 넘나드는 깊숙한 수비는 올 플레이오프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됐다. 타격에서도 시즌 두 자릿수 홈런(12개)으로 3번 타자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과 고영민의 ‘뛰는 야구’에 올해 고졸 2년차 민병헌(우익수)이 새롭게 가세했다. 주전 외야수 윤재국의 부상이 기회가 됐다. 타격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빠른 발을 활용한 외야 수비도 빛을 발했다. 특히 강한 어깨와 정확한 송구 능력은 두산 외야진에서 단연 최고다.

■ 김경문 감독의 뚝심 용병술

두산의 무명 반란은 김경문 감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김 감독은 단순한 나이나 경력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무명 선수들에게 눈길을 준다. 한번 ‘되겠다’는 판단이 들면 과감하게 기용하고 꾸준하게 기회를 준다.

지난 시즌 초 두산의 톱타자로 전격 발탁된 이 수 차례 어이없는 수비 실책을 저질러도 항상 1번으로 중용하며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감흥을 주고 싶다”며 김현수를 올해 개막전 엔트리에 깜짝 발탁했을 때도 그가 주전으로 발돋움할 것이라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2군이 주무대였던 유재웅과 오재원을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시킨 것도 당장의 올해보다는 내년, 내후년을 내다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두산이 ‘깜짝 스타의 산실’로 자리잡은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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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병
이종욱

오미현 기자 mhoh25@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