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발매소 영어교실단돈 교재비 5천원에 원어민과 쉽게 프리토킹답사·체험학습도 병행입소문 퍼지며 인기

한국마사회 안산 장외발매소에서 열고 있는 원어민 영어교실에 참여한 주민들이 원어민 교사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한국마사회 제공
"해외에 나가면 남편은 어느 정도 영어가 되는데, 저만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창피하더라고요. 아직 시작 단계지만 다음에 해외에 나갈 땐 영어로 현지인과 대화하는 게 목표예요."

결혼 후 살림과 아이들 교육에만 '올인'해왔던 주부 조미정씨(34ㆍ안산시 선부동)는 지난해 2월부터 동네 근처 한국마사회 장외발매소(일명 화상경마장)에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독학할 생각으로 회화 책 하나 구입해 상황별 표현을 몇 문장씩 달달 외웠지만 며칠 못 가 한계를 느꼈단다. 결국 뜻 맞는 주부 2명과 함께 인근 한국마사회 장외발매소에서 운영하는 원어민 영어교실에서 수요일과 목요일 두 시간씩 집중 과외수업을 받았다.

"무료로 하는 영어교실에서 얼마나 늘까라는 의구심이 든 데다 공부해야 한다는 이렇다 할 만한 명분이 없었기에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도 많았다"는 게 조씨의 고백이다. 이제는 미국 드라마를 자막을 보지 않아도 내용을 대략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귀가 뚫렸다. 유창하진 않지만 외국인과의 짤막한 대화도 무리 없을 정도라며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안산 장외발매소의 원어민 영어교실이 지역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한 달에 교재비 5,000원으로 외국인에게 영어 회화를 배울 수 있다'는 입 소문이 퍼지면서 한 번 개강할 때마다 20명 정원이 금세 찬다. 주로 30~50대 주부들이 신청하지만 60~70대의 만학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도 열심이다.

안산 장외발매소는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경마가 시행되지 않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문화 센터로 변신해 원어민 영어교실, 승마교실, 탁구교실 다문화가정을 위한 한국어 강좌, POP예쁜 글씨 등 10여개의 다양하고 수준이 있는 문화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문화 강좌 중 단연 인기는 원어민 영어교실. 안산 장외발매소는 지난해 2월부터 지역민을 위해 저렴한 원어민 영어 강좌를 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장외발매소 측은 "처음에는 10여명 정도가 프로그램에 참가했으나 인기가 많아 지금은 대기 순번을 나눠 줄 정도"라며 "호응이 좋아 여름 방학 때는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말에 뭐 했냐'는 간단한 대화부터 시사 인물에 관한 토론까지 수업 주제도 다양하다. 영어 교실의 유일한 남자 수강생인 김기영씨(72)는 "비싼 돈 내고 영어 학원을 다녀봤지만 여기가 훨씬 싸고 수업도 알차다"며"장외발매소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지 몰랐다. 지역 시민을 대표해서 감사 들인다"고 말했다.

안산 장외발매소의 영어 강좌는 일방적인 강의 중심이 아니다. 수강생들이 원어민 강사와 일상 생활의 필요한 영어를 익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어책을 읽고 영어 독후감을 작성하거나 휴일이면 원어민 강사와 문화 답사를 하는 등 체험형 학습이 주를 이룬다.

외국인 강사들이 받는 강의료는 시간당 평균 4만 원 선. 봉사활동 개념으로 강의를 나오는 경우가 많다. 영어 강사인 로이슨씨는 "영어를 배우려는 열기가 뜨겁다"며 "새내기 주부부터 70대 어르신까지 수강생 모두 숙제를 꼬박꼬박 해온다"고 말했다.

한국마사회 안산 장외발매소 정영주 지사장은 "까다롭게 선발한 외국인 강사에게 무료로 수업을 받을 수 있어 지역민들의 호응이 좋다."면서 "딱딱한 문법이나 이론보다는 재미있는 회화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다른 지역에서도 수업을 받으러 오는 수강자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마사회 장외발매소 10곳에서 영어 강좌를 시행하고 있다. 수강료은 무료이거나 월 5,000원 정도의 교재비만 받는다. 기초부터 원어민 회화 과정까지 차근차근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강좌가 다채롭다.

이 밖에도 30개 전국 장외발매소에서는 외국어ㆍ수학ㆍ승마 같은 기본 프로그램부터 어린이 경제교실, 한문교실, 독서논술교실, 어린이 승마 등 학교에서 쉽게 배울 수 없는 강좌도 개설되어 수강생을 기다리고 있다.



이창호기자 chang@sp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