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 강민호 75억원 '초대박' 계약이종욱·최준석 등 타구단 FA 협상에도 큰 영향 미칠 듯당해 성적+기대치로 연봉 책정… 몸값과 성적은 비례하지 않아

강민호
모두가 깜짝 놀랐다. 롯데가 FA (28)와 4년간 계약금 35억원과 연봉 10억원 등 총 75억원에 도장을 찍었다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는 제주도 출신으로 포철중과 포철공고를 거쳐 지난 2004년 롯데에 입단했다. 계약금 9,000만원에 연봉은 2,000만원. 그러나 입단 10년째를 맞아 '신화'를 썼다. 첫 해 신인 연봉과 비교하면 무려 50배나 치솟은 10억원을 받게 됐다.

처음으로 연봉 1억원을 받았던 2008년 이후 6년 만에, 2억원을 받았던 2011년 이후 3년 만에 사상 최고의 초대형 FA계약을 성사시키며 몸값이 수직 상승했다.

의 계약 소식이 전해지자 '야구판'엔 난리가 났다. 인생 역전의 꿈을 꾸고 있는 선수들은 한결같이 환호성을 질렀지만 구단 관계자들은 입을 쩍 벌린 채 머리를 쥐어 쫬다. 특히 FA협상을 진행 중인 두산, SK, KIA, LG 관계자들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의 역대 최고액 계약이 쓰나미처럼 다른 구단의 FA들에게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욱, 손시헌, 최준석과 FA 협상을 하고 있는 두산 관계자는 "우리도 실탄은 준비돼 있다. 그렇다고 마구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밝히면서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김주찬의 50억원 FA계약이 올해 FA들의 기준선이 되고 있는데 '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정말 머리가 아프다"고 털어 놓았다.

모두 팀에 필요한 선수인 만큼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지만 구단이 정한 평가액에서 벗어나면 손을 놓을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두산뿐 아니다. 정근우와 협상하고 있는 SK, 이용규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KIA, 이대형과 합의점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댄 LG가 모두 비슷한 처지다. 계약이 꼬인 실타래를 더욱 복잡하게 얽히고설키게 만든 셈이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연봉을 어떻게 정해질까.

당해 연도의 성적과 이듬해의 기대치가 기본적인 평가 요소다. 여기에 경력이 쌓일수록 누적 공헌도를 반영한다. 그리고 비슷한 연차의 다른 구단 선수들의 연봉과도 비교한다. 최근에는 팬들의 목소리까지 반영되는 추세다. 프로야구의 주 수익원이 관중 수입이기 때문이다.

의 경우 입단 이듬해인 2005년부터 포수 마스크를 쓰고 경기 출전이 늘어나면서 연봉 인상의 기회를 잡았다. 첫 해에는 3게임 밖에 나가지 못해 2005년 연봉을 2,000만원에 묶여 있었다. 그러나 2005년 104경기에 나가 타율 2할4푼3리와 홈런 2개, 18타점을 기록하면서 인상 요인을 만들어 2006년 연봉을 3,500만원까지 끌어 올렸다.

2006년부터는 확실하게 주전으로 자리 잡고 팀 공헌도를 높이면서 연봉 역시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2007년에는 129% 오른 8,000만원, 2008년에는 다시 25% 인상으로 1억원을 받고 입단 5년째 스물셋의 나이로 '억대 연봉 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나 연봉 1억4,500만원을 받았던 2009년 부상 등으로 경기 출전이 83게임으로 줄어들면서 처음으로 연봉 1,000만원이 깎인 1억3,500만원에 2010년 연봉 계약서에 사인하면서 쓴 맛을 봤다.

그후 2011년 연봉 2억원, 2012년 연봉 3억원, 올해 연봉 5억5,000만원까지 쭉쭉 뻗어나갔다. 그리고 내년부터 2017년까지 4년 동안 성적에 관계없이 연봉 10억원을 받게 됐다.

프로야구 선수의 최고 연봉은 '20평대 아파트 한 채의 가격'과 비교되곤 한다. 그러나 이젠 이런 상대적 기준도 사라진 지 오래다.

프로 원년인 1982년 최고 연봉은 OB 박철순이 받은 2,400만원이었다. 그 후 최동원이 프로에 입단하면서 1985년부터 1990년까지 3,437만원에서 8,390만원까지 5년 연속 최고 연봉을 이어갔다.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은 1993년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연봉 1억원을 받고, 억대 연봉 시대를 열어 놓았다. 1999년 현대 정명원이 연봉 1억5,400만원으로 최고 자리를 지켰던 것이 2000년에 들어서면서 3억원대로 껑충 뛰었다.

현대가 2000년 정민태에게 연봉 3억1,000만원을 줬고, 삼성은 2003년 이승엽에게 6억3,000만원의 연봉을 주면서 몸값 상승을 부추겼다.

결국 정민태는 2001년부터 2002년까지 2년 동안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다 2003년 국내로 유턴했고, 2004년 연봉 7억4,000만원으로 순수 연봉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FA 심정수가 연봉 7억5,000만원을 기록한 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김동주, 손민한, 양준혁이 기록한 연봉 7억원이 최고였지만 또다시 일본에 진출한 뒤 국내로 돌아온 김태균이 2012년 연봉 15억원을 받아 내면서 몸값 상승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까지 치달았다.

올해 연봉 4억원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총 23명.

삼성이 이승엽(8억원), 오승환(5억5,000만원), 배영수(4억5,000만원), 장원삼, 진갑용(이상 4억원) 등 5명으로 가장 많았다.

LG가 이병규와 이진영(이상 6억원), 정성훈(5억원), 정현욱(4억원) 등 4명으로 뒤를 이었다. SK는 정근우(5억5000만원), 최정(5억2,000만원), 조인성(4억원) 등 3명, KIA도 김주찬(5억원), 송은범(4억8,000만원), 이범호(4억3,500만원) 등 3명, 두산은 김동주(7억원), 김선우(5억원), 홍성흔(4억원) 등 3명이 각각 고액 연봉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 롯데는 (5억5,000만원)와 정대현(5억원), 넥센은 이택근(7억원)과 김병현(6억원), NC는 이호준(4억5,000만원)에게 많은 돈을 지불했다.

연봉 4억원 이상의 초고액 선수들의 올 시즌 성적을 비교해 보면 돈의 가치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성적과 연봉은 절대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프로는 돈이다. 최저 연봉 2,400만원에서 시작하는 새내기들은 8년 또는 9년 안에 FA 자격을 얻고, 성적과 가치만 뒷받침되면 연봉 7억~10억원까지 몸값을 30~40배 이상 올릴 수 있다.

가 해외구단 진출 경력이 없는 순수 국내 선수로서 처음으로 받게 된 연봉 10억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창호기자 chang@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