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바이! 박지성… 한국 축구계 큰별

스포츠코리아 제공
박지성의 은퇴가 발표된 직후 국제축구연맹(FIFA)도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선수가 은퇴했다"고 전했다. BBC, ESPN 등 세계 유수언론들 역시 박지성의 은퇴를 헤드라인 뉴스로 소개하며 아시아 축구 스타의 마지막을 아쉬워했다.

박지성은 한국 축구계에 다시없을 큰 영향을 끼친 채 축구화를 벗었다. 박지성이 한국 축구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국가대표 경력을 통해 되돌아봤다.

깜짝 발탁…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에

1999년 명지대학교에서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지성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을 꾸리던 허정무 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 의해 깜짝 발탁됐다. 허정무 감독은 무명의 박지성을 발탁한 이유에 대해 "당장은 부족해 보여도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봤다"며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음을 밝혔다.

박지성이라는 존재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2002 한일월드컵 직전 열린 유럽강호와의 평가전에서부터였다. 당시 데이비드 베컴, 마이클 오언 등을 보유했던 잉글랜드는 박지성의 헤딩 골에 1-1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고,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도 박지성에게 골을 허용한 것.

박지성은 곧바로 이어진 2002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고 특히 포르투갈과의 조별예선 3차전에서 이영표의 크로스를 이어받아 오른발 슈팅으로 골을 넣은 후 거스 히딩크 감독과 나눈 '포옹 세레모니'는 한국 축구사의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다. 박지성은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핵심선수가 되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고 이때부터 한국대표팀은 2011년 박지성이 대표팀 은퇴를 할 때까지 10년간 '박지성의 팀'으로 전 세계 팬들에게 인식됐다.

박지성 시프트의 탄생… 간담을 서늘케 한 골

2004 아시안컵을 거쳐 2006 독일월드컵까지 한국대표팀의 전술도는 박지성이 중앙 미드필더로 가느냐 혹은 윙어로 가느냐에 따라 선수구성이 달라지는 '박지성 시프트'가 적용됐다. 이에 따라 한국의 포메이션 역시 4-4-2, 4-2-3-1, 3-4-3 등 유동적으로 바뀌었고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박지성이 있었다.

박지성은 2006 독일월드컵에서도 당시 준우승을 차지한 프랑스(우승 이탈리아)를 상대로 동점골을 넣으며 프랑스를 조별 예선 탈락 위기에까지 내몰기도 했다. 당시 한국은 스위스에게 아쉽게 0-2로 패하며 1승1무1패의 성적에도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준 우승팀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박지성의 골은 국민들의 뇌리에 박혀있다.

'캡틴' 박지성의 탄생… 사상 첫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

박지성을 중심으로 한 국가대표 뒤는 그를 우상으로 삼던 이청용, 기성용, 박주영 등이 정상급 선수로 거듭나면서 갈수록 강해졌다. 박지성은 2008년 10월 김남일이 경고 누적으로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하자 공식적인 대표팀 주장 자리를 이어받았고 이후부터 국민들이 잊지 못하는 '캡틴' 박지성으로 거듭나게 됐다.

2005년 이적 후 세계 최고의 인기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전급 멤버로 활약하면서도 국가대표 주장을 역임하고 있는 박지성의 존재감에 2010 남아공 월드컵은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룰 적기로 판단됐다.

박지성은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예선 첫 경기였던 그리스전에서 수비 실수를 틈타 골을 뽑아냈다. 한국은 박지성의 골에 힘입어 2-0으로 승리했고 이 승리를 발판 삼아 조별 예선 1승1무1패의 성적으로 16강에 진출했다. 비록 16강에서 우루과이에게 패배했지만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끝내 이루지 못한 아시안컵 우승

이렇게 화려한 대표생활이었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박지성은 누누이 "아시안컵 우승이 대표선수로서 목표다"고 밝혀 왔다. 그리고 자신의 국가대표 마지막 무대를 2011 아시안컵으로 잡을 정도로 우승을 갈망했다.

박지성은 첫 출전했지만 2004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8강에서 이란에게 패하는 바람에 목표달성에 실패했다. 2007년에는 부상으로 출전조차 하지 못했다. 2011 아시안컵에서 한국은 4강까지 올랐으나 준결승에서 일본에게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하며 3위에 머물렀다.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박지성은 A매치 100경기 출전을 달성했고 이 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월드컵 4강, 프리미어리그 우승,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의 화려한 경력에도 끝내 아시안컵 우승에는 실패한 것.

박지성은 사실 A매치 100경기를 뛰는 동안 13골밖에 넣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국가대표 골이 국민들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는 것은 가장 중요한 순간, 강 팀을 상대로 한방을 해줄 수 있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박지성은 은퇴했지만 국가대표로서 쌓은 수많은 업적과 국민들을 울고 울렸던 골들은 국민들 가슴 속 깊이 남아 있다.



이재호 기자 jay1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