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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경훈 "'의리에 지휘자까지', 나라고 안 창피했겠나"

[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담담하면서도 시원섭섭한 목소리였다.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의 한 관계자는 그를 두고 '우리 구단 최고의 자산이며 최고 유명인'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민이 사랑하고, K리그 팬들이 환호했던 박경훈(54) 전 감독은 제주 지휘봉을 놓고 전주에서 분필을 들고 교수로서의 새 삶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 감독에 있으면서 구단의 다양한 마케팅 행사에 동참했던 박경훈 감독

제주 감독직에서 떠나며 마지막으로 진행된 그와의 인터뷰는 5년간의 제주 감독생활을 총 정리하는 의미가 있은 까닭인지 박경훈 전 감독의 목소리는 회한이 묻어 나왔다. 스포츠한국은 2014년 끝자락 제주 서귀포의 한 해변 카페에서 박경훈 전 감독을 만나 5년간의 제주 감독 생활을 되돌아봤다.

▶왜, 제주 지휘봉을 놓을 수밖에 없었나

2010시즌부터 2014시즌까지 5년간 제주 지휘봉을 잡았던 박경훈 감독은 왜 그만둘 수밖에 없었을까. 혹시 구단과의 불화 같은 말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자 박 감독은 손사래를 치며 "제주 구단은 내가 원하는 건 최대한 들어주려고 했던 팀이다"며 "스스로 '너무 오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팀에서 5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는 구단에게 새로운 변화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줘야 했다. 나 역시도 스스로 변화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무슨 얘기일까.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봤다.

"솔직히 5년을 하다 보니 초심을 잃었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습니다. 예전에는 선수가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게 기다릴 줄 알았는데 초조하다 보니 그런 마음이 변질됐죠.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이젠 뒤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어요. 구단에서 나에게 장기계약을 안긴 것은 먼 미래를 보고 어린 선수를 키우는 것에 힘을 써달라는 의미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프로는 당장 성적을 내야죠. 구단에서 뭐라고 하진 않았지만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상당히 컸어요."

그렇다면 그가 만족하는 순위는 어느 수준일까.

박 감독은 "모든 감독들의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상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수 있는 3위 정도는 해야 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그만두는 것을 생각한 것은 2013시즌부터였는데 그때부터 나 스스로 코치진들에게 'ACL 진출권을 따내고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감독으로서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하고 노력했음에도 그것이 이뤄지지 않아 고민에 많았다. 그러다 보니 결국 '구단이나 나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제주 유나이티드는…

5년 동안 모든 걸 바쳐왔던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그는 무엇을 이루고 싶었던 것일까. 단순히 우승, 최고 감독상의 영예만을 원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축구 팬들에게 '제주하면 '00축구'를 하는 팀이다'라는 확고한 인식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팀 컬러를 만들고 싶었고 그렇기 때문에 미드필더에서부터 만들어지는 패싱축구를 5년간 추구했죠. 또한 제주도를 선수들이 오기 꺼려하는 팀에서 탈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젊은 선수들이 축구 하나만 보고 제주도로 넘어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예를 들어 수도권 시민구단과 제주를 놓고 선택하라고 하면 제주는 기업구단임에도 수도권 시민구단을 택하는 것이 현실이죠. 하지만 5년간 있으면서 에이전트가 제주행을 선수에게 권유하면 선수 역시 제주행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제주를 '가고 싶어 하는 팀'으로 만들었다는 점은 분명 자부심이 있습니다."

박 감독은 이상적인 제주 유나이티드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팀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실제로 박 감독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김보성의 의리를 패러디한 홍보물에도 직접 출연하며 마케팅에도 일선에 나서 제주를 홍보해왔다.


'의리' 열풍에 동참했던 박경훈 감독은 팬들을 위해서라면 부끄러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 감독은 "아마 전 세계 감독 중에 그런 걸 직접 한 감독은 거의 없을 것이다"며 껄껄 웃은 뒤 "사실 나도 많이 망설였다. 솔직히 그런 홍보물을 찍으면서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팬이 있어야 축구가 존재할 수 있는 법이다. 한 명이라도 더 끌어오고 팬으로 만들 수 있다면 뭐든지 해야 한다. 수원이나 서울 같은 구단이 명문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팬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제 제주도 평균 관중이 7천명에 육박하는데 구단과 함께 이런 일을 하면서 팬들에게 '제주는 내 팀'이라는 소속감을 갖게 했다는 점은 분명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제주 감독 5년을 했지만 잘 모르는 제주도

U-17 청소년 대표 감독 이후 2010년 제주 지휘봉을 잡았던 것은 박경훈 본인에게도 감독으로서 프로감독으로 첫발을 내딛는 중요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5년이 흘러 감독 생활에 방점을 찍은 현재, 박 감독에게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전 솔직히 항상 열심히 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럼에도 분명 한계가 찾아왔고 그럴 때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몰랐던 것이 아쉽습니다. 아침 일찍 나와 저녁 늦게 들어가면서 하루 종일 축구 생각만 하는데 여유가 부족했죠. 그런다고 축구의 깊이가 더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지인들이 제주도에 많이 찾아오고 할 때도 따로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5년을 생활했지만 제주도의 맛집이나 관광지를 잘 몰라요. 제주도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입니까. 이렇게 제주도 생활을 마치고 나니 그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만약 다음에도 감독을 하게 된다면 골프도 하고 낚시도 하는 등 스트레스 해소법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박경훈 감독이 떠난 후 제주의 새로운 사령탑에는 조성환 2군 감독이 승격됐다. 박 감독은 "조 감독의 부임 소식을 구단으로부터 먼저 들었는데 듣자마자 '아주 잘 선택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이 이끄는 제주는 분명 또 다른 색깔을 지닌 팀으로 변모할 것"이라며 5년간 몸 바쳤던 팀의 건승을 기원했다.

2015년도 1학기부터 전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님으로 돌아가는 박경훈 전 감독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인생을 이제 뒤를 돌아보며 살고 싶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하면 저 역시 공부를 해야 하고, 그렇게 후진양성을 목표로 살아가야죠. 열심히 살다 보면 때에 맞춰 또 다른 기회가 올 수도 있겠죠. 교수로서는 학생들의 재능을 찾아내고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게 돕고 싶습니다. 감독으로서 또 다른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면 못해본 우승의 꿈을 이루는 것은 물론, 정말 세계적인 선수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네요."



그의 감독생활이 마무리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를 아는 많은 축구인들은 탄식을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그는 축구계에서 덕망이 높았고 마음 씀씀이가 넓은 이로 유명했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가장 존경하던 분이 그만두시니 참 안타깝다'며 아쉬워했다. 떠나면서도 제주 걱정을 하고, 어떻게 하면 K리그에 더 많은 관중이 올 수 있을까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박경훈 감독은 현장을 떠났다. 하지만 더 성숙하고, 능력 있는 감독이 돼 다시 한 번 '박경훈표 축구'를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사진=제주 유나이티드, 스포츠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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