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캐나다 퍼시픽 여자오픈 연장전에서 리디아 고에게 패해

또 다시 미국의 대표주자 스테이시 루이스(30)가 태극낭자에 무릎을 꿇었다.

24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의 밴쿠버GC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캐나다 퍼시픽 여자오픈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5타나 줄이며 리디아 고(18)와 공동선두에 올라선 스테이시 루이스가 연장전에 나서 보기를 범하면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태극낭자의 벽에 막혀 우승 기회를 놓친 것만도 올 들어 세 번째다. JTBC 파운더스컵 대회에서 김효주와 맞붙어 우승컵을 내주었고 혼다 LPGA타일랜드 대회에선 양희영과 접전을 벌인 끝에 무릎을 꿇은 데 이어 이번에는 리디아 고에게 연장승부에서 패했다.

리디아 고를 태극낭자군에 포함시키는 것을 두고 문제 삼는 골프팬이 없지 않지만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한국에서 태어났고 비록 국적은 뉴질랜드이지만 여전히 한국이름(고보경)을 갖고 있고 가족들과 한국어로 대화하는 그를 굳이 태극낭자군에서 제외시키는 것도 어색해 보인다.

그 전에도 여러 차례 태극낭자들과 접전을 벌여 패한 경험이 많은 루이스에게 태극낭자는 치유하기 어려운 일종의 징크스(Jinx)로 굳어버린 느낌이 들 정도다. 미국 언론에선 이를 두고 ‘태극낭자 공포증(Korean Girls Phobia)’이란 용어까지 만들어냈는데 과연 루이스가 갖고 있는 태극낭자에 대한 징크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징크스란 새의 이름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신이 예언할 때나 마법을 부릴 때 불길한 조짐이나 불운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징크스를 갖게 된 계기나 이유를 곰곰이 따져 보면 징크스가 얼마나 근거 없고 터무니없는지 깨닫게 된다. 징크스는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 순간의 실수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도피처일 뿐이다. 실수의 탓을 자신이 책임지지 않고 그 아픔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의 함정일 뿐이다. 골퍼들의 징크스를 꼽으라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골프와 전혀 상관없는 것에서도 징크스를 만들어내 거기에 구속되기까지 한다.

인도의 성자로 불리는 오쇼 라즈니쉬의 『지혜로운 자의 농담』에 실린 다음의 우화는 상상력이 만들어낸 징크스의 속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4년 동안 전신마비증세로 걷지 못하고 자리에 누워 있었던 한 중풍환자가 있었다. 어느 날 집에 불이 났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빠져 나왔는데 그는 미쳐 빠져 나오지 못했다. 불길이 점점 드세어지자 다급해진 그는 자신이 중풍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집밖으로 뛰어나왔다. 불타는 집에서 달려 나오는 그를 보고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잠깐! 당신은 중풍환자가 아니냐?”

이 소리를 들은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이 우화는 인간이 갖고 있는 대부분의 병이 육체적인 것 못지않게 마음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의 마음이 병을 잊어버린다면 어떤 약보다도 더 빨리 그 병을 사라지게 할 수 있고 마음속에 병을 담고 계속 씨름한다면 병의 증세는 더욱 심해질 따름이라는 가르침이다.

태극낭자가 왜 스테이시 루이스에게 넘을 수 없는 징크스가 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루이스로 말하면 이론의 여지가 없는 미국 여자골프의 대표주자다. 통산 9승의 그는 지난해 LPGA ‘올해의 선수상’을 받기까지 했다. 품성도 훌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척추측만증으로 고생하면서도 허리에 철심을 넣고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까칠해 뵈는 겉모습과는 달리 동반자에 대한 배려심도 깊고 LPGA투어 동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런 스테이시 루이스가 태극낭자들 앞에서 맥을 못 출 이유는 없다. 대부분의 대회가 주로 미국에서 열리는 만큼 오히려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 속에서 홈 어드벤티지를 누린다고 볼 수 있다. 단지 중요한 순간에 평정심을 유지하며 고고한 플레이를 펼치는 태극낭자에 비해 스테이시 루이스는 지나치게 승리에 집착한 나머지 평소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탓이 클 것이다. 이런 경험이 몇 번 누적되다 보니 자신의 플레이를 펼치기보다는 ‘동양에서 온 겁 없는 소녀들’을 꺾어야겠다는 쟁투심이 발동해 골프가 필요로 하는 고도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 아닐까.

태극낭자들 중에도 이를 터득하지 못해 목전에 다가온 승리를 놓치는 선수도 있고 박인비, 김효주, 리디아 고 등처럼 타고난 평정심으로 골프 자체에 몰입하며 스스로와 고고한 싸움을 벌이며 롱런의 씨앗을 뿌리는 선수도 있다.

LPGA투어의 흥행을 위해서나, 태극낭자들이 활동할 무대의 확보를 위해서나, 줄리 잉스터나 캐리 웹 같은 대선수의 탄생을 위해서 태극낭자들이 골프 자체를 즐기며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에 소홀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방민준 골프한국 칼럼니스트 news@golf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