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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베이스볼] '안주 없는 삶' 이대은,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

[스포츠한국 이재현 기자] 야구 국가대항전인 프리미어 12가 열리기 직전에 들어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선수가 있다. 이전까지는 그저 일본 프로야구 무대를 누비는 잘생긴 야구선수였다. 하지만 대회가 끝나자 그는 어느새 외모와 실력을 겸비한 한국의 우완 에이스로 거듭났다.

패션모델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의 훤출한 외모와 큰 키. 이대은(26·지바 롯데)은 화려한 2015시즌이 막을 내리고도 치솟는 인기로 인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언제나 도전과 모험을 멈추지 않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던 이대은의 노력이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는 듯했다.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첫 번째 도전, 고교 졸업과 동시에 선택한 미국행
  • 일본 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즈의 투수 이대은이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지수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아버지께서는 항상 제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선수라고 노래를 부르셨어요. 저 역시 자연스럽게 미국 진출이 제 꿈이 됐죠."

신일고 졸업을 앞둔 지난 2007년 8월, 이대은은 일생일대의 선택을 앞두게 됐다. 꿈이었던 메이저리그 진출이 현실화 된 것. 메이저리그의 시카고 컵스로부터 입단 제안을 받은 그는 과감하게 첫 번째 도전의 발걸음을 뗀다. 하지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비교적 편안하고 평범한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기회 역시 존재했기 때문.

"시카고에서 제안이 왔을 당시 국내 프로구단에서도 입단 제의가 들어왔었어요. 구단 관계자분은 부모님께 저녁식사를 대접하며 '한국도 나쁘지 않으니 여기서 뛴 후에 (해외로)넘어가는 것 역시 방법이다'라고 설득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최종 결정은 시카고 컵스(계약금 81만 달러)였다. 부모님의 결정이 아닌 이대은 본인의 의지가 담긴 결정이었다. 그는 "최종 결정을 앞두고 다 같이 가족회의를 했다. 아버지께서는 '어디까지나 결정권은 나에게 달려있다' 라고 말씀을 하셨고, 소신 있게 미국을 간다고 했어요"라며 미국행을 결정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미국행을 결정하는 데 있어 위험부담은 있었다. 한국에서 대학과 한국 프로구단을 거치지 않고 외국 프로구단과 계약하면 계약이 끝나도 2년간 한국프로야구에 입단하지 못한다는 KBO 규약은 큰 걸림돌이었다. 말 그대로 보험이 전혀 없었다.

과감한 도전을 시도했지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하지만 이대은은 오히려 당당하게 되물었다. 그는 "그 어떤 선수도 실패할 것을 먼저 생각하고 미국행을 결정하지 않아요. 2년 동안 (한국에서) 뛰지 못하는 것을 미리 두려워했다면 미국행을 결정하지도 않았겠죠"라고 말했다.

▶2번째 도전, 미국에서의 7년 그리고 일본 지바 롯데
  • 일본 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즈의 투수 이대은이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지수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장밋빛으로 가득할 것만 같았던 시카고 컵스에서의 생활.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2008년 싱글A에서 4승1패, 평균자책점 1.80을 거뒀던 이대은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 팔꿈치 부상으로 선수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토미존 수술을 받게 된다. 입단 초기에 찾아온 첫 번째 아픔이었지만 그는 태연하게 당시를 회상했다.

"구체적인 성적(4승1패)을 거뒀기에 큰 걱정은 없었어요. 젊은 나이(만 19세)에 다쳤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죠. 당시에는 내일에 대한 희망이 가득했기에 그 희망으로 재활과정을 버텨냈어요. 아마 어깨 수술 후 재활 중인 류현진(28·LA 다저스) 선배도 당시의 저와 같은 마음으로 버텨내고 있지 않을까요."

부상 복귀 이후 7년간 메이저리그 문을 노크했던 이대은. 그러나 2014년 컵스 산하 트리플A팀인 아이오와 컵스(3승2패, 평균자책점 3.75)를 끝으로 그는 더 높은 무대인 메이저리그의 마운드를 밟지 못했다. 고심 끝에 이대은은 '미국에서의 7년'을 뒤로 한 채 일본행이라는 2번째 도전을 결정한다. 아쉬움은 없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일 뿐이었다.

"전혀 아쉽지 않았어요. 터닝포인트가 필요했거든요.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되려면 변화가 있어야 해요. (미국에)머물러 있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어요. 때마침 지바 롯데에서 좋은 제안이 왔어요. 이전부터 일본 야구는 섬세한 야구를 구사하고 특히 투수들의 제구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장기 계약이 아닌 단기 계약(1년 연봉, 5,400만엔)이었죠. 일본 야구를 잘 배워두면 메이저리그에 다시 진출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죠."

그렇게 이대은은 일본 열도에 입성했다. 시속 150km대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통해 입단 당시 두 자릿수 승수를 목표로 했던 그였다. 지난 7월30일 9승째를 거둘 때만 하더라도 손쉬운 목표 달성이 예상됐지만, 후반기에 슬럼프가 찾아오면서 끝내 10승 달성(9승9패, 4홀드, 평균자책점 3.84)에 실패했다. 이 슬럼프 탓에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도 제외됐다.

당시 이대은은 부진과 더불어 태도 논란에도 휩싸였다. 미국 문화에 익숙한 그의 직설적인 표현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 코치들과 갈등을 겪었다는 것. 이로 인한 문책성 엔트리 제외라는 평도 뒤따랐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의견을 부인했다.

"오랜 타지생활 덕분에 적응도 쉬웠고 모든 것이 다 좋았어요. 그러나 일본 문화는 미국과 다른면이 있었어요. 저는 일본 문화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미국에서 하던대로 (직접적인) 의사표현을 했는데, 그 부분이 일본 코치들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던 것 같아요. 전혀 마찰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로 인해 엔트리에서 제외된 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에요. 당시 저는 실점에 대한 두려움 탓에 과감하게 공을 던지지 못했어요. 제외된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어요. 내가 코치였어도 저를 제외 했을 것 같아요."

▶3번째 도전, 한국 대표팀 그리고 프리미어12
  • 일본 프로야구 지바롯데 마린즈의 투수 이대은이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지수 인턴기자 multi@hankooki.com
이대은의 2번째 도전 역시 다소 씁쓸한 뒷맛을 남겼지만 일본 무대 데뷔 시즌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낙담할 것도 아니었다. 일본야구 경험은 이대은이 지난 10월 야구 국가대항전인 프리미어 12 대표팀에 최종 선발되는 배경이 됐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믿을 만한 우완 선발투수의 기근을 끊어줄 재목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도전을 이어가던 이대은을 점찍었다. 3번째 도전의 기회는 그렇게 우연처럼 찾아왔다.

생애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 유니폼을 입게 된 이대은의 도전은 '우승'이라는 대성공으로 마무리됐다. 3번째 도전 끝에 드디어 자국 선수들과 함께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다. 그는 대회에서 총 2경기에 나서 1승(베네수엘라전 5이닝 2실점), 3.2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프리미어 12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이전까지 대중들에게 생소한 존재였던 그의 주가는 하늘을 찔렀다. 프리미어 12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이대은이었다.

이대은에게 프리미어 12는 기쁨의 연속이었지만, 특히 자신이 선발로 나섰던 일본과의 준결승전을 절대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당시 3.1이닝 3피안타 4사구 4개 3실점(1자책)을 기록한 그는 3회까지는 무실점으로 버텨냈지만 4회에만 3실점을 내주고 마운드를 아쉽게 내려왔다. 하지만 3실점으로 버틴 그 덕분에 한국은 9회초에만 4점을 뽑아내고 짜릿한 4-3 역전승에 성공했다.

사실 이대은의 일본전 등판은 또 하나의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그는 일본 선수들을 잘 알고 있는 '지일파'이자 동시에 일본 선수들의 '사냥감'이기도 했다. 자국리그에서 결코 빼어나다고 할 수 없는 기록(9승9패)을 올린 투수에게 두려움을 느꼈을 일본 타자는 적었다. 이대은 역시 이 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이기고 싶었다고 했다.

"(일본전 선발 등판은)도전이 맞다고 생각해요. 일본 입장에서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사실 그래서 더 이기고 싶었어요. 오기가 생겼죠. 개인적으로는 많은 아쉬움이 남았던 경기였어요. 아마 지바 롯데에 다시 돌아간다면 일본인 동료들이 저를 환영할 것 같아요. 심지어 '잘했다'라고 칭찬까지 해주면서요. 제가 일본팀이 이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줬으니까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표팀이 이겼기에 그 정도면 충분해요."

많은 도전들을 주저하지 않았던 이대은이지만 그는 여전히 도전에 목말라 있었다. 여전히 도전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라고 했다. 특히 한국인 최초의 일본 프로야구 10승 달성은 그가 당면한 도전과제 중 하나다.

"지난 시즌에도 신기록에 대해 의식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신기록에 대한 욕심과 부담감 때문에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갔어요. 결국 여러 가지 이유로 10승의 문턱 앞에서 주저앉았죠. 큰 이변이 없는 한 지바 롯데와 내년에도 함께 할 것 같은데, 다음 시즌에는 '10승' 이라는 도전에 꼭 성공하고 싶어요."

그렇다면 이대은의 최종 도전 과제는 무엇일까. 그는 주저하지 않고 '메이저리그 진출'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병역 문제를 선결해야 한다. 2년간의 공백기가 불가피한 병역이 해결되지 않은 만 26세 이상의 선수에게 관심을 가질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사실상 전무하다.

"물론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병역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어요. 하지만 (병역으로 인해) 시기가 다소 늦어진다고 해도 제 인생의 큰 그림은 여전히 메이저리그로 그리고 있어요.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서는 일단 일본에서의 성적이 중요할 것 같아요. 성적이 좋다면 메이저리그 진출 기회 역시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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