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 고(19·한국이름 고보경)의 비상(飛翔)은 어디까지일까.

리디아 고가 14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클리어워터 골프클럽에서 막을 내린 유럽여자프로골프 투어(LET) ISPS 한다 뉴질랜드여자오픈에서 최종합계 10언더파 206타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면서 이 대회 통산 3승을 올리는 것을 지켜보며 이 천재 소녀(?)가 펼쳐나갈 골프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본다.

만 19세(1997년 4월 24일생)도 되지 않는 나이에 성취한 것만 해도 대부분의 여자골프선수들이 평생 쌓은 업적을 훌쩍 뛰어넘는다.

주니어시절의 화려한 수상경력은 제쳐두고 LPGA투어에서 거둔 승리만 메이저대회(에비앙챔피언십) 1승을 포함해 모두 10승에 이른다. 이중 2012, 2013년 CN 캐나다여자오픈 우승은 아마추어 신분으로 거머쥔 승리였고 2013년 LPGA투어에 정식 입문한 뒤 벌써 8승을 쌓았다. 2014년 신인상은 당연히 그의 차지였고 2015년에 LPGA사상 최연소로 박인비로부터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넘겨받은 뒤 역시 사상 최연소 ‘올해의 선수상’등 각종 상을 휩쓰는 영광을 안았다.

이 정도의 업적만 놓고 봐도 다른 선수들이 부러워해마지 않을 대성공인데 그의 나이 갓 만19세도 넘지 않았으니 천재성 위에 많은 연습과 경험이 축적된다면 그가 이뤄나갈 골프의 미래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 분명하다.

골프팬으로서 리디아 고의 놀라운 경기력과 쌓여가는 업적을 지켜보는 것만도 대단한 기쁨이다. 국적만 뉴질랜드일 뿐 100%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넓은 의미의 태극낭자이니 한국인으로서 여간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과 뉴질랜드에서 리디아 고의 국적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일부 한국의 골프팬들은 리디아 고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 그 나라 국적을 취득했으니 뉴질랜드인이라며 태극낭자에 포함시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표시하고 양국을 오가며 여러 혜택을 누리는 데 대해서도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의 국적에 대한 부정적 우려는 오히려 뉴질랜드 쪽에서 더 심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든다. ISPS 한다 뉴질랜드여자오픈 참가를 위해 뉴질랜드를 찾은 리디아 고에게 현지 기자들이 “올해 열리는 올림픽에서 어느 나라 국기를 달고 뛰겠느냐?”고 물은 것은 리디아 고가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각종 지원을 받으며 활동하다가 골프선수로 성공가도에 진입한 뒤 한국으로 돌아간 예가 적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리디아 고의 대답은 명쾌했다.

“나는 내 가방에 뉴질랜드 국기를 새기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밝혀 국적을 바꿀 뜻이 없음을 당당히 밝혔다.

“한국에서 골프를 시작했지만 뉴질랜드에서 대부분 성장했다. 뉴질랜드 골프협회는 나를 후원했다. 따라서 뉴질랜드를 떠나는 것은 어렵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한국 사람의 얼굴이라고 한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난 것도,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것도 자랑스럽다. 훌륭한 두 나라에서 응원을 받는 것은 행운이다. 나는 한국의 키위, 그러니까 나는 KOWI(KOREA와 KIWI를 합친 것)다”라는 부연설명은 얼마나 재치 있고 지혜로운가.

키위는 뉴질랜드에서만 사는 새 종류인데 뉴질랜드를 상징하고 뉴질랜드인을 지칭하기도 한다. ‘KOWI’라는 새로운 조어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할 줄 아는 리디아 고 자체가 대견스럽다.

어찌 보면 오늘의 리디아 고는 한국과 뉴질랜드의 합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디아 고는 골프 천재성을 타고 났고 그의 부모는 이런 딸을 제대로 키울 수 있는 골프환경으로 뉴질랜드를 택했다. 뉴질랜드는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발휘하는 리디아 고에 대해 학교와 커뮤니티 차원은 물론 골프협회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새 리디아 고는 뉴질랜드 청소년의 표상이자 최고의 스포츠스타가 되었다. 골프에서의 뛰어난 기량뿐만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사회에 기부하는 생활태도에 뉴질랜드인들은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리디아 고는 시상식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릴 때 지난해 말 갑자기 세상을 떠난 패스티 핸킨(Pasty Hankin) 전 뉴질랜드골프협회 회장에게 바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리디아 고에게 뉴질랜드에서의 골프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멘토였다. 시상식 후 리디아 고는 상금 전액을 어떤 방식이든 뉴질랜드를 위해 기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보은(報恩)을 잊지 않는 리디아 고의 모습은 시상식장에 참석한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골프선수들 사이에서도 그는 사랑의 중심에 서있다. 매주 만나다시피 하는 선수들과의 관계가 원만해 누구나 리디아 고와 동반 라운드를 하는 것을 반긴다고 한다. 동반자들에게 긍정적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애교 넘치는 춤과 표정으로 갤러리들에게도 기쁨을 안긴다.

코츠 골프챔피언십에서 장하나와 함께 우승경쟁자로 마지막 라운드를 돌며 첫 우승의 문턱에서 멈칫멈칫 하는 장하나에게 “언니, 이번에 우승할 수 있어요.”라며 격려와 용기를 줄 수 있는 선수이니 그 마음의 그릇 크기를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2013년 뉴질랜드 선수 중 가장 뛰어난 선수에게 주는 핼버그상에 이어 이번에 뉴질랜드 최고의 스포츠스타에게 주는 55년 전통의 론즈데일컵까지 수여한 것만 봐도 뉴질랜드가 리디아 고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짐작할 수 있다.

리디아 고가 뉴질랜드 국적을 지킨다고 한국인의 모습과 피가 어디 가겠는가. 대선수들을 속속 배출하며 세계 여자골프를 지배하는 한국 여자골프의 위상이 손상되는 것도 아니다.

리디아 고가 한국 국적을 되찾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무엇일까. 애국심 운운한다면 유치하다. 한국 선수들의 승수야 많아지겠지만 그것은 대세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세계 골프팬들은 리디아 고가 뉴질랜드 국적이지만 한국인임을 다 안다.

오히려 리디아 고가 뉴질랜드 국적을 버렸을 때 뉴질랜드는 물론 국제적으로 ‘단물만 빼먹고 돌아갔다’는 인식에 한국선수들이 불편한 눈총을 받을 것이고 한국 및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이제 국적 논란의 굴레에서 리디아 고를 풀어주자. 더 높이 더 멀리 날기를 꿈꾸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처럼 맘껏 허공을 날도록 놓아주자. 위대한 한국인의 후예로, 뉴질랜드의 미래를 밝힐 뉴질랜드 젊은이로, 세계 골프팬들의 사랑을 받는 지구촌 스포츠스타로 훨훨 날 수 있도록. 스스로 지구상에서 가장 멀리 날아간다는 앨바트로스가 될 수 있도록.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방민준 골프한국 칼럼니스트 news@golfhank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