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투어 3개 대회 연속 우승

아리야 주타누간(21)의 기적 같은 LPGA투어 3연승이 있기 전까지 한국선수 또는 한국계 선수로 통칭되는 태극낭자들은 세계 여자골프의 큰 산맥을 구축하고 있었다.

아니카 소렌스탐이나 로레나 오초아를 뛰어넘지는 못했지만 태극낭자들은 그들이 떠난 자리를 꿰차고 세계 여자 골프의 주류로 도도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박세리와 그 동료들의 당찬 도전으로 세계무대로 물꼬를 튼 한국의 여자골프는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벽을 차례차례 허물며 골프의 변방에서 종주국을 휘젓는 강국으로 우뚝 섰다. 한국 여자골프는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 선수들의 도전을 받는 골프의 준령이 된 것이다.

이런 지구촌 여자 골프 계에 뜻밖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태국의 슈퍼스타 아리야 주타누간(21)의 등장은 당시 박세리의 LPGA투어 등장만큼이나 충격적이다.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태극낭자에 막혀 분루를 삼킨 아리야 주타누간이 5월9일(한국시간) 요코하마타이어 LPGA클래식에서 태국선수로는 사상 처음 LPGA투어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볼 때만 해도 그의 첫 우승은 그동안의 쓰라린 패배를 감안하면 합당한 보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연이어 5월23일 킹즈밀 챔피언십을 제패하자 단숨에 그의 위상은 주목의 대상에서 경계의 대상으로 달라졌다. 특히 여러 차례 그의 우승을 가로막은 경험이 있는 태극낭자들의 입장에선 괄목상대(刮目相對)의 대상이 되었다.

두 번째 우승 일주일 뒤인 30일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의 트래비스 포인테CC에서 열린 LPGA투어 볼빅 챔피언십마저 우승, 3개 대회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아리야 주타누간은 태극낭자들이 극복해야 할 산으로 성큼 다가왔다.

LPGA투어에서의 3개 대회 연속 우승은 전에도 꽤 있었고 최근의 기록으로는 2013년 6월 박인비(28)가 LPGA 챔피언십, 아칸소 챔피언십, US 오픈을 잇달아 제패한 이후 3년 만이지만 LPGA투어 첫 승을 거둔 선수가 3연승 한 것은 LPGA투어 사상 아리야 주타누간이 처음이다.

태극낭자들이 그를 예사롭게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은 이런 역사적 기록 때문이 아니다.

3연승이 객관적으로 증명하듯 170cm의 장신에 지칠 줄 모르는 체력, 다섯 살 때부터 언니 모리야 주타누간(22)과 함께 선의의 경쟁으로 익혀온 탁월한 골프기량, 굳이 드라이버를 잡지 않아도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 장타력에다 취약점으로 여겨지던 ‘멘탈’에서마저 대변신에 성공함으로써 가공할 선수로 거듭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에게 쓰디쓴 패배를 안긴 태극낭자들과의 경기에서 보고 느끼며 배운 경험이 정신력을 담금질 하는데 긍정적 효과를 발휘함으로써 골프 자체를 대하는 자세가 180도로 달라졌다는 것도 비장의 무기로 봐야 할 것이다.

우승 후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그의 실토를 들어보자.

“작년에 내게는 몇 번의 우승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는 중압감 속에서 어떻게 플레이해야 할지 몰랐다. 결정적인 순간에 내리누르는 압박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특히 지난 몇 주는 압박감 속에서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는지 배우고 터득했다.”

이런 정신자세의 변화는 플레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예전에는 우승을 눈앞에 두고 긴장한 나머지 미소가 사라지고 평정심을 잃어 덤비듯 플레이했으나 3연승을 거둔 3개 대회에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추격을 당하고 동타를 허용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결코 서두르거나 자신의 리듬과 페이스를 잃지 않았고 위기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살얼음판 같은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도 동반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여유를 발휘했다. 볼빅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서 앞 팀이 홀 아웃 하기를 기다리는 사이 골프백을 페어웨이에 뉘어놓고 주저앉아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면서 동반자인 제시카 코다를 불러 함께 쉬자고 하는 장면은 그가 비로소 골프를 어떻게 즐기고 이끌어가야 하는지를 깨달았음을 보여주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아리야 주타누간은 분명 세계 여자 골프 계의 대물(大物)이다. 다윗의 돌팔매에 맞아 쓰러지는 골리앗 같은 대물이 아니라 체력과 실력, 지혜까지 갖춘 대물이다. 아리야 주타누간을 요리하던 태극낭자들이 겁먹은 다윗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세계 여자골프의 주류를 형성, 우승을 나누며 잔치를 벌이던 태극낭자들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아리야 주타누간을 비롯해 잠재된 도전자들의 출현에 현명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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