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어 LPGA 클래식 우승

김세영(23)이 어느 새 LPGA투어의 ‘풀무’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가 무대에 오른 대회와 그가 빠진 대회의 열기는 확연히 구별된다. 대회마다 기존 스타들은 수성(守成)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새로운 스타들은 여왕의 자리를 탐하며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지만 그 경쟁구도 속에 김세영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대회의 열기, 골프팬들의 열광의 정도가 거짓말처럼 달라진다.

20일(한국시간)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 블라이드필드CC에서 펼쳐진 LPGA투어 마이어클래식 마지막 라운드에서 김세영은 그가 흔한 태극낭자 중의 한 명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163cm의 단신에도 불구하고 2015년 데뷔 첫해에 기적 같은 장면을 연출하며 장하나(24)와 함께 LPGA투어의 인기와 흥행에 불을 붙이는 선수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시즌 퓨어실크 바하마 LPGA클래식, LPGA 롯데챔피어십, 블루베이 LPGA 등 3개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그는 우승 그 자체보다는 그의 기적 같은 플레이로 세계의 골프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가 선두경쟁에 나선 대회는 빠짐없이 그로 인해 극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지만 특히 LPGA 롯데챔피언십에서 펼쳐진 박인비(27)와의 우승 경쟁에서 나온 두 차례의 기적 같은 샷은 압권이었다. 골프전문 채널은 두고두고 김세영의 플레이를 리플레이했고 골프팬들 역시 그에게 찬사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올 들어서도 지난 3월 JTBC 파운더스컵 대회에서 4라운드 내내 신들린 샷을 날려 스웨덴의 아니카 소렌스탐이 2001년 스탠더스 레지스터 핑 대회에서 세운 LPGA 72홀 최저타 기록 27언더파와 타이기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박인비와 장하나(24)의 컨디션 난조로 시즌 초반의 상승세가 꺾이면서 지난 5월초 텍사스 슛아웃 대회 신지은(24) 우승 이후 침묵을 지키고 있던 태극낭자들의 우승 레이스도 김세영의 마이어클래식 우승으로 다시 힘을 얻게 됐다. 김세영은 LPGA투어의 인기와 흥행은 물론 태극낭자들의 우승가도에서도 확실한 ‘풀무’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마이어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서 김세영은 사실 매우 어려운 상대들을 만났다. 렉시 톰슨(21)은 미국이 내세우는 대표선수로 LPGA투어 최고의 장타자다. 미스 샷을 낸 뒤 표정이 돌변하며 컨디션 난조에 빠지는 결점이 있지만 이것만 빼면 누구라도 그와 대적하기가 벅찬 선수다.

공동 선두에 한 타 뒤져 함께 챔피언조에 편성된 전인지(22)는 일찌감치 한국 일본 미국의 메이저대회를 석권한 보장된 LPGA스타다. 기품 있는 미모에 흔들림 없는 플레이, 항상 떠나지 않는 미소와 아름다운 매너로 LPGA투어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챔피언조 바로 앞 조에 배정된 스페인의 카를로타 시간다(26) 역시 우승기록은 없지만 언제라도 우승 가능한 강자다. 그 또래의 청년을 연상케 하는 강인한 체격에 걸음걸이도 ‘어깨’의 그것처럼 터프하고 렉시 톰슨과 비슷한 장타자다.

TV 중계방송을 지켜보면서 김세영이 마치 거친 두 마리의 황소와 대결하는 투우사가 된 듯한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우람한 체격과 힘으로 길게 볼을 날리며 저돌적으로 덤비는 렉시 톰슨과 카를로타 시간다는 영락없이 투우장의 황소였다. 거친 황소를 감당해야 하는 김세영은 노련한 투우사가 되지 않고선 승리를 쟁취하기가 힘들어보였다. 소리 없이 그림자처럼 우승컵에 다가가는 전인지 역시 힘겨운 상대다.

그러나 김세영은 뛰어난 토레로(torero, 투우사)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투우사라 해도 황소에게 작살을 던지는 반데리에로(banderillero)나 창을 던지는 피카도르(picador) 같은 조연 투우사가 아닌 투우사의 꽃 마타도어(matador)가 있는데 김세영은 팬들을 열광케 하는 마타도어였다. 작살이나 창을 힘차게 던지는 것은 물론 비장의 예리한 단도로 결정적인 순간에 황소를 무릎 꿇리는 드라마를 만들며 화려하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도전적인 플레이, 낙천적 성격, 상황 자체를 즐기는 자세, 그 즐거움을 팬들에게 그대로 전염시키는 마력까지 터득한 투우사가 바로 김세영이 아닐까.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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