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도 낯을 가린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동반자가 낯설 때, 오랜만에 만났을 때, 동반자가 껄끄러울 때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게 돼있다. 특히 자신의 실력이 소문나 있거나 현재의 실력이 과거보다 상당히 향상되었을 때 문제가 생긴다. 무언가 증명해주어야 하고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심리적으로는 물론 신체적으로도 경직을 초래해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골프깨나 치는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경험을 했을 것이다.
나도 싱글을 치는 실력이 되었을 때 2년여 만에 한 친구와 골프를 칠 기회가 생겼다. 이 친구는 내가 초보일 때 거의 10타 이상 차이 날 정도의 고수였고 항상 한 수를 가르쳐주는 실력자였다.
골프장으로 달려가면서 ‘오늘은 조심해야지’하고 속으로 다짐했다. 티잉 그라운드에 올라서면서도 ‘겸손해져야지’하고 되뇌었다. 그러나 첫 드라이브 샷은 보잘것없는 샷이 되고 말았다. 서너 홀을 헤매고 나서야 간신히 제 페이스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다짐을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나는 2년 전의 내가 아니다. 그때를 생각한다면 큰 코 다칠 것이다. 확실히 골프가 뭔가를 보여 주겠다’는 자만심과 전시욕이 끼어든 것이다.
동반자 중의 한 사람이 처음 라운드 하는 사이일 때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첫 만남에서 상대방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려 한다. 눈앞에서 사라지면 마음에서도 금방 사라지고 마는 그런 대상이 되길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골프에서는 이 강한 첫인상을 심어주려는 의식이 샷을 망치게 한다. 시선을 의식한 샷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무심한 샷이 나올 수가 없다.
낯선 사람과 골프를 할 때, 혹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골프를 할 때 흔들리지 않으려면 역시 마음을 비우는 도리밖에 없다. ‘나는 아무 것도 보여줄 게 없다. 우리 편안하게 골프를 즐기자’며 편안하고 겸손한 자세로 라운드 하는 게 좋은 결과를 낳는다.
가장 좋은 것은 낯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평상심대로 대하고 상대방을 즐겁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는 자세를 갖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면 문제가 생길 까닭이 없다.
내 주변에도 객관적인 기량으로 보면 누가 봐도 싱글골퍼인데 특정인과 라운드하면 맥을 못 추고 무너지는 친구가 있다. 낯을 가리는 골퍼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많이 뵌 분처럼 낯이 익습니다.”
“참 편안한 마음으로 골프를 즐겼습니다.”
훌륭한 골퍼라면 이 정도의 말은 들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방민준 골프한국 칼럼니스트()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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