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우승

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고진영(22)이 우승하는 순간 2년 전 메이저대회인 리코 브리티시 여자오픈 마지막 라운드가 오버랩 되었다.

2년 전 8월초 고진영은 스코틀랜드 턴베리의 트럼프 턴베리 리조트 에일사 코스를 찾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수한 유서 깊은 링크스 코스에서 열리는 이 대회에 세계랭킹 28위 자격으로 초청받은 것이다.

예선만 통과하면 성공이라는 마음으로 대회에 임했으나 그는 첫 라운드부터 공동6위로 리더보드 첫 페이지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그는 악명 높은 턴베리 에일사 골프코스를 자신의 무대로 이끌었다. 갓 20살의 어린 선수에게 4라운드 내내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2라운드에서 공동 2위로 발 돋음 한 그는 3라운드에 접어들어 공동선두로 도약했다. 1타 차 공동선두로 4라운드를 맞은 고진영의 전반은 파죽지세였다. 이글과 버디 2개를 보태 3타 차이 단독선두로 올라섰다.

그러나 후반 13번 홀에서 보기를 범하면서 리듬을 잃어 마지막 라운드에서만 65타를 몰아친 박인비(4라운드 합계 12언더파)에게 선두를 내주고 9언더파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만도 그로선 기대를 뛰어넘은 대성공이었으나 진한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처녀 출전한 LPGA 메이저대회에서의 우승이라는 꿈같은 역사의 주인공이 될 뻔 했고 프로골퍼들의 꿈의 무대인 LPGA투어 직행티켓을 딸 수 있었는데 마지막 라운드 후반을 못 버텨 무너진 게 두고두고 후회스러웠을 것이다.

이런 고진영이 15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클럽 오션코스에서 막을 내린 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 2년 전의 아쉬움을 말끔히 털어냈다.

첫 라운드에서 4라운드 초반까지 2년 전 리코 브리티시 여자오픈이 재현되는 듯했다. 첫날 4언더파 공동 9위로 톱10에 이름을 올린 고진영은 2라운드에서 공동 2위로 올라섰고 3라운드에선 박성현, 전인지에 2차 앞선 단독 선두로 나섰다. 2년 전 턴베리 에일사 코스에서 벌어진 상황과 너무 비슷했다.

그러나 4라운드 들어 2번(파4)과 3번홀(파3)에서 연속 보기를 기록하면서 한때 박성현에게 2타 차이 단독선두를 허용했다. 그때는 박인비에게 당했는데 이번엔 박성현에게 당하는 불운이 닥치는가 싶었다.

그러나 고진영은 5번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내면서 2년 전의 그가 아님을 증명했다. 7, 8, 9번 홀 3연속 버디로 선두에 복귀한 뒤 대단원을 내릴 때까지 한 번도 승기를 놓치지 않았다.

박성현, 전인지, 리젯 샐러스, 이민지, 유소연, 카를로타 시간다 등 톱랭커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그 역시 세계 톱랭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예비스타임을 과시했다.

고진영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만약 그가 2년 전 리코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면 어떤 상황이 되었을까 상상해봤다.

꿈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성취에 들떠 몸과 마음이 하늘을 걷는 듯 했을 터이고 내친김에 LPGA 직행티켓을 이용해 미국으로 건너갔을 것이다.

이후 LPGA투어에 잘 적응해 성공가도를 달릴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익숙한 KLPGA투어와 전혀 다른 환경에 적응하느라 리듬을 잃거나 언어문제, 음식문제에다 팬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조바심 등으로 슬럼프에 빠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실제로 LPGA 비회원이면서 국내서 열린 LPGA투어에서 우승해 직행티켓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뿌리를 못 내리고 돌아온 선수들도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2년 전 LPGA 직행티켓을 놓친 것이 고진영에겐 보약(補藥)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때 마지막 라운드에서 선두를 빼앗겨 보았기에 이번에 그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었고 끝까지 흥분하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지 않았을까.

국내 리그를 뛰면서도 2년 전부터 호주 출신의 딘 허든을 캐디로 영입해 영어를 생활화한 것도 오늘에 대비한 장기 포석이었던 것이다.

그는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대회 사상 다섯 번째 LPGA 비회원 챔피언이 되었다. 그에 앞서 안시현(2003년), 이지영(2005년), 홍진주(2006년), 백규정(2014년) 등이 이 대회 우승으로 LPGA 직행티켓을 받아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되었지만 모두가 LPGA에서 제대로 날아보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아직 확실한 LPGA 진출계획을 밝히진 않았지만 고진영만은 날지 못하는 신데렐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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