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A 투어 스윙잉 스커츠 타이완 챔피언십 우승

지은희(31)를 볼 때마다 불가사의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게 없으면서도 세계의 내로라는 강자들이 모여 경쟁을 벌이는 LPGA투어에서 퇴출되지 않고 10년을 버텨왔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골프채를 잡아 LPGA투어 Q스쿨을 거쳐 2007년 LPGA투어에 진출했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다.

162cm 55kg의 왜소한 체격에 비거리도 짧은 편이다. 작고 동그란 얼굴에 늘 소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에게선 프로선수로서의 카리스마보다는 귀여운 소녀 골프선수의 이미지를 풍긴다. 하얀 얼굴에 검은색 옷을 즐겨 입어 ‘미키마우스’란 애칭이 붙었다.

LPGA투어 진출 전의 우승경력도 2007년 KLPGA투어 휘닉스파크 클래식과 KB국민은행 스타투어 우승에 아시아투어인 말레이시아오픈 우승 등 3승에 그쳤다.

고1 때인 2002년 한국여자아마추어대회 우승을 차지하고 고2 때인 2003년에는 KLPGA투어 김영주골프 여자오픈과 엑스캔버스 여자오픈에서 연달아 준우승, 송보배와 함께 아마추어 최강으로 군림하며 화려한 아마 시절을 보냈으나 프로로 들어와서는 능력 있는 경쟁자들과 경쟁해야 했다. 신지애, 안선주, 최나연, 박인비, 김인경, 박희영 등 이른바 세리키즈들이 그의 경쟁자였다.

LPGA투어 진출 2년 만에 그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08년 웨그먼스 LPGA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신고하고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공동 3위를 기록한데 이어 2009년 메이저대회인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작은 거인’의 존재감을 골프팬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후 그만의 혹독한 ‘가뭄의 시대’로 접어든다.

그렇다고 LPGA투어 시드권을 걱정할 정도의 부진을 겪은 것은 아니다. 매년 30만~50만 달러의 상금을 벌어들였다. 지금까지의 통산 상금이 538만4,371달러에 달하니 결코 적게 벌었다고 할 수 없다. 지난해의 경우 25개 대회에 참가해 23개 대회 컷 통과할 정도로 꾸준한 성적을 냈다. 톱10에 들어간 것만 통산 31회이니 우승만 없다 뿐이지 슬럼프에 빠졌다고 볼 일도 아니다.

하지만 우승 없이 8년이란 기간을 보내는 심정은 극심한 가뭄에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것을 보는 농부의 심정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웬만한 의지의 강심장이 아니고선 2~3년을 못 견디고 짐을 싸기 십상이다.

그런 지은희가 긴 가뭄을 마감했다. 정확히 3천25일 만이고 대회 수로는 203개 대회 만이다.

LPGA투어 홈페이지는 22일 대만 타이베이의 미라마르 골프 컨트리클럽에서 막을 내린 LPGA투어 2017시즌 ‘아시안 스윙’두 번째 대회인 스윙잉 스커츠 타이완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그를 소개하며 ‘Eun-Hee Ji, Ends Eight-Year Drought(지은희, 8년의 가뭄을 끝내다)’라는 제목으로 8년간의 긴 가뭄을 극복한 지은희의 우승을 축하했다

무엇보다 비바람 몰아치는 악천후 속에서 그가 펼쳐 보인 플레이는 전문가들의 찬사가 쏟아질 정도로 독보적이었다. 그는 두 번째 라운드에서만 신지은(24)에게 공동 선두를 허용했을 뿐 한 번도 선두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은 거센 비바람에 휘둘리며 곤두박질치는데 오로지 그만이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경기를 펼쳤다.

3라운드를 끝낸 뒤 골프해설가가 직접 지은희 선수와 인터뷰를 했는데 “다른 선수들은 이곳에서 라운드를 했는데 지은희 선수만 어디 다른 데서 치고 오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라고 물을 정도였으니 그의 플레이가 얼마나 탁월했는가를 알 수 있다.

지은희의 화려한 비상을 보며 매미의 우화(羽化)를 떠올린다.

한여름 길어야 한 달 정도 사는 매미는 땅 속에서 5~17년을 애벌레로 지내다 지상으로 나와 한 달가량 목청껏 노래하며 짝을 찾아 알을 남긴 뒤 생을 마감한다. 알에서 부화된 유충은 땅속으로 들어가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긴 기간을 기다린다.

지은희의 8년여에 달하는 긴 기다림 끝에 펼친 화려한 우화와 비상은 매미의 그것과 너무도 닮았다.

그를 아끼는 팬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매미처럼 짧은 기간이 아닌 그동안 기다린 만큼 힘찬 노래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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