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이 LPGA 우승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셰익스피어 이후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도 유명하지만 그가 남긴 묘비명으로 산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그의 묘비엔 이렇게 쓰여 있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우물쭈물하며 살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로 번역되어 통용되고 있다.

최근 박성현(24)이 LPGA투어 신인으로는 최초로 세계랭킹 1위에 등극하고 중국의 펑샨샨(28)이 일본에서 열린 LPGA투어 토토 재팬 클래식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박성현의 세계랭킹 1위 등극은 최근 그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서라기보다는 유소연, 렉시 톰슨 등 경쟁자의 부진으로 얻은 어부지리의 성격이 짙다.

물론 그는 LPGA의 정교한 계산법에 의해 당당히 세계랭킹 1위에 올랐지만 최근 대회에서 1인자다운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었다고 보기에는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최근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는 펑샨샨은 LPGA투어 아시안 스윙 네 번째 대회 토토 재팬 클래식에서 우승한 데 이어 중국 하이난에서 열린 아시안 스윙 다섯 번째 대회 블루베이 LPGA에서도 우승, 그가 예사롭지 않은 상승기류를 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난 9일 개막된 대회 1라운드를 무난히 출발한 펑샨샨은 2라운드부터 빠른 상승세를 타며 유선영, 애슐리 부하이(남아공), 모리야 주타누간(태국)등의 추격을 떨치고 올 들어 3승을 신고하는데 성공했다.

그의 우승을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떠올랐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LPGA투어 사상 처음 신인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박성현이 계속 1위 자리를 지키며 신인왕, 상금왕, 18홀 평균 최저타수상, 올해의 선수상 등을 휩쓸어 새로운 골프역사를 써줄 것을 마음속으로 갈구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풀리지 않는 최근의 경기를 지켜보며 우려가 없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냉정하게 봐서 박성현은 부진했고 펑샨샨의 상승세가 무서웠기 때문에 심상찮은 조짐의 현실화는 그만큼 가시적이었다.

LPGA가 이 대회 최종 라운드에 앞서 홈페이지를 통해 “박성현이 공동3위 이하이고, 펑샨샨이 우승하면 펑샨샨이 세계랭킹 1위가 된다."고 공지한 대로 공동3위에 머문 박성현은 세계랭킹 1위 등극 1주일 만에 여왕자리를 펑샨샨에게 내주게 된다. 펑샨샨이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박성현이 공동 4위 이하일 경우 이 대회에 불참한 유소연의 1위 복귀가 예정됐었다.

오는 17~20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 네이플스에서 열리는 시즌 마지막 대회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결과에 따라 순위 변동이 일어나고 다른 상의 수상자도 결정되겠지만 박성현에겐 여전히 가능성의 문은 열려있다.

무엇보다 박성현이 거둔 성과들은 LPGA투어 신인으로서 1년 만에 이룬 것이어서 그 자체만으로 대단할 뿐만 아니라 그의 잠재력과 경험 축적을 미뤄 볼 때 앞으로 그의 골프 역정은 한국 여자골프에서 새로운 역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박성현의 미래를 생각하며, 그의 ‘1주일 천하’를 안타까워하면서도 펑샨샨의 세계랭킹 1위 등극을 냉정히 평가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펑샨샨의 골프 여정을 보면 그가 10년에 걸쳐 무서운 인내심으로 ‘골프 장성(長城)’을 쌓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의 권유로 10세 때 골프를 시작한 펑샨샨은 2007년 LPGA투어 Q스쿨에 도전해 공동 9위로 단번에 LPGA투어 시드를 따기 전까지 화려한 아마추어 시절을 보냈다.

2004년 중국 주니어대회 2승, 2006년 중국 아마추어챔피언십 등 3승을 올리고 2007년 IJGT(국제 주니어골프투어) 4개 대회 우승, 골프채널에 의해 중국 최고 아마 골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2008년부터 LPGA투어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펑샨샨은 초반 2년은 실전경험을 쌓는데 주력하다 3년차부터 서서히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다. 2011년 LPGA 미즈노클래식 2위, 현대 차이나 레이디스 오픈 2위 후 2012년 웨그먼스 LPGA챔피언십 우승을 시작으로 우승수확에 나서 2015년을 빼곤 매년 1~2회 승수를 쌓았다. 올 시즌만 3승으로 통산 9승을 올렸다.

그밖에 유럽투어(LTE)에도 참가해 2015년 오메가 두바이 레이디스 마스터스, 뷰익챔피언십 우승에 이어 2016년 오메가 두바이 레이디스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을 획득, 시진핑과 악수하는 영예를 누렸다. LPGA투어에서 톱10 안에 든 것이 78회나 되니 그의 경기가 얼마나 탄탄한가를 알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엔 운동하기 적합하지 않은 신체조건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자신은 현재의 체형이 골프하기에 적당하다며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데뷔 초기 펑샨샨은 탄탄한 몸매였으나 투어생활을 본격화하면서 덩치가 불어났다고 한다.

외모에 대해서도 콤플렉스는커녕 자부심이 대단하다. 펑샨샨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국내 골프업계 관계자로부터 다이어트와 성형을 권유받고 “나는 내 외모에 만족한다”며 면박을 준 일화도 전해진다.

미국의 골프 전문매체들은 대회 때마다 펑샨샨과의 인터뷰를 빠뜨리지 않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데다 개그우먼 뺨치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며 인터뷰를 잘 소화해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우승 후 인터뷰할 때 보통선수 같으면 억지로 예쁜 표정을 지으며 인터뷰 하는 게 보통인데 그는 마치 연극배우처럼 그때그때 익살스런 표정과 제스추어를 보여 지켜보는 골프팬들을 즐겁게 했다.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갖고 유쾌하게 경기를 즐기는 펑샨샨은 앞으로도 LPGA투어에서 그만의 장성(長城)을 쌓아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선수들에겐 넘어야 할 새로운 벽인 셈이다.

방민준(골프한국 칼럼니스트)

(골프한국 프로골프단 소속 칼럼니스트에게는 주간한국 지면과 골프한국, 한국아이닷컴, 데일리한국, 스포츠한국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글을 연재하고 알릴 기회를 제공합니다. 레슨프로, 골프업계 종사자 등 골프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싶으신 분은 이메일()을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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