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악성 댓글 선수들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 입혀

실명제 도입-SNS 대안도 못막아$자유게시판 폐쇄하기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지난 18일 개막한 가운데 4년 간 음지에서 굵은 땀방울을 흘려온 선수들을 향한 훈훈한 응원의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선수들이 축하와 격려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회 전부터 뜨거운 관심이 집중됐던 축구, 야구 대표팀의 경우 비판의 목소리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축구 대표팀은 자만에서 비롯된 졸전, 야구 대표팀은 납득하기 힘든 엔트리 구성이 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점점 사라지는 추세의 자유게시판

현재 대한축구협회, 프로축구연맹, 한국야구위원회(KBO) 등 축구 및 야구 관련 주요 기관들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자유게시판을 찾아볼 수 없다.

프로축구연맹은 2013년 홈페이지 개편 당시 자유게시판을 없앴고, 대한축구협회도 2014 브라질월드컵 이후 자유게시판을 폐쇄했다. KBO도 올해 홈페이지 게시판 개편을 통해 자유게시판 및 Q&A 게시판을 닫고 ‘자주하는 질문’ 코너를 새롭게 운영했다.

저마다 사정은 있지만 공통적으로 워낙 많은 악성 게시글이 올라오는 것도 자유게시판 폐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KBO 관계자는 “야구 팬들의 불편함을 줄이고 문의사항에 대한 대응을 개선하기 위해 개편을 하게 됐다”며 효율적인 관리 차원에서 내린 결정임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면서도 그동안 자유게시판에 무차별 비방과 욕설이 난무해 곤란함을 겪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비단 협회나 연맹만이 아니라 회원사인 프로축구, 프로야구 구단들의 경우에도 공식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을 닫고 SNS 등으로 소통을 대체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실명제 도입-SNS 대안으로도 막지 못하는 문제

실명제를 원칙으로 두면 그나마 악성 게시글 또는 댓글을 최소화하는 효과는 있다. 특히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택할 경우 글을 올리는 팬의 개인 SNS 공간에 또 다른 팬들 역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악성 댓글의 비중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그러나 이같은 방식을 도입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특정 사안에 대해 비난 여론이 한 번 불붙을 경우 네티즌들이 집단성 양상을 나타내 소통 공간을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또한 구단 SNS를 관리하는 관계자에 따르면 오로지 악성 댓글을 달기 위해 복수의 계정을 따로 만들어 본인의 사적 공간을 노출하지 않은 채 버젓이 활동을 하고 있는 팬들 역시 존재한다.

SNS의 경우 복수 계정의 문제 뿐 아니라 정확한 신상 정보를 입력하지 않고도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팬들이 마음 먹기에 따라 익명의 베일에 얼마든지 숨을 수도 있다.

모 프로야구 구단 관계자는 “팬들이 욕설 또는 지나치게 심한 형태의 글을 올릴 경우 블라인드 기능을 통해 타인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를 하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존중할 필요는 있지만 반대로 선수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해로 인해 사태가 확산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악성 댓글러의 등장

자체 정화 기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커뮤니티 또는 포털사이트는 악성 댓글 문제가 훨씬 심각한 편이다.

특히 프로야구에는 넥센 박병호 한 명만을 표적으로 삼아 무분별한 악성 댓글을 달아온 네티즌이 야구 팬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지 오래다. 약 5년 동안 4만개 이상의 댓글을 끊임 없이 달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더 큰 문제는 유명 악성 댓글러의 추종자를 자처하거나 비슷한 움직임을 나타내는 세력까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넥센 측에서도 올해 3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자료를 꾸준히 확보하는 등 악성 댓글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 과정을 밟아왔다.

그러나 고소와 같은 적극적인 움직임으로까지 연결되지는 않았다. 선수 본인의 동의가 필수적이지만 시즌 준비와 맞물려 많은 시간을 쏟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 외에도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교묘하게 수위를 조절하는 등 지능적인 모습을 취하는 경우도 많아 현실적으로 대응이 쉽지 않다.

박병호 스스로도 과거 “악성 댓글러를 만나 보고 싶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본인도 느끼는 점이 있을 것이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낸 수준에서 더 이상 사태가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였다.

▶상처받는 선수들, 고통받는 가족들

박병호처럼 악성 댓글에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들도 있다. 프로야구 모 구단 감독 역시 “인기팀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지 못해 비판을 받을 경우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구단의 감독은 “이제는 댓글을 읽지 못하겠더라.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으니 아들이 그만 열어보라고 하더라.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도 함께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현역 시절 끊임 없는 비난에 시달렸던 모 코치 역시 “나를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있는데 가족들까지 욕하는 댓글을 봤을 때에는 정말로 참기가 힘들었다. 그 밑에 댓글을 남겨본 적도 있다”며 팬들에게 좀 더 성숙한 응원 문화를 정중히 요청했다.

과거 선수단 버스를 불태우고 난동을 부리는 등 경기장 주변 위험한 추태는 크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누구나 집에서도 개인의 의견을 손쉽게 표출할 수 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을 수 있듯 무심코 적은 글 한 줄로 선수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시대다.

정당한 비판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도를 넘어서는 악성 댓글은 때때로 보이지 않는 살인 흉기가 돼 선수들과 그 주변인들의 가슴을 파고 든다. 그들도 선수이기 이전에 인격체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박대웅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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