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박항서 감독!”

쓰라린 패배였을 터다. 결승전 진출을 눈앞에 두고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한국과의 2018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4강전. 박항서(59)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현격했던 전력 차 앞에 대회 첫 패배, 그리고 결승 진출 실패의 결과를 받았다.

이날 베트남 국민들은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거리응원에 나섰다. 다만 1-3 패배가 확정된 직후, 질책이나 아쉬움의 표현 대신 ‘기립박수’를 보냈다. 4강까지 오르는 동안 선수단과 박항서 감독이 안겨준 선물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거리응원이 열린 곳곳에는 베트남 국기와 함께 태극기도 함께 펄럭였다. 베트남 국민들에게 박 감독이 어떠한 의미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지 언론은 “박 감독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영웅”이라며 박수를 보냈다. ‘박항서 신드롬’이 또 한 번 불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비단 베트남 국민들만 신난 것이 아니다. 박 감독에 대한 우호적인 현지 분위기와 맞물려 국내 기업들도 ‘박항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박항서 감독이 남긴 또 하나의 결실이기도 하다.

베트남 축구의 연이은 돌풍, ‘박항서 매직’과 함께

시작은 1월 AFC(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이었다.

당시 베트남은 조별리그에서 한국에 패배한 뒤, 호주를 꺾고 시리아와 비겨 8강에 진출했다. 이후 이라크와 카타르를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물리치고 사상 첫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 져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이미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의 ‘국민적인 영웅’이 된 뒤였다. 2년 전 이 대회에 처음 나섰을 당시만 해도 베트남의 성적은 3전 전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약체’였기 때문이다.

조직력과 투지를 갖춘 팀으로 변모시킨 박 감독을 향해 현지의 찬사가 이어졌다. 베트남 정부는 훈장을 수여했고, 귀국 후에는 카퍼레이드까지 준비해 국민적인 환대를 받았다.

‘반짝 효과’가 아니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 역사를 거듭 새로 썼다.

사상 처음 일본을 꺾는 등 조별리그를 3전 전승으로 통과한 박항서호는 이후 바레인과 시리아를 차례로 꺾고 4강까지 진출했다. 한국에 져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역대 최고 성적이 16강이었던 베트남 축구 역사에 두 번이나 새로운 획을 그은 뒤였다.

2002년 한국 떠올리게 하는 ‘박항서 신드롬’

대회 기간 동안 베트남 현지 분위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국내 풍경과 매우 닮아 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많은 기업들이 근무 시간을 줄였다. 팬들은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거리에서 함께 응원을 펼쳤다. 거리는 베트남 유니폼을 상징하는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베트남 국기를 펄럭이는 국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질서 유지를 위해 치안 당국이 교통경찰 총동원령을 내렸다.

승리한 뒤에는 함께 거리를 걸으며 기쁨을 나눴다. 베트남 국기를 단 자동차와 오토바이도 거리를 메웠다. 현지 언론들은 “거리가 온통 붉은 물결을 이뤘다”면서 동영상 등을 통해 현지 분위기를 생생히 전달했다.

그 중심에 단연 박항서 감독이 있었다. 2002년 당시 거스 히딩크(72) 감독이 그랬듯, 베트남 현지에서도 ‘박항서 신드롬’이 불었다.

‘한류스타인 송중기보다 더 인기가 높다’는 한인회 관계자의 말처럼 이미 베트남 내 박 감독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중이다. 그의 ‘귀화’를 바란다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현지 언론들도 가세했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박 감독의 전술과 용병술에 박수를 보냈다. 4강 진출을 확정한 직후 일간지 라오동은 ‘고맙습니다, 박항서 감독’이라는 기사를 썼다.

카드사부터 편의점까지, 韓 기업들 박항서 효과에 ‘반색’

박항서 감독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비단 베트남 국민들만이 아니다. 베트남과 관련된 국내 기업들도 일제히 반색하고 있다. 이른바 박항서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이미 그 효과를 체감하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

양국에 매장이 있는 편의점 GS25의 경우 한국-베트남전이 열린 당일 매출이 급증했다. 국내 매장의 경우 일주일 전 같은 요일보다 주류 매출이 20~30% 증가했는데, GS25 측은 이를 한국-베트남전의 영향으로 분석했다. 현지시각으로 오후 4시였던 베트남 GS25 역시도 즉석 먹거리와 음료 판매가 급증했다.

박항서 감독을 광고모델로 쓴 신한카드의 경우 반년도 안 돼 회원수가 1만 명 넘게 늘었다. 신한베트남은행이나 베트남우리은행 등도 현지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산물이나 화장품 수출 업계 등은 이미 박항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등 재계도 베트남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미 5조원 이상을 투자해 베트남 북부를 스마트폰 생산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LG나 포스코 등도 베트남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여행업계도 내심 박항서 효과를 기대하는 눈치다. 스카이스캐너에 따르면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베트남 내 한국행 항공권 검색량이 전년 대비 56% 가량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박항서 감독 열풍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면서 “한국 기업들이 현지 직원들을 많이 채용하고 있어 친밀감이 높은데, 박항서 열풍까지 더해져 마케팅 효과가 더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명석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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