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ㆍ정민태 ‘강심장’… 커쇼ㆍ프라이스‘새가슴’

야구의 축제가 열리는 가을이 되면 ‘강심장’과 ‘새가슴’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곤 한다. 포스트시즌과 같은 큰 무대에서 더욱 불타오르는 선수가 있고, 반대로 유독 부진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는 선수가 있기 때문이다.

SK와 넥센의 2018 KBO 플레이오프도 마찬가지였다. 두 팀의 최종 결과를 떠나 박정권(SK)의 경우 1차전 극적인 9회말 끝내기 홈런을 통해 본인이 왜 ‘가을 남자’로 통하는지 다시 한 번 증명했고, 박병호(넥센)는 정규시즌 압도적인 활약에 비해 여러모로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한국시리즈서 울고 웃은 레전드는?

박정권과 박병호의 사례뿐 아니라 KBO리그의 오랜 역사 속에서도 가을에 더욱 빛났던 선수와 쓰라린 경험을 했던 선수를 찾아볼 수 있다.

먼저 강심장 면모를 드러낸 선수는 김정수와 정민태가 가장 대표적이다.

김정수는 한국시리즈에서만 무려 7승(3패 1세이브)을 따내며 역대 1위에 이름을 올렸고, 1986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팀의 4승 중 3승을 홀로 책임져 MVP에 등극했다. 한국시리즈에서만큼은 ‘국보’ 선동열 이상의 존재감을 뽐내며 ‘가을 까치’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민태 역시 한국시리즈 6승(공동 2위)에 플레이오프 3승, 준플레이오프 1승을 더해 포스트시즌 10승으로 역대 1위에 올라 있는 ‘빅게임 피처’다. 1998, 2003시즌 두 차례나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했으며, 1998년 10월 27일 LG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는 선발타자 전원 탈삼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포스트시즌 최다인 8연승 역시 정민태가 보유하고 있는 기록이다.

반면 김시진의 경우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유독 아쉬움을 자주 삼켰다. 김시진은 정규시즌 통산 124승 73패 16세이브 평균자책점 3.12의 성적을 남겨 선동열, 최동원과 함께 당대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9연패의 악몽을 경험하며 최다 패전 및 최다 연패 투수로 남아 있다. 포스트시즌 9패 중 7패를 한국시리즈에서 떠안았음을 감안하면 결과가 더욱 아쉽다.

▶커쇼와 프라이스, ‘새가슴’의 엇갈린 운명

메이저리그에서는 월드시리즈 5차전에서 맞붙었던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와 데이빗 프라이스(보스턴 레드삭스)가 대표적인 ‘새가슴’ 투수로 평가받아왔다.

커쇼는 정규시즌 통산 153승69패 평균자책점 2.39를 기록한 특급 투수였지만 지난해까지 포스트시즌 24경기에서는 7승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35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프라이스 역시 143승75패 평균자책점 3.25의 화려한 정규시즌 성적과 달리 2010년부터 올해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 2차전까지 포스트시즌 선발 9연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이번 가을에 프라이스는 그동안의 아쉬움을 털어내며 우승 반지까지 손에 넣었다. 초반 출발은 좋지 못했지만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에서 연패 사슬을 끊어내며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결국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는 6이닝 2실점을 기록해 류현진에게 판정승을 거뒀고, 5차전에서는 7이닝 1실점을 기록해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반면 커쇼는 이번 포스트시즌에도 총 6경기에 등판해 2승3패 평균자책점 4.20에 그쳤다. 월드시리즈 2경기에서도 각각 4이닝 5실점, 7이닝 4실점에 머무는 등 프라이스와의 맞대결에서도 눈물을 삼켰다.

▶NBA에도 존재하는 큰 무대 체질

야구와 달리 미국프로농구(NBA)에서는 플레이오프가 진행되는 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강심장 및 새가슴 선수가 발견된다.

마이클 조던의 경우 ‘농구 황제’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더욱 경이로운 활약을 펼쳤다. 정규시즌 통산 평균 30.1점이 플레이오프에서는 33.4점, 파이널에서는 33.6점으로 증가했다.

특히 1985~86시즌 플레이오프 보스턴 셀틱스와의 1라운드 2차전에서는 무려 63점을 폭발시켰고, 1992~93시즌 피닉스 선즈와의 파이널 6경기에서는 평균 41.0점 8.5리바운드 6.3어시스트 1.7스틸을 기록하기도 했다. ‘더 플루 게임’, ‘더 샷’ 등 수많은 명장면들은 물론 6번의 파이널 무대에서 모두 우승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에서도 조던의 강심장을 확인할 수 있다.

조던과 달리 로버트 오리는 정규시즌 통산 평균 7.0점 4.8리바운드 2.1어시스트에 그친 지극히 평범한 선수였지만 큰 경기마다 결정적인 활약을 자주 펼치며 무려 7개의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다.

물론 플레이오프에서도 평균 7.9점으로 정규시즌과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오리는 휴스턴 로키츠, LA 레이커스, 샌안토니오 스퍼스까지 몸담았던 팀마다 모두 상대에게 비수를 꽂는 결승 득점을 터뜨리며 ‘빅 샷 랍’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반대로 칼 말론, 데이비드 로빈슨 등 NBA의 레전드 중에서 플레이오프 기여도가 떨어졌던 선수들도 있다. 표면적인 기록상으로는 정규시즌과 비교해 심각할 만큼 뚜렷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아쉬웠던 모습이 팬들 뇌리에 각인된 선수들이다.

말론은 1996~97시즌 파이널 1차전 경기 막판 자유투를 모두 놓쳤고, 6차전에서는 조던에게 경기 막판 스틸을 허용해 ‘더 샷’의 빌미를 제공하며 우승 반지를 손에 넣지 못했다.

박대웅 스포츠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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